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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

김보중 개인전 《인간 이후 자연 - 식물형 인류》

기간
2026.10.03~2026.10.31
시간
화~일 10:00~19:00
장소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주소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4144
휴관
매주 월요일
작가
김보중

전시 소개

김보중의 회화는 오랜 시간 자신만의 ‘길’을 따라 전개되어 왔다. 그것은 자연을 단순히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 실존적 탐색이었다. 작가에게 숲은 일상의 복잡한 질서에서 벗어나 삶의 근원적 감각과 마주하는 장소이자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사유의 장이었다. 숲을 향한 고독한 순례의 여정은 때때로 거주지와 골목으로 이어졌고, 길과 땅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인간의 삶이 수많은 물질과 시간의 층위 위에 놓여 있음을 드러냈다. 최근작인 「공·생·인(共·生·人)」과 「나무 인간」 연작에 이르면 이러한 탐색은 공생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상상으로 확장된다.

     

개인전 《인간 이후 자연 - 식물형 인류》는 이러한 회화적 여정이 새로운 문턱에 도달한 자리다. 사회·경제적 위기와 극한기후의 현실 앞에서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오늘, 작가는 인간이 중심에서 한 걸음 물러난 자리에 무엇이 남고 무엇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여기서 ‘인간 이후’는 인간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세계의 주인으로 상정해 온 오래된 질서가 느슨해지는 상태에 가깝다. 인간을 수많은 존재 가운데 하나로 바라볼 때, 세계는 더 이상 인간을 위해 마련된 무대가 아니라 생명과 물질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호흡하며 얽혀드는 순환의 장으로 펼쳐진다. 이러한 관점은 식물과 비인간 존재를 인간 중심의 위계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유하려는 최근의 식물인문학과 비인간 연구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오랜 시간 색과 형태, 내용과 형식 사이에서 인간과 자연의 균형을 탐색해 온 김보중의 작업은 코로나19 팬데믹의 확산을 전후해 한층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인간 형상이 점차 해체되는 가운데 불필요한 요소들을 서서히 덜어내면서 화면은 고요한 힘을 얻는다. 그것은 무언가를 강하게 주장하기보다 오래 바라보고 견딘 끝에 남겨진 것에서 비롯되는 울림에 가깝다. 색채와 형상은 서로를 압도하지 않고 조응하며, 화면의 요소들은 하나의 중심으로 수렴하기보다 여러 갈래로 분기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중요한 것은 대상을 명확한 질서로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한 장면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공존하는 상태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러한 조형적 감각은 식물이라는 형상을 통해 더욱 선명해진다. 식물은 이동하지 않은 채 뿌리를 내리고, 빛과 물, 토양에 반응하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독립된 개체이면서도 주변의 조건에 깊이 의존하고, 그 조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다시 환경을 변화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생존의 방식은 화면의 구성 원리로 옮겨진다. 줄기처럼 뻗어가는 선, 잎처럼 겹치고 번지는 색면, 뿌리처럼 얽히고 퍼져나가는 형상, 중심을 고집하지 않는 배치는 고정된 틀 대신 확장과 분기, 융합의 감각을 형성한다. 경계를 확정하지 않는 색채는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고,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틈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형상이 깃들며 서로 다른 요소들이 호흡할 수 있는 여백이 된다.

 

이때 화면에서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인간 자체가 아니라 ‘인간 중심성’이다. 최근작으로 갈수록 인간의 형상과 문명의 흔적은 점차 작고 희미하게 남거나 숲과 자연의 일부로 스며들고, 그 자리를 식물과 흙, 공기와 어둠, 이름 붙이기 어려운 생명의 기척이 채운다. ‘인간 이후 자연’은 바로 이러한 비중심적 질서에 대한 생태적 상상이다. 인간은 더 이상 완결된 주체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생명과 환경의 조건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문명화가 초래한 생물다양성의 감소와 멸종에 대한 불안한 전망보다는, 인간·동물·식물·미생물·물질이 서로 얽혀 하나의 생태적 조건을 이루고 있다는 인식과 자연적 존재로서 인간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동시대적 감각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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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중, 인간 이후 자연, 전시전경, 2026

‘인간 이후 자연’ 연작, 2026
캔버스에 유채, 53 x 65 cm, 65 x 53 cm

     

