《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 기간
- 2026.10.21~2027.02.21
- 시간
- 화~목 10:00~20:00 / 금 10:00~21:00 / 토·일·공휴일 3~10월 10:00~19:00, 11~2월 10:00~18:00
- 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3층 전시실 및 3층 크리스탈 갤러리
- 주소
- 서울 중구 덕수궁길 61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
- 휴관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정상 개관)
- 작가
- 린 허쉬만 리슨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기술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 우리는 어디까지 '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의 몸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결코 하나의 정체성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자아와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 디지털 공간에 축적되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재구성하는 개인의 이미지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존재한다.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행동, 기억과 관계를 확장하는 오늘날,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은 더욱 복잡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미국의 미디어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린 허쉬만 리슨(Lynn Hershman Leeson, 1941~)의 60여 년에 걸친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아시아에서 처음 개최되는 그의 미술관 개인전으로, 드로잉과 회화, 사진, 조각, 영상, 영화, 인터랙티브 미디어 설치 등 약 200점의 작품을 통해 기술과 인간의 정체성이 맺어온 관계를 살펴본다.
린 허쉬만 리슨은 새로운 기술을 단순히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기술이 인간의 신체와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사회적 관계와 권력의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지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1960~70년대 여성의 몸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업은 비디오와 컴퓨터, 인터넷, 인공지능, 생명공학으로 확장되며 동시대 기술문화를 예견하는 독창적인 예술적 실험으로 발전했다.
전시의 영문 제목인 'First Person Plural'은 문법적으로 '우리'를 뜻하는 1인칭 복수형이다. 이는 작가가 1984년부터 이어온 〈전자일기〉 시리즈의 한 작품에서 가져온 표현으로, 자아가 단일하고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한글 제목인 '나의 [나]들'은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사용되는 대괄호를 통해 기술 환경에서 복제되고 재구성되는 여러 자아의 모습을 상징한다.
전시는 '카멜레온의 고백', '페르소나 만들기', '살과 기계', '스크린, 응답하다', '데이터가 사랑이 될 때', '편집된 미래' 등 여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흐름은 신체와 사회적 역할에서 출발한 정체성이 미디어와 네트워크를 거쳐 인공지능과 유전공학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초기 작업인 〈숨쉬는 기계 III〉(1968)는 작가의 개인적인 신체 경험이 어떻게 새로운 미디어 조각으로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린 허쉬만 리슨은 1965년 임신 중 심장질환으로 산소텐트에서 치료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얼굴과 신체를 왁스로 형상화하고, 여기에 기계장치와 소리를 결합했다. 관람객이 가까이 다가가면 센서가 작동해 숨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 작품은 고정된 조각에 생명체와 같은 반응을 부여한다. 움직이지 않는 신체의 표면과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인간의 존재가 육체적 형상만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 질문한다.
1970년대의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 프로젝트에서는 정체성에 관한 탐구가 사회적 실험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가상의 여성 로베르타를 창조하고 외모와 행동, 생활방식을 설정한 뒤 실제 사회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도록 했다. 은행 계좌와 운전면허, 구인 광고 등 현실의 제도를 통과하며 로베르타는 단순한 허구의 인물을 넘어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존재가 되었다. 이 작업은 정체성이 개인의 내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타인의 시선, 사회적 관계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1980년대의 〈로나〉(1979~1984)는 관람객이 이야기의 전개에 직접 개입하는 초기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품이다. 광장공포증으로 외부 세계와 단절된 가상의 여성 로나는 전화와 텔레비전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관람객은 리모컨으로 인물의 선택을 조정하며 서로 다른 결말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권자가 된다. 작품은 미디어를 통한 연결이 동시에 통제와 감시의 구조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딥 컨택트〉(1984)는 터치스크린을 활용해 관람객의 신체적 접촉을 서사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화면 속 인물의 신체를 어느 부분에서 터치하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작품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접촉이 욕망과 권력, 선택의 문제와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로나〉와 〈딥 컨택트〉를 비롯한 주요 인터랙티브 작품에 한국어 자막이 제공되어 관람객이 작품의 서사와 상호작용을 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작가의 작업에 또 다른 전환점을 마련했다. 