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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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rt 댓글 0건 조회 11,403회 작성일 12-10-23 09:47
작가명 김 준, 이용백, 변웅필, 최수앙, 이동재, 이병호, 김기라, 권오상, 이형구, 문성원, 육근병, 데비 한
전시기간 2012-10-05 ~ 2012-12-16
전시장소명 소마미술관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88-2)
나는 나의 몸인가, 아니면 나의 정신인가?
몸은 인간의 존재 근거이며 사유의 뿌리이다. 서구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몸은 철학적 사유를 가로막는 부정적인 장애물로 취급되었으나 이제 다양한 담론을 거쳐 사유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인간의 본성을 정신에서 찾으려는 서구 철학의 전통은 몸의 능동적인 활동을 생물학적 기능으로 축소시키려는 경향이 있었고 몸과 정신을 분리하여 몸의 작동을 정신을 통해 해명하고자 하였다. ‘몸은 영혼이 극복해내야 할 감옥’이고 ‘불멸의 영혼을 담는 일회적 그릇’에 불과할 뿐이라며 정신의 우위론을 내세웠던 플라톤을 위시하여, 이후 전통 철학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몸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특별한 방식으로 소유되는 대상이었다. 육체와 정신을 명확히 구분하여 사고해왔던 서구 철학자들은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게 육체에 관한 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육체와 정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고 만물의 존재를 기(氣)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감각을 통해 세계를 느끼는 ‘육(肉)’, 즉 ‘살’을 서구에서는 분석하고 체계화해야 할 물질적 대상으로 보았던 반면 동양에서 ‘육(肉)’은 기(氣)가 만들어 낸 것이며 기(氣)의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마음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파악했다. 서구에서는 근대 이후에 와서야 특히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가 몸의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정신의 활동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지각의 주체를 몸으로 보는 획기적 개념을 내놓았다. 인간의 경험이 기본적으로 신체적 활동으로부터 직접 발생하며, 철학적 사유라는 정신 작용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 조건이자 모든 정신적 작용을 제약하는 근거가 바로 몸이라는 것이다.

몸은 의식 외부의 대상이 아니다. 몸을 통해서 비로소 외부의 대상이 주어진다.
- 메를로-퐁티

‘체(體)’, 즉 ‘틀’로서의 육체의 문제는 프로이드에 이르러서야 정신분석학을 통해 상당히 파괴력 있는 담론이 형성되었다. 정신분석학이 히스테리에 관한 연구에서 시작되었으며 히스테리의 어원(hustera)이 자궁을 뜻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프로이드는 히스테리에서 비롯되는 육체적 증상이 심리적 문제의 발현이고 무의식 안에서 억압된 욕망의 존재를 밝혀내는 과정에 ‘틀’로서의 육체가 자리한다고 주장하면서, 외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등이 해부학적 성차이의 인지에서 발생하며 남성의 성기인 페니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살’이 가진 감각이나 기능이 아니라 ‘틀’이 가진 형상이 육체의 사회적 의미를 만드는 주요한 요소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라캉(Jacques Lacan)은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현실의 ‘틀’이었던 페니스에 남근(phallus)이라는 상징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서 ‘틀’이 기호나 상징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제공했고 육체가 물질성을 넘어서 기호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푸코의 권력 개념, 즉 '권력이 개개인의 행위를 지배함으로써 그들을 종속시키는 방식'에 의해 몸이 특정하게 주조된다는 연계성도 간과할 수 없다. 푸코는 권력이 지문 날인, CCTV, 인체 스캐너 등을 통해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미시적으로 지배한다는 점에서 '생체권력(bio-power)'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때 몸은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적 구성물로 권력 구조에 의해 움직여지는 대상으로 파악된다. 반면, 1991년 보드리야르 (J. Baudrillard)는 현대사회에서 몸이 영혼을 대신해 구제의 대상이 되었다고 했다. 생산보다 소비가 더 중요해진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와 연결된 몸은 현대에서 자아 정체성의 축을 이루고 있으며, 몸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에 따라 제작되는 것이라는 인식의 변화를 보인다. 사회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몸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암묵적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신포도류의 비난을 감수하며 수용하는 인간의 생존전략이 되어있다.
본 전시는 이러한 몸에 관한 인문학적, 철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사유의 방식을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다양하게 시각화한 12명 작가들의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박윤정(소마미술관 책임큐레이터)-


