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8시가 되면 세운상가의 상점들은 ‘샤따’를 내린다. 길가에 늘여 놓은 짐들이 둔탁한 셔터 안으로 복귀할 시간이다. 퇴근하듯 집으로 돌아온 짐은 비좁은 방 안에 오밀조밀한 내장처럼 안착한다. 이 좁음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몸과 그보다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세운상가 일대의 인쇄업소는 높은 임대료 때문에 하나의 공간을 두 사업장으로 쪼개 쓰는 ‘모찌꼬미’ 방식을 택해 왔다. 정해진 공간에 눌러 담긴 세대는 서울의 비좁은 원룸과도 닮았다. 양보할 수 없는 자리에서 뻗는 두 다리는 빨래를 널기 위해, 밥상을 펴기 위해 접히고 또 펼쳐진다. 하나의 사업장이 둘로 나누어지듯 다섯 평 집에 놓인 짐들은 공간을 애써 분리한다. 짐의 모양에 따라 만들어지는 집의 동선은 파도에 연마된 곶을 닮았다. 1평 남짓의 전시 공간이 세운상가의 상점들과 등을 맞댄 것처럼, 곶이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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