〈사이버로베르타〉(1996/2026)는 카메라와 웹 기술을 결합한 인형을 통해 인간의 시선이 물리적인 신체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는 상황을 제시한다. 관람객은 원격으로 인형의 시선을 조정하며 다른 공간을 바라볼 수 있지만, 동시에 타인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감시자의 위치에 놓인다. 기술이 제공하는 새로운 자유가 프라이버시와 통제의 문제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웹 기반 인공지능 챗봇 〈에이전트 루비〉(1998~2002)는 오늘날 생성형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대화에 반응하고 표정을 변화시키는 가상의 인물 루비는 기계가 인간과 감정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대화하는 존재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기술적 성능의 발전 자체보다 인간이 비인간적 존재와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작가의 영화 작업 역시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배우 틸다 스윈튼과 협업한 〈에이다 러브레이스〉(1997)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선구자인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삶을 통해 여성과 기술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테크노러스트〉(2002)는 복제인간과 생명공학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사랑, 정체성의 경계를 탐색한다. 두 작품은 과학기술을 미래적인 상상력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인간의 기억과 감정,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조건으로 접근한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생명공학과 유전자 편집 기술로 확장된다. 이 영역에서 정체성은 더 이상 사회적 역할이나 디지털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학적 구성 자체를 수정할 수 있는 가능성과 연결된다. 기술이 신체의 조건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시대에 인간의 고유성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작가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인간과 기계,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끊임없이 재편되는 현실을 드러낸다.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은 미디어아트의 기술적 발전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전시가 아니다. 작가가 60여 년 동안 지속해 온 정체성의 탐구를 중심에 놓고, 각각의 시대에 등장한 기술이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살펴보는 자리다. 여성의 몸과 사회적 역할, 가상의 인물과 디지털 복제, 감시와 데이터, 인공지능과 유전공학은 서로 분리된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질문에서 파생된 다양한 층위로 연결된다.
오늘날 우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데이터로 분류되며, 알고리즘이 예측한 취향과 행동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아는 개인이 온전히 소유하고 통제하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수많은 관계와 기술적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는 과정에 가깝다.
린 허쉬만 리슨의 작업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변화하고 있는지 사유하도록 이끈다. 《나의 [나]들》은 화면과 데이터, 기계와 생명공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나'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그 질문은 결국 하나의 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자아를 발견하고, 타인과 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확장되는 인간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일로 이어진다.
참고문헌
서울시립미술관,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공식 전시 소개 및 주요 작품 해설, 2026.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 린 허쉬만 리슨의 아시아 첫 미술관 개인전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개최」, 보도자료, 2026.10.20.
서울특별시,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 전시 안내」, 2026.
〈엑스레이 맨〉, 1970린 허쉬만 리슨하르트비히 미술 재단 소장. 네덜란드 문화유산청 / 국가 소장품 기증 예정
〈숨쉬는 기계 III〉, 1968린 허쉬만 리슨하르트비히 미술 재단 소장. 네덜란드 문화유산청 / 국가 소장품 귀속 예정
린 허쉬만 리슨은 1965년 임신한 상태에서 심장질환으로 약 한 달간 산소텐트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때의 경험은 인터랙티브 미디어 조각인 〈숨쉬는 기계〉 시리즈가 만들어지는 바탕이 된다. 산소텐트 안에서 작가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숨소리뿐이었고, 할 수 있는 창작 활동은 손을 움직여 왁스로 얼굴 조각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이후 미디어 조각 〈숨쉬는 기계〉가 탄생하는 토대가 된다. 1960년대 후반 린 허쉬만 리슨은 자신의 얼굴과 신체 일부를 왁스로 캐스팅하고, 여기에 가발과 나비 등을 더해 만든 낯설고 기이한 얼굴의 미디어 조각 〈숨쉬는 기계〉 시리즈를 만들었다. 관람객이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센서가 감지되어 작가의 숨소리나 웃음소리, “Why are you looking at me?” 같은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면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것이 두려운 듯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얼굴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는 여전히 숨쉬고 말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린 허쉬만 리슨은 이렇게 인간과 기계장치의 결합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복제하고 그 안에 목소리를 불어넣음으로써 하나의 몸이 여러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했다.
