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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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201 댓글 0건 조회 2,173회 작성일 23-07-02 16:18작가명 | 구지언, 왕칸나, 이지은, 진숙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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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23-07-01 ~ 2023-07-08 |
휴관일 | 월요일 |
전시장소명 | AP 23 |
전시장주소 | 04052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157 산울림소극장 2층 |
관련링크 | https://www.instagram.com/access_ap23/ 1326회 연결 |
해가 지면 지구의 반은 그림자가 진다. 지구는 해를 돌고 달은 지구를 돌아, 태양이 닿는 곳이나 닿지 않는 곳이나 달은 그 주위를 맴돌고 있을 테다. 빛 속에 희게 숨어있던 달은 어슴푸레한 구름이 낮게 깔리는 매직아워(magic hour)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해가 지고 그림자로 뒤덮이는 시간에는 모든 것이 모호해지므로 우리는 명료하거나 증명할 필요 없다. 그저 모든 이야기에 모든 존재에 고개를 까딱대며 있을 법한 일이야, 하고 흘려 넘기면 될 뿐이다. 그러니 어떤 말이든 망설임은 털고 시작해 보자, 이제 우리의 시간이고 우리의 세계이다.
광대한 응달을 비추는 달은 밤 위로 흐릿한 그림자를 겹쳐내고 그 틈 사이에서 괴물은 움직인다. ‘괴상하게 생긴 물체’라니, 그러나 여기 있는 이들은 그 말을 기껍게 받아들인다.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존재들-신, 괴물, 크리쳐(creature) 따위의 것-은 무어라 이름을 붙여 보아도 온전히 이해될 수 없으리라. 말은 본디 어긋나고 와전되기 마련이니 이 밤의 이야기는 오롯이 우리의 유희이다. 구전과 상상이 뒤섞이고 그 혼란의 기록이 그림과 말로 발화되는 순간, 이것은 실제가 아니지만 거짓도 아니게 된다.
앙브르와즈 파레(Ambroise Paré)는 『괴물과 경이로운 존재에 관하여』(1573)에서 괴물의 탄생 원인을 13가지로 정리하는데 그중 하나가 ‘상상’이다. 상상의 산물을 실재하는 괴물로 상정해 실존 불가능한 존재를 설명하려 한 그의 상상력은 후대에도 이어져, 말브랑슈(Nicolas Malebranche)와 같은 17세기 철학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말브랑슈는 산모의 강한 상상력이 ‘괴물 아이’를 태어나게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은 얼핏 흥미롭게 다가온다. 상상이 신체를 변형시킬 수 있다면-그리고 그것에 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그것만큼 이 사람들을 설명할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구지언, 왕칸나, 이지은, 진숙희는 자신만의 괴물을 화면에 재현함으로써 캔버스 밖으로 이들을 불러낸다.
구지언의 중성신(中性神) 곁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생김새의 동식물이 위치해 있다. 화려한 깃털을 지닌 캘리포니아 콘도르는 신의 권속마냥 발치에 앉아있고, 그 뒤로 나비 날개와 후광을 지닌 운조(雲鳥)의 중성신이 자리한다. 정확히 정면을 바라보는 엄숙한 신의 표정과 기묘한 외형의 새는 낯선 조화를 창발하며 익히 보아왔던 신의 초상을 어긋나게 만든다. 푸른 눈을 빛내며 손을 내미는 지룡(地龍)의 중성신에 들어서면 전통적인 무신도(巫神圖)의 문법은 완전히 사라진다. 크기와 도상, 형식, 심지어 그림의 목적 자체도 바뀌며 구지언의 신은 불가침의 성역이 아닌 혼성적이고 가변적인 지점을 점한다. 그가 특정한 형태 자체를 취하지 않는 액체의 유기적인 형상에 매료된 까닭은 중성신 시리즈에서 이미 예고된 듯 보인다.
왕칸나가 그리는 일련의 크리쳐는 ‘괴물’과 ‘경이로운 존재’를 오가며 현실과 상상을 혼재시킨다. 찰랑이는 머리카락에 온몸이 감겨 스스로를 옥죄는지 감싸는지 알 수 없는 존재는 수많은 은유를 내포한다. 고통스러운 순종을 체화한 괴물의 상황은 부수적인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우리에게 닿는다. 다만 그가 상상한 신은 사뭇 다르다. 왕칸나의 부족을 수호하는 부구 에네(Bugu Ene)는 긴 머리를 땋아 가느다랗게 늘어뜨리고 여유롭게 기대 누워 화면 밖을 응시한다. 나의 신이라면 응당 나의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터, 작가는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며 소실된 부족신의 자료를 탐구하고 거기에 상상을 가미해 자신의 정체성을 반영하면서도 어떠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신을 그려낸다.
어딘가 단단해 보이는 앞선 두 작가의 ‘신’적인 존재에 비해 이지은의 생명체는 가냘파 보인다. 화면의 가장자리를 둘러싼 프레임은 이 아름다운 존재들의 서사를 신화화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며,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한 층 강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얼굴을 마주한 이들에게는 투명한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이 있어 반인반수(半人半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살점이 붙어 있지 않은 붉고 얄팍한 복부는 ‘반인반수’의 위협적인 어감과 사뭇 대조적이라 이들 존재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내리기 어렵다. 갈비뼈가 드러난 채 베일을 쓰고 날개를 맞잡은 이들의 모습은 의례를 연상하게 하나, 우리는 그저 상상과 유추만 할 뿐이다. 뿌리 없이 돋아나는 이들의 세계는 토대 없이 불안정해 어떠한 확신도 담보할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 한계 없는 상상을 추동한다.
진숙희에게 괴물은 보다 우리의 모습에 가깝다. 외형뿐 아니라 생(生)의 의지 없이 생산되어 소비와 충전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공허한 표정의 괴물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건 비단 당신만이 아니다. 내리치는 비를 간신히 피할 수 있을 만한 좁은 공간에서 충전 호스를 끼워 넣은 몸체는 익숙하기에 더 낯선 언캐니(uncanny)를 촉발한다. 겨우 충전을 끝내는 순간 다시 에너지를 써야만 하는 무한의 굴레는 세상에 내던져진 우리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인조인간을 상상하는 우리에게 진숙희의 세계는 마치 미래의 한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작가는 작업에 시점을 규정짓지 않는다. 후드티를 입고 가스등을 쥔 앳된 이를 보라, 높은 찬장에 구태여 올라서서 발광하는 약물을 들이키는 괴물은 과연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 것인가.
강인한 신을 거쳐 유약한 존재로, 그로부터 우리의 모습과 겹쳐지는 익숙한 존재로 뒤섞이고 이행하는 괴물의 형태는 단일한 규정을 온 힘으로 거부한다.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달의 괴물들은 빛이 가려진 시간을 틈타 마음껏 존재를 내보이고자 한다. 구지언과 왕칸나, 이지은, 진숙희에게 괴물은 상상의 소산이겠으나 이들의 기록으로부터 괴물은 수많은 이름을 취하며 구전이 되고 오해를 빚으며 또 다른 상상의 물꼬를 틀 것이다. 그러니 기억하라, 지금 내가 미친 사람의 망상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것은 어느 땅거미 지는 날 당신을 불쑥 찾아가 또 다른 괴물을 태동케 할 것이다.
|글 한문희(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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