<제 1 전시실 : 김 준, 이용백>

김 준
김 준은 가짜 살덩이 위에 문신기법을 이용해 무늬나 낙서를 새기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허물며 욕망과 환영적 쾌락을 강렬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2010년에 들어서 ‘살’ 대신 인체형태의 도자기 작업을 선보이는데 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하다. 작가의 도자기 문신 작업은 깨지기 쉬운 불안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은유이며 몸에 새겨진 상표들을 ‘자본’에 의해 각인된 것으로 본 작가의 시각을 담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한국의 소주부터 상당히 고가여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양주, 포도주, 샴페인에 이르기까지 동양의 민속적 동물 이미지를 배경으로 상표를 몸에 치장하듯 두르고 있는 것은 서구지향적 문화에 대한 은유로 보인다. 작가는 ‘원시인들이 소를 잡고 싶으면 동굴에 소를 그렸듯이 나는 사람들이 마시고 싶어 하는 것을 그렸다’고 말한다. 소비시대에 가장 중요한 사유는 욕망이다. 소비사회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과잉 욕망이 범람하는 시대에 김 준의 작업은 광고와 예술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지점에 있어서 더욱 매력적인 우리 시대의 상징적 초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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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 샹동 Moet Chandon_210×120㎝_디지털프린트 digital print_2011



이용백
2010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이용백은 조각을 할 때 버려지는 거푸집을 활용한 작품 <피에타:자기 죽음>을 선보였다. 피에타란 성모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올려놓고 슬프게 바라보는 장면을 담은 기독교의 전통적 도상이다. 이용백의 피에타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거푸집으로, 예수가 완성본으로 재탄생된다. 매끈하게 표면처리 된 무표정한 얼굴의 사이보그가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수없이 많은 작가에 의해 탄생해온 피에타의 모자관계, 종교적 오브제의 틀을 극적으로 탈피하고 거푸집과 본체를 통해 나의 죽음을 안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비감어린 자기 위로로 재해석하였다. 이용백의 피에타는 현대 사회 구조 안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육체와 정신의 분리 상황을 은유한 동시에, 정신 역시 분홍의 매끈한 사이보그의 형상으로 제시된 것은 몸이 모든 사유의 근거임을 반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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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자기죽음 Pieta:Self-Death_
340×240×200㎝_유리섬유강화 플라스틱, 철판
FRP, iron plates_2008




< 제 2 전시실 : 변웅필, 최수앙>

변웅필
변웅필은 독일 유학시절에 겪었던 불편한 언어 소통과 인종 차별적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시리즈로 내놓으며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다름’을 드러낼 머리카락이나 눈썹 등이 지워진 채 부러 일그러뜨린 표정과 의미 없는 손짓을 하고 있는 얼굴 자화상을 통해 작가는 오히려 자신의 변치 않는‘ego'를 찾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거울 혹은 카메라 렌즈에 고정되어 있던 작가의 시선은 이제 공간과 몸으로 옮겨가 수많은 드로잉 작업을 통해 몸짓으로 확대되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한 11명의 인물 설치 작업에서 역시 자화상 시리즈에서와 마찬가지로 몸짓은 주변에서 늘 포착되는 행태이나 딱히 특별날 것 없는 일상 이미지의 단편들이다.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몸'은 여전히 작가가 의도하는 변함없는 ‘ego'를 향한 갈망의 도구로 무심히 던져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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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
Someone or More Persons_
가변설치(약 h200, w700)_합판 위에 아크릴
acrylcolor on plywood_2012