이 작업이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와 만나는 장소적 맥락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성남 원도심의 오래된 주거 골목에 자리한 이 공간은 분당과 판교로 이어지는 고층 도시의 풍경과 빠른 개발의 리듬에서 한 발 비껴나 있다. 낮은 집과 좁은 골목, 오래된 벽과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일상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경험의 시간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에서 김보중은 약 한 세기 전 독일 다다이스트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가 열망했던 예술 공간 ‘메르츠(Merz)’의 정신과 만난다. 슈비터스의 메르츠가 일상의 파편을 새로운 관계 속에 배치하며 서로 다른 가치의 공존을 실험했다면, 김보중은 화려한 신도시와 대조되는 사회·경제적 맥락을 지닌 원도심 주택가의 대안공간에서 자신만의 인문적 생태를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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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중, 인간 이후 자연, 전시전경, 2026
‘식물형 인류’ 연작, 2025
종이에 아크릴, 76.5 x 58.5 cm, 77.4 x 58.5 cm

“과거 누군가의 따뜻한 삶터였던 집을 개조한 이 전시장은 자본과 결탁한 매끄러운 ‘화이트 큐브’와 최신식 시설의 오만함을 배반하는 생활 밀착형 대안공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지난 2~3년간 작업해 온 연작 회화와 드로잉 70여 점을 펼쳐 보이며, 들풀 같은 생명력을 환기하고자 한다. 나아가 대안공간이 지닌 장소의 역사성을 극대화함으로써, 100여 년 전 슈비터스가 열망했던 메르츠의 정신을 이 시대의 공간에 투영하고, 나만의 ‘21세기형 메르츠’ 실내 공간 구조를 시도해 보려 한다.” (김보중 작가 노트)

     

이 발언은 숲과 일상의 경계를 오가며 축적해 온 회화적 순례의 궤적을 삶의 흔적이 깃든 전시 공간에 연결하여 새로운 생명력과 확장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오래된 집의 구조와 생활의 흔적, 다양한 형상으로 전시장을 가득 채운 작품들, 관람객의 움직임, 그리고 빛과 계절은 서로 다른 층위를 유지한 채 하나의 장소에 포개진다. 과거의 흔적 위로 새로운 경험이 더해지면서 전시장은 완결된 질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라고 변모하는 열린 장으로 거듭난다. 사람의 삶을 기억해 온 집은 예술의 시간을 품고, 작품은 다시 그 장소에 새로운 기억을 새겨 넣는다. 집과 그림, 식물과 인간, 과거와 미래는 서로의 배경에 머무르지 않고 미완의 풍경을 함께 만들어간다. 이것이 김보중이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에서 시도하는 ‘21세기형 메르츠’이자, 이번 전시가 상상하는 식물적 세계의 한 단면이다.

     

김보중의 회화에서 숲과 거주지, 길과 땅, 인간과 식물은 하나의 선형적 서사로 귀결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서면 붓질이 지나간 경로와 표면을 쓸고 간 갈필의 자국, 겹쳐지고 흘러내린 안료의 흔적, 끊어진 선과 불완전한 형상의 얼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면 이 요소들은 하나의 생태적 풍경으로 전환된다. 윤곽은 무언가를 묘사하기보다 흐름과 감각의 방향을 가리키고, 색채는 경계를 설정하기보다 서로에게 스며든다. 그 안에서 인간과 식물, 기억과 물질, 과거와 미래 사이의 구분은 서서히 느슨해진다. 이러한 감각은 인물 중심의 연필 드로잉에서 인간이 숲과 깊숙이 동화되어 가는 최근의 유화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기의 작업들이 한 공간에 펼쳐지면서 전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변모시킨다. 그 풍경은 오랜 세월 켜켜이 축적된 원도심 주민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인간과 식물, 작품과 장소가 서로 얽히며 만들어내는 또 다른 생태적 밀도를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이후 자연 - 식물형 인류》는 인간이 완전히 사라진 불모의 세계도, 도래할 미래를 예언하는 거창한 묵시록도 아니다. 그것은 중심에서 한 걸음 물러난 인간의 자리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나고, 울창한 숲속 어디선가 흙과 빛, 물질이 저마다의 시공간을 교차시키며, 너무나 미세하고 익숙해서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생명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마주하는 일이다. 식물처럼 뿌리내리면서도 주변으로 확장하고,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환경을 변화시키는 생존의 방식은 급격한 전환의 시대를 통과하는 예술에 새로운 감각을 환기한다. 결국 이 전시는 인간 중심의 시선을가로질러 다른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해 온 김보중의 회화적 여정을 통해 오늘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시 상상할 수 있는가라는 열린 질문을 남긴다.

     

 ■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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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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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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