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하는 생명 그리고 불이(不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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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갤러리지오 댓글 0건 조회 5,439회 작성일 16-05-11 15:27작가명 | 김소산 개인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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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16-05-14 ~ 2016-05-27 |
초대일시 | 2016.5.14 오후5시 |
휴관일 | 연중무휴 |
전시장소명 | 인천시 중구 해안동 2가8-15번지 갤러리지오 |
관계하는 생명 그리고 불이(不二)
김소산의 작품은 늘 관계하는 생명의 섭리를 담아 왔다. 초기 작품 <화인>에서는 꽃과 여인의 모습으로 인간과 자연을, <자연을 먹은 자연>에서는 자연 안에 담긴 자연을, <부화>에서는 자연을 뚫고 나오는 자연을 통해 다양한 생명의 모습을 담았다. 2006년부터 시작된 <화생> 시리즈에서는 우리 주변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생명들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화생은 생물학적으로는 변화와 변질을, 불교 용어로는 어느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업력(業力)으로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화생> 시리즈의 초기에는 먹으로 미세한 번짐의 효과를 통해 균과 같은 미생물의 변화를 표현했다면 이후에는 ‘자생력’의 아름다움에 화려한 색채로 찬사를 보낸다. 이번 <스포어 스페이스(Spore space)>의 ‘홀씨(Spore)’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것과 합체하는 일 없이 단독으로 발아하여 새 개체가 되는 ‘자생력’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를 통해 작가가 의도한 두 시리즈 간의 같지만 또 다른 주제적 연결 고리를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2012년 <셔틀(shuttle)>시리즈에서 생명의 탄생을 위한 ‘꽃가루’와 공간 이동을 위한 ‘셔틀’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했던 것과 달리, 2013년 <스포어 스페이스>는 더 나아가 ‘홀씨’라는 보다 완결적인 생명체를 표현하고 있으며 ‘요술지팡이’라는 가상의 인터페이스를등장시킨다. 또한, <셔틀>이 꽃가루가 이동하며 여기 그리고 저기를 연결하는 그 지점에서 같은 꽃가루를 공유하지만 다른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번 <스포어스페이스>에서는 자기 완결적인 홀씨들과 다른 홀씨들이 맺는 관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보여주고자 했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김소산의 작품은 ‘현대 한국화(韓國畵)'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의 경력은 고려 불화가 가지고 있는 색채의 화려함, 조선 민화에서 자주등장하는 꽃과 같은 형식 및 소재의 유사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또한, 그녀는 여전히 면 보다는 한국화의 전통적 특징 중 하나인선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선과 선 사이의 수 많은 공간을 통해 ‘무한한 공간감’을 확보하려는 작가의 의도에 부합한다. 이 외에도 정해진 평면을 사용해야 하지만 그 평면의 테두리 안에 갇힌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공간을 확장하려는 작가적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조각 그림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그림이 되는 퍼즐 형식의 그림이나 사각이 아닌 다면체의 그림, 높낮이가 다른 그림 등이다. 더 나아가 이번 <스포어 스페이스> 시리즈에서는 그림을 일종의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상징적인 인터페이스로 설정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먼저 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로 닭 모양의 형상 위에 홀씨를 얹어 놓은 ‘요술지팡이’를 선보인다. 전통적으로 보자면 상서로운 닭은 다른 세계로 향하는 열쇠가 되기에 충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류이지만 가축으로 길들여져 날지 못하는 닭은 지금 이 세계에 길들여져 다른 세계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한편, 이 ‘요술지팡이’가 열어 주는 다른 세계는 원, 타원, 육각 등의 수 많은 작은 홀씨들이 무한한 관계들을 형성하며 일종의 만다라 형상을 하고 있다. 만다라(Mandala)는 법계(法界)의 온갖 덕을 망라한 진수(眞髓)를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佛畵)의 하나로 ‘진수’ 또는 ‘본질’이라는 뜻의 만다(Manda)와 ‘변한다’는 뜻의 접속어미 라(la)가 합쳐진 것이다. 