〈로베르타 구성 차트 #1〉, 1975린 허쉬만 리슨〈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는 린 허쉬만 리슨이 가상 인물을 통해 한 여성이 정체성을 형성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을 관찰한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1973년 조이스 캐롤 오츠의 단편 〈열정과 사색〉에서 남성 작곡가를 스토킹하는 여주인공 로베르타 브라이트에서 영감을 받아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라는 가상의 인물을 창조한다. 작가는 로베르타의 외모와 말투, 제스처를 정교하게 설정하고, 로베르타 명의의 은행 계좌 개설, 운전면허 취득, 룸메이트 구인 광고 등을 진행해 로베르타가 실제 사회 시스템 속에 살아가게 했다. 초기의 로베르타는 린 허쉬만 리슨이 직접 수행했으나, 이후 퍼포머를 고용해 역할을 맡겼다.
그러나 현실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로베르타로 분한 허쉬만 리슨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로베르타는 역으로 작가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작가는 1978년 이탈리아에서 엑소시즘 의식을 진행해 로베르타를 물, 불, 공기, 흙으로 해체하며 프로젝트를 종료한다.
〈가상의 비평가 3인: 프루던스 주리스, 게이 어밴던, 허버트 구드의 캐릭터 설정 차트〉, 1968린 허쉬만 리슨1970년대 미국 미술계는 남성 중심적이었으며, 여성 작가들은 전시 기회를 얻거나 비평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다. 이에 저항하고자 린 허쉬만 리슨은 세 명의 가상 비평가 프루던스 주리스, 허버트 구드, 게이 어밴던을 창조했다. 즉흥적인 영감형 여성 비평가, 논리적인 형식주의 성향의 남성 비평가, 중성적인 특징을 지닌 비평가로 설정된 이들은 여성 작가에 대한 비평을 《스튜디오 인터내셔널》과 《아트위크》 등 저명한 미술지에 발표했다. 1968년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작가가 이들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쓰면서 1974년 동시에 은퇴했다.
〈롤랜즈/보가트〉, 1980-1988린 허쉬만 리슨1980년대에 제작된 〈히어로 샌드위치〉 시리즈는 린 허쉬만 리슨이 대중매체가 이미지를 통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탐구한 작업이다. 작가는 유명인의 실제 삶과 대중적 이미지를 고려해 서로 다른 인물의 조합을 세심하게 결정했다. 예를 들어 마릴린 먼로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합은 육체와 정신을 대비시키면서도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된다. 이 밖에도 지나 롤랜즈와 험프리 보가트, 게리 쿠퍼와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프레슬리와 패티 허스트 등의 조합을 선보인다.
한편 〈히어로 샌드위치〉는 사진과 회화가 결합된 형태를 띠는데, 작가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명인의 네거티브 필름을 겹쳐서 프린트하고 그 결과물에 페인팅을 더해 두 인물을 하나로 결합시킨다. 특히 남녀 이미지를 결합했을 때 특정 성별이 우세하게 나타나는 양상에 주목하고, 이를 유전 형질이 결합하고 발현되는 교배 과정에 빗대어 설명한다.
〈유혹〉, 1985린 허쉬만 리슨1980년대 후반 제작된 〈팬텀 림〉 시리즈는 포토 콜라주 기법으로 여성의 신체와 카메라, TV, 쌍안경 등의 이미지를 결합해 낯선 신체 이미지를 보여준다. ‘팬텀 림’은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통증을 느끼는 ‘환상지’를 일컫는 의학 용어다. 허쉬만 리슨은 사라진 신체 일부에 대한 환영이라는 이 개념을 매스미디어를 통한 경험으로 확장한다. 직접 보고 만지지 않아도 TV를 통해 대상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것을 직접 경험한 것처럼 느낀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된 〈팬텀 림〉은 디지털 합성에 비해 투박하고 이질적인 느낌을 통해 1980?90년대 MTV 시대의 영상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패션 사진의 시선을 차용하며, 대상을 보기 위해 만든 기계장치들이 역으로 우리를 감시하고 지배하는 모순을 꼬집으며 기술 시대에 신체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질문한다.
