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탄다 Light is Burning - LESS(김태균)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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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rt 댓글 0건 조회 6,803회 작성일 12-01-13 16:23작가명 | LESS(김태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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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12-01-13 ~ 2012-02-03 |
휴관일 | 월요일 휴관 |
전시장소명 | 갤러리 팩토리(Gallery Factory) |
관련링크 | http://www.factory483.org 1886회 연결 |
빛이 탄다 Light is Burning - LESS(김태균)展
LESS(김태균) Solo Exhibition
▲ LESS(김태균), a boiled egg, 50.8x50.8, lambda print, 2009
▲ LESS(김태균), a boiled egg, 50.8x50.8, lambda print, 2009
전시작가 : LESS(김태균)
전시일정 : 2012. 01. 13 ~ 2012. 02. 03
관람시간 : Open 11:00 ~ Close 18:00(월요일 휴관)
빛이 타들어간다. Less의 무기력한 청춘의 초상
강영민(팝아티스트)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니라 무기력이라고 했던가? 절망하는 것은 희망을 가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절망하는데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교활하고 가련한 청춘들이 Less의 희뿌연 노이즈가 가득한 사진의 그물에 걸려 퍼덕대고 있다. 그들은 교활하지만 멍청하고, 착하지만 어둡다. 청춘은 원래 찬란한 빛이었으나 그들은 이내 좀비가 된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Light is Burning'처럼 청춘들은 노출되자마자 타들어간다. 감광되어 연소된다. 사진이라는 광학적 고문은 그들을 필름위에 잔혹하게 캡쳐한다. 청춘이란 빛을 카메라옵스큐라라는 블랙홀에 가둬버린 사진가는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보인다. 유령들이 튀어나온다. 그들은 다시 화이트큐브라는 전시장에서 원치 않게 부활한다.
이들 청춘의 군상들은 더럽고 깨끗하다. 이들이 변두리를 배회하는 양아치든, 페도라에 프레디 페리 피켓셔츠를 걸친 힙스터든, 한국의 베타밴드나 디어헌터를 꿈꾸는 홍대앞 인디스타워너비든, 청담동과 가로수길을 배회하며 자기실속 챙기는 걸 제외하곤 모든 걸 쌩깔 준비가 되어 있는 된장녀남이든, 그들의 욕망은 정제되지 않아 더럽고, 그 욕망을 책임질 필요가 없어 깨끗하다.
이런 상반되고 정제되지 않는 정념(情念)들을 Less는 특유의 모호한 프레임으로 캡쳐한다. 그 수법은 앞서 언급한 노이즈다. 쨍한 상업사진들에 대비되는 거친 입자들, 흔들리는 조명들, 모호한 미장셴과 인물들간의 관계설정들, 뜬금없이 블러링(Bluring)된 이미지들. 이상한 얼룩들. 가슴속에서 부서지며 뭉개지는 이 정체불명의 아픈 존재들. 나는 이것들을 ‘청춘의 노이즈’라 부르고 싶다.
▲ LESS(김태균), Geonu is dancing, 101.6x127cm, lambda print, 2011
▲ LESS(김태균), girl in grass, 76.2x101.6cm, lambda print, 2011
▲ LESS(김태균), jumping rick, 30.5x43.2cm, lambda print, 2008
내가 Less를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아직 을씨년스러운 늦겨울, 서울 상암동의 하늘공원에서였다. 난지도의 쓰레기더미위에 쌓아올려진 가짜 갈대숲에서 Less는 지금은 스타가 된 장기하가 있던 밴드 ‘청년실업’의 인터뷰화보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바자코리아에서 유니클로의 후원을 받아 준비하던 인디밴드컴필레이션 앨범에 청년실업을 소개해준 인연으로 그곳에 놀러갔다. Less는 소품으로 사과를 준비해 와서 청년실업에게 포즈를 취해보라 시켰는데, 그것이 나에겐 금단의 열매처럼 보였다. 청년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어떤 의식이라고나 할까? 청년실업은 머뭇거리며 사과를 베어 물었지만 이내 입안의 파편을 서로의 얼굴에 팍 튀겼던 것 같다. 청춘의 파편, 청춘의 노이즈를 그들은 뱉어냈다. 그 후 Less는 자신의 첫 전시에 나를 초대했다.
2008년 갤러리2에서 열린 Less의 첫 번째 전시, ‘Are You experienced?’를 봤을 때 젤 처음 든 생각은 정말 ‘패셔너블’하다였다. 그건 메이져 패션지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엣지’있는 나태한 주류의 패션이 아니라 도심의 깊숙한 구석에서 배회하는 아직 정형화되지 않는 비루한 청춘의 군상을 쿨하게 잡아낸 Less의 감각에서 느껴지는 쾌감이었다. 88만원세대라는 몰취향적이고 굴욕적인 단어로 명명된 젊은이들이 어두운 덤불넝쿨위로 ‘스타일리쉬’하게 오줌을 갈기고 있었다. 그 전시를 보며 나는 Less가 미술계도 미술계지만 패션계의 러브콜을 받을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이 있었다.
그 예상은 적중해 Less는 각종 패션화보를 찍고 아이돌들과 인디밴드들의 앨범커버를 장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Less의 도착증적이고 사춘기적인 날것의 느낌이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들며 예민한 쇼비지니스의 촉각을 건드렸다고나 할까? 그런데, 잘나갈 것 같던 그들(당시엔 김태균, 윤상범의 듀오였고 지금은 김태균 혼자 Less라는 이름을 대변하고 있다)은 중국 운남성에 다녀 온 후 카메라 장비를 몽땅 잃어버리고 부침을 겪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는 아팠을 이 사건이 그들의 상업적 성공을 경계하는 어떤 조짐으로 느껴졌다. 매끄럽고 화사하게 성인의 시장에 들어가기엔, 그들이 희생시킨 청춘의 유령, 노이즈의 자장이 그들을 아직 놓아주지 않았던 것일까?
▲ LESS(김태균), nothing special, 40.6x50.8cm, lightjet c-print, 2011
▲ LESS(김태균), rockstar, 30.5x43.2cm, lambda print, 2010
▲ LESS(김태균), sunday morning, 50.8x50.8cm, lightjet c-print, 2009
Less의 초기작업이 노이즈 가득한 경계를 만들었다면, 김태균 혼자가 된 Less는 이제 경계를 다른 식으로 흐트러트리기 시작했다.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블러링을 통해서 말이다. 존재들은 부서지고 뭉개진다. 그 경계는 청년과 성인, 순수예술과 상업예술, 원시와 문명, 생명과 죽음, 셀레브레이션과 엔터테인먼트, 살아남은자들과 유령들이다. Less는 그 경계를 무화(Less) 시키고자 한다. 그 경계에서 소멸(Less)되고자 한다.
이것은 펑크다. 그런데 무기력하다. 반항기 가득한 청년들의 더러운 에너지를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은 세련되게 흡수한다. Less의 ‘무기력한 펑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이즈를 생산할 것이다. 왜? 그것은 더러우니까. 깨끗하니까. 그것은 섹시하니까. 더럽게 깨끗한 그 존재들은 당신을 원망할테니까. 그것은 당신의 가슴에는 바로 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피부에는 얼룩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타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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