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켄들을 위한 메모렉스》
- 기간
- 2026.10.22~2026.11.28
- 시간
- 11~18시
- 장소
- 김희수아트센터 아트갤러리 2
- 주소
- 서울 동대문구 홍릉로 118 (청량리동, 수림문화재단)
- 휴관
- 일요일, 공휴일 휴관
- 작가
- 권희수김연진안가영전다화
《크라켄들을 위한 메모렉스》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기억과 서사, 제도와 언어의 경계에서 다시 사유하는 관계
우리는 어떤 존재를 기억하고, 어떤 이야기를 기록하며, 무엇을 사회적으로 가시화하는가. 하나의 사회가 공유하는 역사와 지식은 모든 존재의 경험을 동등하게 담아내지 않는다. 제도와 언어가 규정하는 범주 안에서 특정한 주체는 분명한 이름과 위치를 부여받지만, 다른 존재들은 쉽게 설명되지 않거나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주변에 머무르기도 한다. 《크라켄들을 위한 메모렉스》는 이러한 기억과 기록,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수림문화재단의 기획자 창작랩(APL) 2026을 통해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독립큐레이터 이시연의 기획으로 마련된다. 현대미술이론을 연구해 온 이시연은 미신적이고 신화적인 존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제도와 언어의 바깥에서 형성되는 주변화된 주체들의 관계와 서사를 탐구해 왔다. 특히 사회적·물질적·기술적 인프라와 제도적 하부구조가 신체의 수행성과 감각을 조직하는 방식, 그리고 이러한 조건이 무엇을 보이게 하고 무엇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지에 주목한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크라켄'은 일반적으로 바다 깊은 곳에 존재한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신화적 생명체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시야와 인식이 닿지 않는 영역에 머무는 존재라는 점에서 크라켄은 알려진 세계의 경계와 그 너머를 상상하게 하는 흥미로운 이미지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 크라켄이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나 사회적 주체를 가리키는지는 공식 기획 설명이 추가로 공개되어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메모렉스(Memorex)'라는 단어 역시 기억과 기록, 복제와 재현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요소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상만으로 전시가 특정한 기억 이론이나 기술 매체를 직접 다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제목에 담긴 낯선 조합은 우리가 어떤 존재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방식에 관해 질문할 수 있는 출발점을 제공한다.
이시연의 기존 연구 관심을 바탕으로 이번 전시를 바라볼 때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주변화'다. 주변화된 존재는 단순히 사회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목소리가 정당한 발언으로 인정되는지, 누구의 경험이 기록할 만한 역사로 받아들여지는지, 무엇이 정상적인 신체와 행동으로 분류되는지를 결정하는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러한 구조는 반드시 명시적인 규칙이나 법률의 형태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일상적인 언어의 사용, 공간의 배치, 기술 시스템의 설계, 정보를 분류하는 기준과 같은 다양한 조건을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된다. 우리는 이러한 체계 안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지만, 그 체계 자체가 특정한 존재를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기획자가 관심을 두는 사회적·물질적·기술적 인프라는 신체와 감각을 개인의 내부에만 속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한다.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는지는 주변 환경과 제도적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신체의 경험을 탐구하는 일은 동시에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하거나 제한하는 사회적 구조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가시성과 비가시성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를 넘어선다. 어떤 존재가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설명될 수 있는가, 어떤 경험이 지식과 기록의 영역에 진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미술이 익숙한 재현의 방식을 넘어, 기존의 인식 체계가 포착하지 못했던 관계와 감각을 탐색하는 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신화적 존재에 대한 관심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과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신화와 미신은 근대적 지식 체계 안에서 비합리적인 것으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과 존재를 설명하고 관계 맺기 위해 만들어 온 다양한 상상력의 흔적이기도 하다. 정해진 분류에 쉽게 들어맞지 않는 존재를 상상하는 일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계의 경계를 다시 살펴보게 한다.
《크라켄들을 위한 메모렉스》라는 제목은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열린 질문으로 다가온다. 누가 기억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기록의 바깥에 머무는 존재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만의 서사를 형성하는가. 그리고 예술은 기존의 언어와 제도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관계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도록 하는가.
이번 전시는 김희수아트센터 아트갤러리 2에서 개최된다. 수림문화재단의 기획자 창작랩이라는 창작지원의 맥락 안에서, 독립큐레이터의 연구와 문제의식이 하나의 전시로 구체화된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현재 공식적으로 공개된 정보는 전시 일정과 장소, 기획자 소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참여 작가와 개별 작품, 세부 프로그램은 추후 안내될 예정이다. 따라서 전시의 구체적인 매체 구성이나 작품별 의미를 미리 규정하기보다는, 기획자의 연구가 실제 전시 공간에서 어떠한 조형적 언어와 관계를 만들어낼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크라켄들을 위한 메모렉스》는 익숙한 분류와 인식의 체계 바깥에 놓인 존재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제목을 통해, 기억과 서사, 신체와 감각, 제도와 기술의 관계를 사유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언제나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그 바깥에도 여전히 발견되지 않은 관계와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한다.
참고문헌
수림문화재단, 「크라켄들을 위한 메모렉스」 공식 프로그램 안내, 2026.
수림문화재단, 「수림문화재단 기획자 창작랩(APL) 2026」 기획자 이시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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