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의 ‘비결정적’ 원자론 [2009.04.17 제756호] /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⑧ 레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땡그리 댓글 0건 조회 4,206회 작성일 09-04-18 14:36

본문

 2039473352_4121da2d_123978121178_20090416_qhHmkq8vo7pSp7F.jpg
»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⑧ 레고. 일러스트레이션/ 김중화
레고의 ‘비결정적’ 원자론

만드는 사람앞엔 무한한 잠재성의 세계가, 그리고 결국은 사라질 운명의 사바세계가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독어독문과

아비로서 내가 아들에게 제공하는 유일한 교육은 플라스틱 모델을 조립하는 일. 엄마와 독일에 머물고 있는 아이가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오면, 서울 용산 전자랜드의 취미 코너에서 플라스틱 모델을 사서 선물한다. 손의 모토릭이 발달하지 못해 혼자 할 수 없는 대목에 이르면, 큰 소리로 “아빠!”를 부른다. 설명서를 보며 모델을 조립하는 것은 그 나이에 결코 쉽지 않은 일. 2차원 도형을 3차원 입체로 해석하기 위해 그 조그만 머리가 얼마나 바쁠까? 아무튼 손과 머리를 훈련시키는 데에 플라스틱 모델만 한 교재는 없다.

컴퓨터 게임을 닮은 실시간 인터랙션 건축

그런데 정작 물어보니 플라스틱 모델보다 레고가 더 재미있단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플라스틱 모델은 한 번 조립하면 끝이지만, 레고는 조립했던 것을 다시 해체해 또 다른 형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녀석이 서너 살 아기 때부터 레고에 환장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엄마가 슈퍼마켓에서 계산대에 서면, 어느 구석에선가 큼직한 레고 박스를 들고 와 컨베이어 벨트 위에 턱 하니 올려놓아 엄마를 당혹하게 만들곤 했으니까. 비싸긴 또 얼마나 비싼가….

돈? 아이는 욕망의 실현에 따르는 이 고질적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갖고 있다. 엄마 지갑 속의 카드. 그놈을 기계에 대고 한 번만 그으면 된다. 카드로 그은 금액은 고스란히 은행에 청구되고, 은행은 집으로 청구서를 보내고, 그러면 아빠가 그 돈을 채워넣어야 한다는 복잡한 사정은 어차피 비가시의 영역. 전자화폐의 추상성이 그 돈을 벌어야 하는 아빠의 구체적 노동을 사라지게 만들어, 꼬마의 눈에는 레고를 박스째로 쏟아내는 잠재성을 가진 마법의 카드만이 보일 뿐, 오 내 팔자여….

레고가 워낙 비싸다 보니, 언젠가 엄마가 벼룩시장에서 값싼 짝퉁 블록을 사다준 모양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을 구석에 처박아놓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왜 그러나 하고 직접 조립을 해보니 역시 싼 맛 그대로 어딘지 허술하다. 겨우 조립을 했는데, 술술 빠져버린다. 레고 블록은 2μm(1μm은 1000분의 1mm)의 오차 범위 내에서 제작되어, 끼우고 빼는 데에 일정한 클러치 파워를 유지한다. 겉모습은 모방해도 이 제작의 정교함만은 흉내낼 수 없었나 보다. 블록을 끼우거나 뺄 때 손에 느껴지는 촉감도 레고의 쾌락에 속한다.

아이는 블록을 이리저리 바꾸어 끼어보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형태를 찾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 녀석의 머릿속에 대체 무슨 이미지가 들어 있을까 상상하며 보는 것도 재미있다. 레고의 조립에 열중할 때, 꼬마는 건축가가 된다. 하지만 레고의 조립은 건축과 다르다. 건축에서는 개념화(conceptualization)와 실현(realization)이 시간적·공간적으로 분리돼 있지만, 레고의 건축가는 그런 분리를 모른다. 관념은 현장에서 곧바로 실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레고는 컴퓨터 게임을 닮은 실시간 인터랙션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이 조그만 미니어처의 세계가 현실 공간에 커다란 사이즈로 존재한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나 보다. 기어이 엄마를 졸라 ‘레고 랜드’에 다녀와 어른 크기만 한 레고 인형 옆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물론 꼬마를 현실의 세계에서 레고 블록으로 지어진 세계 속으로 옮겨놓는 이 공간 이동의 마법도 실은 아빠가 지불할 카드가 부린 것이다. 레고에 빠진 아이에게는 세계 전체가 레고 블록처럼 보일까? 뭔가를 만들려고 작정을 했다면, 머릿속에서 그것을 레고 모듈로 번역해야 할 게다.

