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천안제로프로젝트 《눈금 없는 자(尺): 분류 이전의 것들》
- 기간
- 2026.09.15~2026.12.20
- 시간
- 화~일요일 10:00~18:00 / 17:30 (일반 관람 안내 기준)
- 장소
- 천안시립미술관
- 주소
- 충남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종합휴양지로 185 (용원리, 천안예술의전당)
- 휴관
- 매주 월요일, 기타 임시휴관 별도 공지
- 작가
- 조은시최희정
2026 천안제로프로젝트 《눈금 없는 자(尺): 분류 이전의 것들》
세계를 나누는 기준을 의심하다, 분류되지 않은 존재들의 가능성
우리는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 이름을 붙이고, 차이를 구분하며,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세계를 정리한다. 이러한 분류는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지만, 동시에 개별적인 존재가 지닌 고유한 특성을 하나의 범주 안에 가두기도 한다. 천안시립미술관의 2026 천안제로프로젝트 《눈금 없는 자(尺): 분류 이전의 것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측정과 분류의 기준을 되돌아보며, 그 바깥에 존재하는 관계와 가치에 주목한다.
천안제로프로젝트는 역량 있는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새로운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천안시립미술관의 공모사업이다. 2026년에는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조은시와 최희정이 선정되었다. 두 작가는 문화다양성을 단순히 서로 다른 문화의 공존이나 차이에 대한 존중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을 다르다고 판단하고, 어떤 존재를 동일한 범주에 포함시키는지 결정하는 사회적 기준의 형성 과정에 질문을 던진다.
전시 제목의 '자(尺)'는 길이를 측정하는 도구이면서 판단의 기준을 상징한다. 눈금이 새겨진 자는 사물의 크기를 수치로 환산하지만, 눈금이 없다면 그 자체로는 어떠한 길이도 확정할 수 없다. 이 역설은 측정의 기준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설정한 약속과 체계에 의해 작동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전시는 이러한 문제를 '재다'라는 동사의 이중적인 의미와 연결한다. 길이를 재는 행위와 이해득실을 헤아리는 행위 사이에는 대상을 비교하고 가치를 판단한다는 공통된 구조가 존재한다.
조은시의 작업은 이러한 분류와 측정의 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회화와 설치로 탐구한다. 작가는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고 일정한 위치에 배치하는 행위가 어떻게 하나의 질서로 받아들여지는지 살펴본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기준을 완전히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기준이 반드시 유일하거나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데 있다.
조은시가 제시하는 '우연의 척도'는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판단에도 선택과 관습, 역사적으로 축적된 우연이 개입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눈금이 없는 상태는 결핍이 아니라 아직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은 가능성이다. 관람자는 회화와 설치를 통해 익숙한 사물의 위치와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며, 기존의 분류 체계가 포착하지 못했던 차이를 발견하도록 요청받는다.
최희정은 '존재의 시세'라는 문제의식 아래 생명이 시장의 가치 체계 안에서 어떻게 평가되는지 탐색한다. 특히 반려식물의 거래와 이동에 주목하면서, 어떤 식물은 돌봄과 애정의 대상이 되고 다른 식물은 희소성과 가격에 따라 평가되는 상품이 되는 현실을 살펴본다. 생명체의 가치는 그 자체의 생존과 성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인간의 취향과 소유 욕망, 유통 구조, 경제적 조건이 복합적으로 개입한다.
작가는 이러한 관계를 영상과 설치, 드로잉을 통해 구체화한다. 반려식물을 둘러싼 돌봄과 거래의 과정에는 생명을 보살피는 개인적인 감정과 시장에서 가치를 산정하는 경제적 논리가 동시에 존재한다. 여기에 재개발과 같은 사회적 변화가 개입하면 식물이 머무는 장소와 소유 관계 역시 달라진다. 최희정은 이러한 이동과 변화의 흔적을 통해 생명의 가치가 가격이나 소유 여부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드러낸다.
두 작가의 작업은 서로 다른 대상에서 출발하지만, 존재를 판단하는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 살펴본다는 점에서 만난다. 조은시가 분류의 원리와 기준의 불확정성을 탐색한다면, 최희정은 그 기준이 실제 생명과 사회적 관계에 적용될 때 발생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는 측정의 체계를 질문하고, 다른 하나는 측정된 가치가 존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것이다.
《눈금 없는 자(尺): 분류 이전의 것들》은 문화다양성을 이미 구분된 집단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태로만 이해하지 않도록 한다. 분류 이전에도 존재는 저마다의 역사와 관계를 지니며, 어떤 기준으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고유성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회화와 입체, 설치와 영상이라는 서로 다른 시각언어를 통해 익숙한 판단의 기준을 잠시 유보하고,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차이와 관계를 발견할 가능성을 제안한다.
참고자료
천안시립미술관, 「2026 천안제로프로젝트 《눈금 없는 자(尺): 분류 이전의 것들》」 전시 소개 및 작가 소개, 2026.
문화체육관광부, 「2026 천안제로프로젝트 《눈금 없는 자(尺): 분류 이전의 것들》」 문화예술공연 안내, 202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 천안제로프로젝트 《눈금 없는 자(尺): 분류 이전의 것들》」 전시 정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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