최수앙
최수앙 작가는 인체를 통해 소통 부재의 문제를 다룬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감정들, 설득 불가능한 타인의 벽, 터부시된 과잉감정들, 혼란과 갈등 등 인간의 세밀한 감정들을 때로는 스펙터클하게 때로는 절묘한 설치방식으로 증폭시킨다. 최수앙의 신체는 사회적 구조와의 관계를 반영한다. 인간의 것일 수 없는 요소를 신체에 접합시켜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형, 사회에 의해 왜곡되는 욕망, 때로 비인간적 선택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극적인 표현기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깨지고 부서지고 접합된 <정착민>이 향하는 가공의 섬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신체가 기억하는 장소들을 조합해놓은 가상의 도시이다. 만신창이가 된 <정착민>이 일방통행로를 따라 가야만 하는 <플라스틱 아일랜드>는 실제 건물들의 축소 모형 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석유 시추선 모양의 나무구조물 위에 아슬 하게 얹어져 흑경의 바다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빼곡히 채워져 가는 빌딩과 구조물들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사회는 또 얼마나 많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으며 사람은 또 얼마나 그 시스템에 몸을 맞추어야 할까를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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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민 The Settler_
35×35×100㎝_혼합매체 mixed media_2012



<제 3 전시실 : 이동재, 이병호>

이동재
이동재는 2003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쌀을 이용하여 역사적 인물이나 대중스타의 픽셀 초상 작업을 하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0년경부터 쌀 대신 알파벳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미지로서의 기호 작업이 이중구조를 갖게 된다. 이미지가 재현하는 육체의 '틀'은 얼굴 표정이나 자세, 움직임, 볼륨감 그 자체로서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의 기능을 한다. 이동재의 작품 속 육체는 ‘틀’의 기호화에 더하여 알파벳 픽셀의 간격과 크기를 통해 정체를 드러내고 그 기호 조합을 통해 의미를 전달함으로서 ‘살’까지도 기호화 시키고 있다. 현대의 인간은 육체를 가진 주체에 의해 통제되거나 조종되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과의 관계망 속에서 끝없이 창조되고 진화되는 이미지를 갖는다. 이동재에게도 육체는 이처럼 의미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공간이다. 이번 신작 3점은 위키피디아(Wikipedia)나 구글(Google)에서 발췌한 원고를 텍스트로 활용하였고 <삼미신>(The Three Graces)은 고전적 도상을 통해 서구의 이상적 신체를, <두개골>(Skull)은 앤디 워홀의 원작 속 스컬을 통해 육신의 소멸(memento mori)을, <성난 황소>(The Raging Bull)는 영화의 스틸 컷을 차용함으로써 영화 속 피사체로 보여 지는 몸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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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성난 황소 Icon-Raging Bull_
130.3×194㎝_캔버스 위에 아크릴, 레진 오브제
acrylic, resin object on canvas_2011



이병호
이병호의 조각은 숨을 쉰다. 육신의 시간으로는 초스피드이지만 현실의 시간 속에서는 잠시 머물러 응시하지 않고는 알아차릴 수 없는 속도로 숨을 쉬며 늙어간다. 로댕(Auguste Rodin)의 <다나이드>(Danaid)는 대리석처럼 보이지만 실리콘으로 재탄생했고 내부 기계장치를 통해 부풀리고 쪼그라뜨리기를 천천히 반복하며 속성으로 시간을 훑어 내린다. 그 속성의 시간을 지켜보는 동안 관객은 자신의 세월을 연민으로 돌아보고 남은 세월에 대한 예우를 생각하는 찰나의 순간을 체험하게 된다. 이병호는 이에 멈추지 않고 고대 조각상으로 연출된 작품 속에 유머 코드를 심어 놓았다.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의 <히로판>(Hiropan)과 제프 쿤스(Jeff Koons)의 <부르주아 버스트, 제프와 일로나>(Bourgeois Bust, Jeff and Ilona)를 각각 패러디하여 젊은 여성의 가슴을 부풀리고 이제는 헤어진 부부의 깨져버린 사랑을 다정스런 숨길로 회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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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이드 Danaid_51×30.5×24㎝_혼합재료 mixed media_2012