에코가 말한 ‘열린 예술작품’

 2039473352_2a800177_123978121217_20090416_cqTGwad5QlB7t.jpg
» 레고 ‘건축가’의 관념은 현장에서 바로 실현된다. 레고 로봇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레고로 로봇을 만들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우리 꼬마가 지적했듯이, 레고의 매력은 역시 원자론적 원리에 있다.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은 매우 매력적인 학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양한 사물이 결국은 원자들의 상이한 배열의 결과라는 얘기. 이는 철학의 근본 문제에 대한 경제적이면서도 매우 미학적인 솔루션이다. 고대에 이런 발상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놀랍게 여겨진다. 원자와 원자, 분자와 분자가 결합해 다양한 물질과 사물이 만들어지듯이, 블록과 블록이 결합해 눈앞에서 다양한 세계가 펼쳐진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레고 블록은 일종의 소프트웨어다. 그것은 레고의 디자이너들이 짜낸 프로그래밍이다. 해적선, 로마군단, 체스판, 소방대 등 출시되는 레고 시리즈의 주제는 다양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것으로 포장에 그려진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다. 디자이너들이 프로그래밍한 그 소프트웨어 내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낼 줄 안다.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나아가 해적선과 로마군단을 합치는 식으로 소프트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시켜 저만의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거기에 레고가 아닌 다른 장난감들을 결합시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고는 에코가 말한 ‘열린 예술작품’이다. 플라스틱 모델의 조립은 결국 디자이너가 고안한 형태를 그대로 재연하는 데에 그 본질이 있다. 조립에 들어갈 때부터 실현해야 할 최종적 형태가 결정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레고 블록 앞에 앉은 아이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무한한 잠재성의 세계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레고 블록이 만들어낼 세계는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다. 아니, 머릿속에서 이제 막 자라나고 있다. 그것은 수많은 결단과 망설임을 동반하며 아이의 손끝에서 형성돼갈 것이다.

언젠가 티베트의 수도승들이 좁쌀만 한 색 모래로 만다라를 그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마치 컴퓨터 그래픽을 만드는 장인이 픽셀을 하나하나 조작해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듯이, 이 티베트의 승려들은 허리를 굽히고 앉은 불편한 자세로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모래알 하나하나를 옮겨 이미지를 완성해갔다. 이 역시 원자론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다. 500만 픽셀 이상을 넘어가면 디지털의 불연속을 지각할 수 없듯이,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모래로 그린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선명했다.

좁쌀로 그린 만다라, 그리고…

하지만 정작 나를 소름 끼치게 하는 사건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그렇게 공들여 그린 그림을 한순간에 손으로 휘저어 지워버리는 것이 아닌가. 두어 번 손으로 휘저으니 그 화려한 이미지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바닥에는 어지럽게 섞여 짙은 회색빛으로 변한 모래들만이 남는다. 그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는 이 단호함 앞에서 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숭고함을 느꼈다. 그들도 거기에 올 때까지 수많은 사연이 있었을 터, 세속의 질긴 인연도 그들은 그렇게 단호하게 끊어버렸을까.

우리 꼬마에게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어느 날 아이가 너무나 정교한 도시의 모형을 만들었다. 너무나 잘 만들어서 사진으로라도 박아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주려던 찰나, 아이가 그 모형을 사정없이 해체해버리는 게 아닌가. “으아악, 안 돼~!” 불가의 가르침에 따르면 어차피 사바세계는 덧없는 가상의 세계. 레고 블록으로 지은 사바세계도 꼬마에게는 그렇게 덧없는 것일까. 이 작은 레고의 수도승을 바라보며, 나는 성불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은지….


20세기 모더니즘의 유물

지난 50년간 공대생들이 배우고, 취직해서 해오던 일… 21세기 장난감은 ‘쓰레기더미와 자연’

■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유럽 사람들이 가끔 하는 농담 중에 “아빠가 된다는 것은 레고 블록이 여섯 살짜리 어린이의 소화기관을 관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공감이 갈 만한 농담이다. 철없는 애들이 혹여 블록을 삼킬까봐 걱정했던 경험을 아빠라면 한 번쯤 가지고 있을 테니까(엄마는 항상 걱정 중!).

생명체의 네 가지 블록처럼

1958년 1월28일, 덴마크의 목수 고트프리트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 블록을 서로 맞물리는 조립형 완구에 대한 특허원을 제출하고 나무 블록을 처음 만든 이래, 레고는 지난 50년간 어린이들에게 ‘가장 유익한 장난감’으로 사랑받아왔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 게임기가 아이들의 쾌락 중추를 사로잡고 있는 오늘날에도 ‘단순한 블록들의 조합으로 무한대의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다’는 레고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창의성의 아이콘’이 된 레고는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가장 사주고 싶은 장난감 1순위’의 권좌에 오른 지 오래다. (전세계 레고 동호회나 클럽에서 보듯, 레고의 열렬한 팬들 중엔 어른이 많다. 산악인 허영호씨는 1987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기념해 눈 속에 레고 블록을 남겨두고 오기도 했다.)