끊임없는 변화의 국면에 주목하는 작가에게는 좋은 형식적 차용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만다라가 그러하듯 현실적인 공간배열보다는 상징적이고 이념적인 면에서 그 형식을 빌어와 독특한 방식으로 홀씨들을 배열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이전 작품이 추구했던 수평적 관계 맺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직적 관계 맺기를 더한다. 이전 시리즈가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과의 수평적 관계 맺기였다면 이번 시리즈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우주와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했고 이를 위한 형식적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재료적 실험이 더해진다. 예를 들어, 김소산의 작품에서 퍼즐을 맞추듯 모두 다른 시공간의 과거를 가진 나무 조각들은 각기 그려지고 하나의 캔버스에서 다시 만나며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닌 생명을 발한다. 나무 조각들이 거울을 보듯 마주 보고 같은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 장이 끝나면 다음 장이 기다리고 있는 생의 섭리처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또한, 캔버스 대신 자연의 일부인 나무 위에 인간이 그린 생명의 이미지가 만나 실재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경계 없는 생명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셔틀>시리즈에서 시작된 따뜻한 느낌의 나무와 차가운 느낌의 스테인레스스틸을 동시에 사용하는 재료적인 실험은 <스포어스페이스>에서는 스테인레스스틸 뿐만 아니라 알루미늄과 동을 더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또한, <셔틀>에서 나무를 잡아주는 버팀으로 사용되던 금속 재료는 <스포어스페이스>에서 닭, 만다라 등 보다 본격적인 형상으로 등장하거나, 나무 뒤가 아니라 나무 위에 올려지기도 한다. 이 경우, 금속 위에 새겨진 이미지와 에칭에 의해 뚫린 선들 사이로 그 아래에 놓인 나무 위에 그려진 세계를 동시에 보여 줄 수 있게 된다. 나무 역시 겹겹이 쌓여 하나가 된 합판을 쓰고 그 겹들을 드러내기 위해 측면까지 겹겹이 색을 입힌다. 이렇게 다른 차원으로 확장된 관계 맺기는 <스포어 스페이스>의 작가 노트에 등장하는 ‘블랙홀, 화이트홀, 웜홀’이라는 주제어들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인 용어들에도 불구하고, 김소산의 작품은 과학적 현상 자체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은 각각의 존재적 자생력을 추구하지만 오히려 이 ‘대립’하는 존재들 간의 ‘관계’ 안에서 근원적으로 ‘불이(不二)’하다. ‘불이’는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모든 현상의 궁극의 섭리는 같음을 찾는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에서 나온 말인데, 인간세상의 화(和)와 쟁(諍)을 정(正)과 반(反)에 두고 그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합(合)이 아니라, 정과 반이 대립할 때 오히려 정과 반이 가지고 있는 근원을 꿰뚫어보아 이 둘이 불이(不二)라는 것을 체득함으로써 쟁도 화로 동화시켜 나간다고 말한바 있다.
지금까지 살펴 본 김소산의 작업에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어둠과 밝음, 여기와 저기, 막힘과 열림, 나와 우주, 이 우주와 저 우주 등 공간이 ‘불이’하고, 빠름과 느림, 움직임과 쉼, 과거, 현재, 미래 등 시간 역시 ‘불이’하다. 이 철학이 우리의 정신을 담은 김소산의 작품에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예술간의 경계가 무너진 탈장르의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는 이러한 동시대의 요구에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과학적 용어와 개념들을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과 스테인레스스틸, 동, 알루미늄, 아크릴 물감 등 다양한 재료 및 입체 실험은 전통 ‘한국화’가 가지고 있던 특성은 아니다. 김소산은 전통과 이 시대의 다리 역활을 하는 ‘동시대 예술’을 하는 ‘동시대 작가’이다. 그리고, 이 작가의 예술에 대한 해석은 관객에게 맡겨야 마땅하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작품들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품의 변화 과정을 비교적 오랜 동안 지켜 볼 수 있었던 필자의 견해가 수 많은 관객들이 <스포어 스페이스>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소통의 창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최두은(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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