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statement
“Nevermore”,“불필재不必再”
한 시인이 갈가마귀가 내는‘소리’ “caw caw” “깍 깍”이라는‘의성어’를 들으며 묘사해낸 죽음의 속성에 관한 단어입니다.의성어를 다른 말로‘소리시늉말’이라고도 합니다.어떤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내어 꾸미는 행위가 시늉인데 여기에 소리와 말이라는 단어들이 좌우에 붙어서 소리시늉말이라는 단어를 새로이 형성해 내고 있습니다.소리를 원자핵에 비유한다면 이를 에워싸는 전자껍질들이 각종 언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전자껍질에는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각각K, L, M이라는 명이 붙습니다.저는 껍질M에 위치하고 있는 언어가“Nevermore”,“불필재不必再”라고 생각합니다.껍질K에“caw caw” “깍 깍”그리고 껍질L에는‘의성어’를 위치시키고 싶습니다.껍질M에 있는 전자는 원자가 전자라고 한다고 하는데 이것에 어떠한 에너지가 가해지면 원자핵의 구속력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전자가 된다고 합니다.저는 이 어떠한 에너지에 정성스럽고 참된 귀납적 행위를 통한 연역에 의해 얻어진‘마음’을 배치시키고 싶습니다.그리고3개의 전자에너지의 궤도 속에는 공백들이 형성되어 있는데 저는 이 공백에‘소리시늉말’이라는 합성어가 지니는 의미를 안배하고 싶습니다. ‘소리+시늉+말’삼라만상의‘소리’그리고인간만이 지니고 있다는‘말’그리고 그 한가운데 존재하는‘시늉’이라는 생명을 지닌 존재들의 끊임없는 모방의 행위.
저는 저의 성장과정을 저는 이렇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Nevermore”,“불필재不必再”라는 단어를 자유전자화 시키는‘마음’을얻는 간단없는 운동으로 말입니다.이 면면한 운동 속에서의 힘에 겨운 호흡과 수많은 근육의 긴장과 수축,그리고 땀 흔들리는 망막 그리고 제가 디딘 밑면들에 남겨진 발자국들…종자가 하나 존재한다고 가정합니다.그러나 이 식물의 학명에 대한 정보가 존재치 않습니다.우리는 이 종자가 어떤 식물로귀결지어 질지 알 수 없습니다.불확실성 그 자체입니다.이 불확실성 속에서 하나의 확실성을 다시 한 번 가정합니다.그 확실성은 바로 이 종자가 대지에 자리를 잡고 일련의 자연현상들 속에 그 몸피를 담근 채 자라날 것이라는 것입니다.그러나 이확실성 또한 불확실하다는 역설에 노출됩니다.이 종자는 성장의 과정 속에서 예기치 못한 부조리에 노출되어 성장을 멈추고시들게 될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행운 속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할지 아니면 무미건조한 자라남의 루트를 밟게 될지 여러 가지의 가능성 속에 던져집니다.이 확실하면서도 불확실한 무언가가 바로 가능성입니다.우리 또한 이 종자의 기원을 모르는 하나의 식물처럼 모순과 딜레마를 안고 있는 가능성 속에서 인생을 살아나갑니다.그리고 하나의‘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이‘결과’는 또한 다채로운 경우의 수를 지니고 있습니다.그러나 이 다각화된 경우의 수 중 확고하게 정해진 수 하나가 있습니다.그 수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죽음’입니다.이 수를 제외하고 뻗어나가는 다양한 수의 줄기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일치점으로서 피어나게 됩니다.그러나 이 일치점은 미지의 소실점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면 그 문에 하나의 확고한 틀이 존재하고 있다는 확신을 우선시해야 하듯이 저는 이 소실점에 대한 하나의확신을 가정합니다.그 가정은 저의 오감을 통제하는 틀이 될 것이고 저의 행동반경을 구성할 것입니다.저는 그 가정을‘인간성’이라고 일컫고 싶습니다.저는 그 틀 속에 저를 고정시킨 채 보이지 않는 일치점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그 틀 속에 수많은문들이 소멸되었다가 다시 삽입되고 열렸다가 닫혔다가 하면서 인기척을 냅니다.이것은 하나의 현상입니다.그 현상이라는인기척을 들으며 저는 저의 근원적인 시작과 과정과 결과 그리고 그 안에서의 미시적인 시작과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유추하고 그 유추를 원용하여 여러 가지의 결과를 도출해 냅니다.