〈사이버로베르타〉, 1996/2026린 허쉬만 리슨〈틸리, 텔레로보틱 인형〉과 〈사이버로베르타〉는 기술을 통한 인식의 확장으로 자아가 몸의 경계를 넘어 확장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1990년대 초반 등장한 웹캠 기술을 이용해 1995년 〈틸리, 텔레로보틱 인형〉을 제작했다. 이어 1996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에서 영감을 받아 똑같이 프로그래밍된 두 번째 텔레로보틱 인형인 〈사이버로베르타〉를 완성하게 된다. 〈사이버로베르타〉는 앞서 〈페르소나 만들기〉에서 소개된 가상 인물인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가 발전한 형태로, 작가는 이 둘을 묶어 〈돌리 클론〉이라 이름 붙인다.
두 인형은 모두 왼쪽 눈에는 비디오 카메라, 오른쪽 눈에는 웹캠이 장착되어, 촬영한 영상을 20초마다 각 인형이 갖고 있는 웹사이트에 업데이트한다. 관람객은 해당 웹사이트에 접속해 인형의 머리를 회전시키며 시선을 조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타인을 훔쳐보는 관음증적인 시선을 경험하는 동시에, 자신의 눈을 원격으로 확장하는 가상의 사이보그를 갖게 된다.
〈로나〉, 1979-1984린 허쉬만 리슨〈로나〉는 레이저디스크 기술을 활용해 관람객의 인터랙티브 참여를 시도한 최초의 작품이다. TV 화면 속 주인공 로나는 광장공포증으로 인해 전화와 TV로만 세상과 소통하는 가상 인물이다. 관람객은 리모컨으로 로나의 선택을 유도하며, 36개 시퀀스를 거쳐 'LA 이주', 'TV 사격', '자살' 중 하나의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이 작품은 오늘날 미디어 기술에 의해 일상이 감시당하는 구조를 예견하는 한편, 스크린을 통해서만 세계와 만나는 현대인의 심리적 고립감을 보여준다. 함께 전시되는 스토리보드와 흐름도는 서사를 치밀하게 설계하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작가적 면모를 잘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어로 진행되는 〈로나〉에 한국 관람객을 위한 한글 자막을 추가로 제공한다. 린 허쉬만 리슨의 인터랙티브 미디어 작품이 영어 이외의 언어로 제공되는 것은 처음이다. 한글 자막 동기화는 기술 기반 미디어 작가팀 '서울익스프레스'가 담당했다.
〈딥 컨택트〉, 1984린 허쉬만 리슨〈딥 컨택트〉는 관람객이 터치스크린을 통해 작품의 이야기 전개에 개입하도록 함으로써 관람객의 신체와 작품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화면 속 마리온이라는 여성은 관람객을 유혹하며 화면을 터치하도록 유도한다. 관람객이 화면의 어느 신체 부위를 터치하는지에 따라 서로 복잡하게 얽힌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작품은 57개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되며, 관람객은 때로는 마리온과 함께, 때로는 선불교 수행자와 함께 여정을 경험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딥 컨택트〉에 한국어 자막을 추가로 제공한다. 이를 위해 작가 측의 테크니션과 미술관이 협력해 1980년대 초기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시각적 감성과 어울리는 한글 서체를 선정하고 적용했다. 이를 통해 작품 고유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한국 관람객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신시아 주가 표시기〉, 2000린 허쉬만 리슨
〈린 허쉬만 리슨의 전자일기〉, 1984-2019린 허쉬만 리슨〈전자일기〉 시리즈는 1984년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영상 형식의 일기이다. 린 허쉬만 리슨은 이 작업에서 어린 시절 경험한 학대와 폭력, 신체적 고통과 체중 증가, 이에 대처하는 방식,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넘어서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독백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상에서 화면은 작가의 감정 상태를 반영하듯 분할되거나 왜곡되며, 흑백 이미지가 전환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촬영되는 나’, ‘촬영된 나를 보는 나’, 그리고 이를 통해 ‘다시 이해되는 나’라는 여러 자아를 경험한다.
