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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

기간
2026.08.21~2027.01.03
시간
화~일요일 11:00~18:00 / 입장 마감 17:30
장소
박서보미술관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24길 9-54 (연희동)
휴관
매주 월요일
작가
박서보흐엉 도딘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

선을 비우고 빛을 쌓다, 두 화가가 도달한 회화의 깊이

회화에서 비움은 반드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표현을 덜어내고 반복적인 행위를 지속하는 과정에서 화면은 오히려 새로운 밀도와 감각을 획득할 수 있다. 박서보미술관 개관전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은 한국 단색화의 주요 작가 박서보(1931~2023)와 베트남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해 온 흐엉 도딘(1945~)의 회화 42점을 통해 이러한 역설을 탐구한다.

박서보는 1950년대 후반 전후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원형질〉 연작에서 출발해 1967년부터 〈묘법(Ecriture)〉을 발전시켰다. 초기의 강렬한 표현에서 벗어나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비우고 화면의 질서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에게 회화는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을 넘어 몸과 재료, 시간이 상호작용하는 실천이었다.

특히 한지를 활용한 묘법은 한국의 전통적인 재료를 현대 추상회화의 조형 언어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물에 불린 한지를 캔버스에 덧대고 표면을 반복적으로 긋거나 밀어내는 과정에서 선은 단순한 시각적 기호가 아니라 물질에 새겨진 행위의 흔적이 된다. 화면에 형성된 홈과 돌출된 부분은 빛의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그림자를 만들며, 관람자의 위치와 거리에 따라 작품의 표정을 변화시킨다.

흐엉 도딘은 이와 다른 제작 방식으로 회화의 깊이를 구축한다. 그는 광물 안료를 수십 차례 얇게 겹쳐 바르며 빛이 화면 내부에서 스며 나오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선과 원을 비롯한 절제된 기하학적 구조, 균형 잡힌 구성과 미묘한 색채의 변화는 그의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다. 도딘의 화면은 특정한 풍경이나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색의 층위와 빛의 관계를 통해 감각적인 공간을 형성한다.

전시는 지하 2층 SPACE Ø에서 시작된다. 이곳에는 두 작가가 1990년대에 제작한 작품들이 함께 놓인다. 같은 시기의 회화를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한 이 공간에서 관람자는 박서보의 반복적인 선과 도딘의 축적된 색면이 만들어내는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두 작업은 겉으로는 절제된 추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표면의 질감과 빛을 다루는 방식에서는 각기 다른 조형적 선택을 보여준다.

2층 미디어룸에서는 두 작가의 작업 과정과 인터뷰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완성된 작품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제작의 시간과 반복적인 노동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어지는 SPACE 2에서는 박서보의 흑백 한지묘법에서 색채 한지묘법으로 이어지는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검정과 흰색을 중심으로 물질의 깊이를 탐색했던 화면이 다양한 색채를 받아들이면서, 묘법은 고유한 제작 원리를 유지한 채 새로운 감각적 영역으로 확장된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3층 SPACE 3에서는 두 작가의 백색 계열 작품이 만난다. 이 공간에서 주목할 작품은 박서보의 2023년 〈묘법〉과 흐엉 도딘의 〈X.K.N.31〉이다. 박서보의 화면은 회색 바탕 위에 흰 물감이 겹쳐지며 시간의 흔적을 머금은 듯한 백색을 드러낸다. 반면 도딘의 〈X.K.N.31〉은 천연 안료와 유기 바인더를 여러 차례 쌓아 올려 은은하게 빛나는 표면을 형성한다. 비슷한 색채 안에서도 재료의 성질과 제작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깊이가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X.K.N.31〉은 흐엉 도딘이 2023년 박서보를 만난 뒤 그 만남을 기억하며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두 작가의 예술적 관계는 형식적인 유사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만남과 기억으로 연결된다. 관람자는 이 작품을 통해 회화적 탐구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 사이의 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미술관 옆 박서보재단의 26SQM에서는 두 작가의 작업과 활동을 기록한 흑백사진도 소개된다. 회화에서 확인한 반복과 절제의 결과를 사진 속 제작 환경과 작가의 모습에 연결해 볼 수 있는 자료다. 이처럼 전시는 작품과 기록, 제작 과정과 전시 공간을 함께 살펴보도록 구성되어 있다.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은 박서보를 한국 단색화의 역사 안에만 위치시키지 않는다. 도딘의 회화와 나란히 놓음으로써 반복과 절제, 물질과 빛에 대한 탐구가 서로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어떻게 발전했는지 비교하도록 한다. 선을 긋고 밀어내는 행위와 안료를 겹쳐 쌓는 행위는 서로 다르지만, 두 작가의 화면은 제작의 시간이 축적된 물질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만난다. 이번 전시는 비움이 결핍이 아니라 더욱 깊은 시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창작의 방식임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박서보미술관,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 공식 개관전 소개, 2026.

박서보미술관, 「박서보·흐엉 도딘 작가 소개」, 2026.

퍼블릭아트,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 2026.

서울신문, 「박서보미술관 문 연다…도딘과 2인전 ‘첫 터치’」,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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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위치

박서보미술관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24길 9-54 (연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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