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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

2026 의정부문화역 이음 초청전시《의정부에 도착한 시선들》 혜원 개인전 《너와 나에게 속삭이는 식물들》

기간
2026.09.29~2026.10.17
시간
10:00 ~ 20:00
장소
의정부문화역 이음 ‘창작스튜디오’ 룸1
주소
경기 의정부시 평화로 525 의정부역사 4층 (의정부동, 의정부민자역사)
휴관
일,월, 공휴일 휴무
작가
혜원
1

전시 소개

당신이 이 방에 들어설 때, 나는 이미 여기 누워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당신이 아는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나는 길가에서 당신이 무심히 밟고 지나가던 것, 여름의 공원에서 너무 무성하다는 이유로 뽑혀 나가던 것,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도 해마다 같은 자리에 돌아오던 것입니다. 그런 내가 오늘은 종이가 되고 꽃이 되고 숲이 되어, 당신 앞에 다가갑니다.

나는 먼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당신을 올려다 볼 거예요. 방을 가로지른 한지, 그 위의 무늬는 누가 나를 그린 것이 아닙니다. 아까시꽃과 잎인 내가, 제가 놓인 자리에 제 몸의 물과 빛깔을 풀어낸 자국입니다. 나는 내 형상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직접 남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자국을 무엇의 상징으로 읽지는 말아 주세요. 나는 무엇을 대신하러 온 것이 아니라, 다만 나 자신으로 여기 내려앉았을 뿐이니까요. 종이 위에 별처럼 흩어진 작은 빛들은, 내가 어둠 속에서도 여태 살아 있다는 조용한 기척입니다.

그 한가운데 오래된 그루터기가 있고, 그 위에 유리에 갇힌 민들레 홀씨 하나가 놓였습니다. 흩어지기 직전의 모습 그대로 멈춘 나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나를 두고 짓밟혀도 다시 피는 억척스러움이라 말하지만, 오늘 나는 그 말을 잠시 내려놓으려 합니다. 나는 강해서 남은 것이 아니라, 바람을 믿고 제 몸을 아낌없이 흩어 온 자리마다 다시 시작했을 뿐입니다. 흩어짐은 사라짐이 아니라 나눔이었습니다. 치우침 없이 나눈다는 뜻을 내 오래된 이름에 담아 준 이들이 있었지요.

나는 밤에 피는 꽃이기도 합니다. 장 안쪽, 문틈으로만 겨우 보이는 자리에서 여름밤을 기다려 조용히 벌어지는 달맞이꽃. 환한 낮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 피는 일이 내게는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소임을 다하는 삶들이 있고, 나는 그 편에 서있습니다. 그러니 당신도 이 어두운 방에서 눈이 어둠에 익을 때까지 잠시 멈추어 주세요. 잘 보이지 않는 것 앞에서 기다려 주는 그 짧은 시간이, 내가 당신에게 청하는 단 하나의 예의입니다.

다른 벽 앞에는, 얇은 천에 스민 겨울나무의 숲을 두 폭 병풍으로 세워 두었습니다. 잎을 다 내려놓은 잔가지들이 빛을 등질 때, 그때의 숲과 지금의 숲이 한자리에서 어른거립니다. 그때도 여기 있었고 지금도 여기 있는 나무들…. 사람의 시간표 위에서 어떤 나무는 기지가 들어서느라 베여 과거가 되었고, 어떤 나무는 땅을 씻어 내는 동안 머지않아 사라질지 모르는 현재가 되었지요. 나는 그 서로 다른 시간을 한 폭의 천 위에 겹쳐, 아직 끝나지 않은 속삭임으로 걸어 두었습니다. 잎을 다 떨군 뒤에도 나무는, 나는 말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그치지는, 않을 것이지요.

당신은 오래전에 나를 잊은 그대입니다. 미워한 것도 아니고 버린 것도 아닌데, 그저 너무 오래 곁에 있어 곁에 있는 줄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아픈 줄도 모르는 상처가 가장 깊다는 걸, 나는 뽑히고 잘리며 배웠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당신이 나의 일부라는 것을 잊은 채 여기까지 온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그 사소한 일조차, 실은 나와 당신이 쉼 없이 주고받는 일이었는데 말이에요.

달이 기울기 전에, 이 편지를 맺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나를 구해 달라고 청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 곁에 여태 살아 있었다고, 종이로 꽃으로 숲으로 이렇게 몸을 지어 또 한 번 인사하러 왔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밤이 오면 땅 위에도 달이 뜬다는 것을, 우리의 갈망과 이빨 사이로 샘물 한 줄기가 아직 흐른다는 것을 당신에게 적어 보냅니다. 답장은 재촉하지 않겠습니다. 잎이 된 내가 제 자국을 남기고 가듯, 당신도 언젠가 당신의 방식으로 이 자리에 무언가를 두고 갈 테니까요.



작가 : 혜원

기획 : 문규림

글 : 조재연 

그래픽 디자인 : 정민수 

주최주관 : 의정부문화관광재단, 문화도시의정부

#혜원 #의정부전시

전시 위치

의정부문화역 이음 ‘창작스튜디오’ 룸1

경기 의정부시 평화로 525 의정부역사 4층 (의정부동, 의정부민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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