〈전자일기〉 시리즈는 현재까지 총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은 처음부터 엄밀하게 구획해 계획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재편집되어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스크린, 응답하다〉 섹션에서 1편부터 6편까지 상영하고, 마지막 7편은 전시의 마지막 섹션인 〈편집된 미래〉에서 선보인다.
〈에이전트 루비〉, 1998-2002린 허쉬만 리슨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소장. 비트폼스 갤러리, 폴 앵글림 갤러리 및 작가 기증
〈에이전트 루비〉는 린 허쉬만 리슨이 1998년부터 2002년에 걸쳐 제작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의뢰로 공개한 웹 기반의 인공지능 챗봇이다. 작가의 2002년 장편영화 〈테크노러스트〉에서 배우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사이보그 복제인간 루비에 기반해 완성되었다. 화면 속 루비는 대화에 따라 때로는 눈썹을 찌푸리거나 입을 삐죽이며 표정을 바꾼다. 루비와의 대화는 오늘날의 AI와 비교할 때 매끄럽지 않을 수 있지만, 인공지능의 유년기를 마주하고, 사람이 기계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루비는 오늘날의 생성형 AI 이전에 만들어진 인공지능으로, 영어로만 대화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전시에서는 기술 기반 미디어 작가팀인 서울 익스프레스와의 협업을 통해 한글 자막 창이 추가되었다. 한편 〈에이전트 루비〉는 린 허쉬만 리슨이 관심을 가져온 기술과 젠더, 정체성의 관계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에 있다.
〈날아가는 새〉(〈에이다 러브레이스〉 스틸), 1997린 허쉬만 리슨〈에이다 러브레이스〉는 린 허쉬만 리슨의 첫 장편영화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선구자인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삶을 디지털 기술을 통해 현재와 연결한다. 배우 틸다 스윈튼과 처음 협업한 작품으로, 스윈튼은 영화에서 에이다 러브레이스를 연기한다. 영화는 컴퓨터를 통해 과거 인물의 기억과 경험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상상에서 출발해, 시간과 기억, 인간의 정체성이 기술을 통해 어떻게 새롭게 연결될 수 있는지 탐구한다. 19세기에 살았던 에이다 러브레이스와 현대의 여성 과학자를 잇는 서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어 지식과 경험이 전승될 가능성을 살펴본다. 초기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역사와 여성의 과학적 성취를 조명하는 동시에,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기억과 삶을 확장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작품이다.
〈세 명의 틸다, 춤, 〈테크노러스트〉 스틸〉, 2002린 허쉬만 리슨〈테크노러스트〉는 린 허쉬만 리슨이 연출한 장편영화로, 생명공학과 복제 기술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사랑의 문제를 탐구한다. 영화에는 자신의 DNA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 명의 사이보그 복제인간과 이들을 창조한 여성 과학자가 등장하며, 배우 틸다 스윈튼이 네 인물을 모두 연기한다. 특히 〈에이전트 루비〉의 모태가 되는 캐릭터 루비가 복제인간으로 등장하며, 인간의 사적인 영역이라 여겨져 온 감정과 욕망, 사랑이 기술과 연결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그녀〉(2013)보다 11년 앞서 이러한 주제를 다룬 것이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빠르게 발전하는 오늘날, 〈테크노러스트〉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가 감정과 욕망의 영역까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새롭게 생각하게 한다.
〈논리는 심장을 마비시킨다〉, 2022린 허쉬만 리슨
〈형광 고양이〉, 2010-2019린 허쉬만 리슨전시의 마지막 섹션 〈6. 편집된 미래〉에 들어서면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다양한 생물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최신 유전자 편집 기술인 CRISPR는 흔히 ‘유전자가위’로 불리며, A, T, C, G 네 가지 염기로 이루어진 DNA 배열에서 특정 위치를 잘라내고 수정함으로써 정교한 유전자 조작을 가능하게 한다. 〈형광 고양이〉는 해파리에서 발견된 녹색 형관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고양이의 유전체에 도입해 형광을 띄도록 한 과학적 사례를 보여준다.
〈자화상〉, 2025린 허쉬만 리슨
〈시간에 대하여〉, 2025린 허쉬만 리슨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