상술한‘인간성’이라는 틀안에서 여러 문들이 열렸다가 닫혔습니다.그리고 저는 이로부터 일련의 결과들을 산출해 내었습니다.그러나 제가 인세를 살아나가며 최근에 느낀 가장 큰 반전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이 틀 또한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과정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일종의 발견이었습니다.제 인간성은 철저히 귀납적이었기에 인간성이라는 틀 내에서 또다시여러 가정들을 도출하고,이것들의 데이터를 추출하고 재조합되는 미시성 속에서,크고 작은 과정들을 겪으며 이 가정들의 존폐여부에 대해서 결정을 내릴 수밖에는 없었습니다.저는 이 틀이 이제 변화하고 있다는 새로운 가정 상에 위치해있기에 현상이라는 문을 꿰뚫던 인기척들을 들으며 산출해 내던 저라는 불확실한 존재의 데이터들을 처분하고 있는 중입니다.그러나 이 존재의 데이터들의 경중을 헤아리기 이전에 저는 이 결과들이 도출되기 위해 최초로 존재했던 불확실성에서 저의 틀이 지니고 있던 오류의 단초를 찾았습니다.저는 학명을 모르는 하나의 종자가 발아하여 귀결되어질 일련의 과정들과 그에의해 판단되어질 최종적 학명에 대하여 그리고 그 최종적 학명의 경함에 대한 막연한 근심이 있었습니다.그 학명의 경함에대한 것은 명운 혹은 의지의 비극에 의한 것일 겁니다.저는 이 비극에 대한 겁을 없애고 싶습니다.죽음 이전에는 어쨌든 선순환인 삶의 궤도 속에서 이 걱정은 제 시간의 동선에 불필요한 어그러짐을 일으킬 것입니다.그 이지러짐의 말단에서 일어나는 후회를 줄이고 저의 최종 학명의 경함에 대해서 단말마의 순간에 세속적 경중의 규준에 얽매여 뉘우치려 들지 않고자 스스로의 심리기제를 중히 단련하고자 함입니다.
『장자』 제1편「소요유」에는 화이위조기명위붕化⽽爲⿃,其名爲鵬(변화하여 새가되니 그 이름은 붕이라 한다)이라는 글귀가 나옵니다.붕鵬은 본래 북명유어기명위곤北冥有⿂ 其名爲鯤(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다.그 이름은 곤이라한다)라는소요유편의 또 다른 글귀에서 보여지듯 곤鯤 이라는 물고기 였습니다.물고기가 새로 변화하는 비논리적인 순간이 이될 화化라는 문자에 압축되어 있는 것입니다.저는 이런 비논리적인 순간을 농축한‘될 화化’라는 문자에 농축된 종을 초월해버릴정도로 강력하고 신비스러운 가능성의 힘을 신뢰합니다.인습 속에 제한되는 가능성을 타파하는 힘은 현실이라는 벽 너머에넘실거리는‘변화化’의 가능성을 신뢰하게 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저는 제 삶과 타인들의 삶 간의 공유도를 높이고 인간과 인간,서로가 서로로부터 이러한 변화化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소통을 하고 싶습니다.원자와 원자를 결합하는 인력이 존재합니다.그것을 공유결합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저는 이 인력을 실존이라고 명명하고싶습니다.그리고 원자는 본질이라고 일컫고 싶습니다.본질과 실존의 접속,저의 생과 타인의 생이라는 두 본질을 결합시키는 접속의 인력,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모든 생의 혼성결집체 그리고 그것을 수렴시키는 장소,그리고 그 안에 그려지는 사람들의 망막의 동선,그리고 그 망막 속으로 수렴되는 다각화된 촉각의 입자들…그 속에서 저는 생의 약동(élan vital)을 느낍니다.저는 그저 발길이 닿는 곳마다 이 박동이 쏟아 내리는 언어들을 간절히 듣고 싶어 하는 한 이방인이 되고 싶습니다.그리고 이방인으로서 이 언어들을 가까스로 배워내어 절실하게 건내고 싶은 언어가 있습니다.그 언어는 언어의 최초의 초심인 침묵입니다.그러한 침묵이 되어 저는 이 생의 공정(vital process)이 그려나가는 동력의 일부가 되고 싶습니다.마침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