<제 4 전시실 : 김기라, 권오상, 이형구, 문성원, 육근병, 데비 한>

김기라
사람의 입에서, 귀에서, 눈에서 희뿌연 무언가가 말풍선처럼 튀어 나온다. 그것은 말일 수도 있고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숨일 수도 있고 그들이 보고 들은 혼란스런 현상 혹은 영상일 수도 있다. 의미를 담은 기표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실체 없는 소통의 부재에 ‘이념의 무게’라는 다소 무거운 타이틀을 주었다. 한 배를 탄 남녀가 족쇄처럼 배를 꿰차고 서로 다른 꿈을 꾸며, 한 몸에서 자라난 수많은 얼굴들이 제각각 다른 곳을 가리키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은 실체 없이 뭉뚱그려진 덩어리에 불과하다. 대중문화의 괴물적 특성, 신성에 대한 과도한 맹목성, 신화의 비현실적 잔혹성 등 권력에 의해 각색되고 부풀려지는 현대 자본사회의 마성을 올-오버(all-over)구도로 던져놓는 김기라표 작업방식이 액자 속에 집약되어 정렬하고 있으나 그의 질풍노도는 누가 뭐래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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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무게-꿈 없이 02
A Weight of Ideology-Without a Dream 02_
82×74㎝_장지 위에 혼합재료
pencil, oil bar and pastel on Korean paper_2012



권오상
사진을 다각도로 찍어 조각조각 입체에 붙여 형태를 만드는 권오상의 작업은 사진을 차용한 입체물이라 할 수 있는 까닭에 사진 조각이라 명명된다. 가벼운 조각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사진 조각과, 잡지나 인터넷 상의 이미지를 오려 철사로 지지대를 만들어 세운 후 다시 촬영하는 방식의 간단한 조각 개념으로 시작된 <더 플랫> 연작 이후, 조각다운 조각이자 전통적인 재료로 현대적 정물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탄생한 것이 <더 스컬프쳐> 시리즈이다. <더 스컬프쳐> 시리즈는 작가가 사진조각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이후 사진인지 조각인지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에 대해 불편해 했을지 모를 대중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내고픈 작가의 의지에 기인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조각수업의 시작인 인체 모델링 작업이 현대의 소비재인 자동차나 오토바이 바디에도 적용되는 것에 착안한 작가는 2006년부터 <더 스컬프쳐> 시리즈를 통해 그야말로 ‘조각’을, 작가의 말을 빌면 ‘정물 조각’을 내놓는다. 작가는 오토바이를 인체에 비유하여 ‘토르소’라 명명함으로써 기계의 신체성을 제목에서 알 수 있게 하였고, 제목이 그렇듯 ‘육’과 ‘체’가 일체가 된 오브제로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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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소(더 스컬프쳐 13) Torso(The Sculpture 13)_
180×150×70㎝_아크릴, 레진과 점토에 알루미늄 acrylic, resin and aluminum on stoneclay_2008~2010



이형구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이형구는 미국 유학 중 서양인에 비해 왜소한 자신의 손에 유리관을 덮어 씌워 확대시킨 작업을 시작으로, 얼굴의 각 부분을 확대시킨 헬멧 연작, 나아가 인체의 해부학적 탐구를 반영한 <아니마투스> 시리즈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며 신체 탐구에 열중해왔다. 사물에 대한 해체와 재결합은 정반합 변증법적 구조의 포스트모던이 선호하는 작업 방식으로 이형구 작품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번 출품작의 중심인 <안구 추적>은 시각이라는 인간의 가장 주된 감각기관이 자극을 받아 신체적 반응을 일으키는 과정을 곤충이나 물고기 등 타 생명체의 시각기관으로 대체하고 기계적 장치의 힘을 빌어 가상 체험하도록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시점이 주제지만 그 시점으로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신체 실험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말처럼 왜곡된 신체 이미지는 내적 욕망의 분출을 통해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작가는 이를 행위를 통해 진지하게 보여줌으로서 실재와 가상 사이의 신체 변형에 대한 실험과정을 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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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링 페이셜 피처스 위드 에이치-더블유알 Altering Facial Features with H-WR_121×121㎝_
디지털 프린트 digital print_2007



문성원
문성원 작가 역시 유학생 대부분이 초창기에 겪었을 언어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차이에서 겪은 혼동을 작품에 담았다. 작가의 작품 이력을 보면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 영상이 다수 눈에 뜨이는데, 특히 2006년 광주 비엔날레 때 자신의 머리카락을 문신처럼 깎고 행사장을 돌아다녔던 퍼포먼스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화면 위에 나열된 ‘아리랑’의 음표를 내키는 대로 하나하나 이동시키고 피아니스트는 움직여진 음표를 따라 연주한다. 귀에 익었던 곡이 시크한 현대곡으로 들리다가 어눌해지는 순간을 맞게 되고 숨과 박자가 뒤엉키며 갈 곳을 잃은 채 끝이 난다. 환경의 변화에 따른 정신의 혼동을 몸의 움직임과 소리를 통해 입체적으로 은유한 이 작품은 오프닝 때 퍼포먼스로 펼쳐져 영상기록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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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 Note_200×300㎝_
합판, 자석, 철판
plywood, magnet, iron plates_
2009~2012



육근병
1989년 상 파울로 비엔날레와 1992년 카셀 도큐멘타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은 육근병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1945-1995년 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한 전쟁과 기아 그리고 생태변화 등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와 뉴스 등을 총 망라하여 작가적인 시선으로 재편집한 영상을 선보인다. 이 영상은 무덤을 형상화한 작은 둔덕 안 모니터나 철로 주조한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 안에서 보여 졌던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유리와 특수 시트지를 이용, 일방이 아닌 앞 뒤 양방향의 새로운 맥락 안에서 설치된다. 인간의 몸은 시간성을 가지고 있으며 끝을 아는 생명체이다. 하지만 몸이 사라진다고 지나온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록으로 남고 구전으로 이어진다. 그 안에 몸이 있으며 몸은 스토리의 주체가 된다. 육근병에게 있어서 몸이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역사를 증거 하는 흔적이다. 작가의 말처럼 ‘현재 그 시각 그 어떤 장소에 생존하여 존재하고 있으면 곧 역사의 현장에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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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은 역사다 Survival of History_
200×400㎝_혼합재료 mixed media_1995~2012



데비 한
재미교포 작가 데비 한은 조각과 사진 연작을 통해 획일화된 시각과 시스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비너스 상을 다양한 인종의 얼굴로 변형한 조각 시리즈 <미의 조건>은 2004년 청자로 시작하여 2010년 백자 시리즈로 확장되는 긴 여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다양한 문화권의 전형적인 얼굴 특징들(유대인의 코, 아프리카인의 입, 동양인의 눈 등)을 고전적 모티프인 비너스의 두상에 빚어내고 한국의 전통 도자기법을 사용하여 백자로 구워낸 작품으로,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 정치, 사회, 문화적 관습 속에서 미의 개념이 변모되는 행태를 은유한다. 사진 영상 <여신들>은 인체 조각의 관습적 표현방식 대신 사진이라는 장르를 통해 새롭게 제시된다. 당연하게 수용되어온 서구 미의 표상적 얼굴에 동양인의 신체를 얹어 새로운 콘텍스트(여신의 것이 아닌 자세, 몸짓, 몸매 등) 안에 둠으로서 아름다움에 대한 문화적 왜곡현상을 은유하는 동시에, 미가 아니라 인체의 궁극적 본질이 무엇인가, 나아가 나는 누구인가로 확대 재생산되는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양상을 제시한다. 즉, 작가의 말을 빌면 “이 작업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의식을 주도하는 인식에 대한 탐구”이다. 재료와 미의 반전, 그 묘한 앰비발란스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조용한 가운데 정중동(靜中動)의 깨달음을 주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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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조건 VII Terms of Beauty VII_
54×26×28㎝(9점)_백자 Korean white porcelain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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