레고(Lego)는 덴마크어로 ‘레그 고트’(leg godt), 그러니까 ‘잘 논다’(play well)라는 뜻.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완구업체인 레고그룹은 매년 190억 개의 블록을 만들어(이 정도면 지표면을 5번이나 가득 덮을 수 있는 양이다!) 1초에 7박스씩 팔고 있으며, 전세계 4억 명의 어린이들(과 많은 어른들)이 레고 블록을 쌓고 부수는 데 매년 50억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생명체가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네 가지 DNA 블록이 발현된 아미노산들로 이루어져 있듯이, ‘어린이들의 천국’ 레고 왕국은 빨간색(R), 파란색(B), 노란색(Y), 초록색(G) 등 네 가지 색 플라스틱 블록들로 이루어져 있다. 레고 블록으로 나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동안, 어린이들은 저마다 ‘창조자의 절대권력’을 경험하게 된다. 내 맘대로 창조하고 내 맘대로 부수니, 레고는 인간이 만든 모더니즘 세상의 인공원자들인 셈이다. (레고의 역사에 관한 문헌에 따르면, 중세 유럽의 건축가들은 교회나 성당을 짓기 전에 나무·돌 블록으로 건축 모형을 만들어 건축주에게 보여주며 토의했다고 한다. 그것이 ‘레고의 기원’이라나!)

레고 블록으로 근사한 건축물을 쌓는 동안, 아이들은 “여럿이 모이면 달라진다”(More is different)는 복잡계 과학의 핵심 메시지를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 레고의 단순한 블록이나 막대, 톱니바퀴 어디에도 최종 구조물의 형상에 대한 힌트는 없다. 그저 블록이 쌓이고 모여야 새로운 건축물이 ‘창발’되는 것이다. (복잡계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레고그룹의 본사가 환원주의와 양자역학의 진원지인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다는 사실은 과학자에게 아이로니컬하게 보인다!)

단순한 레고 블록들이 복잡한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맞물리는 구멍의 위치다. 일렬로 단순하게 연결만 할 수 있는 구조였다면, 레고는 2차원·3차원 구조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맞물리는 구멍의 개수와 위치가 다양해지면서, 구조물에 갈래치기(bifurcation)가 생기고 그것이 ‘어린이들의 레고 왕국’을 점점 더 화려하고 근사한 세상으로, 혹은 ‘자연의 왕국’을 닮아가게 진화시킨 것이다.

미국 어린이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

 2039473352_f1411e1e_1239781324_123978121244_20090416_b7rxZrZlX58W.jpg
» 21세기형 창조적 사고를 북돋우기 위해 레고도 PC와 연결해 작동하는 레고 마인드스톰을 출시했다. 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레고 블록이라는 인공원소들로 ‘창조자의 마음’을 시뮬레이션하는 어린이들은 그 과정에서 과연 무엇을 배우게 될까? 네트워크에 관한 통찰력을 몸으로 체득하게 됐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그들은 레고 쌓기 놀이를 통해 점점 ‘20세기 산업화 사회에 필요한 엔지니어링 마인드’를 얻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거실 바닥에 매뉴얼에 따라 틀을 쌓고 안을 채우는 ‘레고 블록 쌓기’는 지난 50년간 공대생들이 학부 때 배우고, 회사에 취직해 늘상 해오던 일이었다. 다시 말해, 레고는 ‘20세기’ 어린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쓴 <컬처코드>(리더스북스 펴냄, 2007)에 따르면, 레고는 독일로 수출하는 자신들의 완구 제품에 ‘상세한 조립법’을 담은 설명서(매뉴얼)를 넣어 팔았는데, 판매는 대성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선 매뉴얼이 담긴 레고 시리즈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유달리 질서를 강조하는 문화적 전통에서 자란 독일의 어린이들은 설명서에서 지시하는 대로 조립만 하면 자동차가 되고 우주선이 되는 레고에 열광했지만, ‘자유와 개척정신’이 더 중요했던 미국 어린이들에겐 조립 설명서가 풀어야 할 숙제처럼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형 창조적 사고를 북돋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장난감은 어떤 것일까? 레고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전략일까? 새로운 세기에 발맞춰, 레고는 PC와 연결해 작동하는 ‘레고 마인드스톰’(Mindstorm)을 출시했다. ‘로봇 개발 키트’의 일종인 ‘레고 마인드스톰’은 프로그램이 가능한 컨트롤러들이 블록 안에 들어 있어, 아이들이 조립한 블록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트랜스포머의 장난감 버전’이라고나 할까.

컴퓨터로 조종되는 ‘레고 마인드스톰’은 아마도 과학 교육 현장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학교들은 ‘레고 마인드스톰’을 과학 교재로 수업 시간에 활용하려고 시범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시연에 참가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쓰기엔 너무 재미있다’는 평을 내놓을 정도로 마인드스톰은 인기가 높다. 저명한 신경과학자인 수전 그린필드의 말처럼, 미래의 교실은 놀이터를 방불케 할지도 모르겠다.

조각하는 톱다운식 장난감 ‘OGEL’은 어떤가

그러나 나 같은 21세기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은 장난감은 레고가 아니라 ‘오겔’(OGEL)이다. ‘OGEL’은 ‘LEGO’를 거꾸로 쓴 조어로(상표로 쓰고 싶은 분은 연락주세요!) 조립해 쌓는 레고와 반대로 ‘깎고 조각하는’ 톱다운(Top-down)식 장난감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 두 가지 장난감을 나란히 가지고 놀게 해주고 싶다. 작은 블록에서 세상을 쌓아가는 분석적 사고와 함께, 큰 밑그림에서 세부적으로 내려가는 시스템적 사고도 다음 세대에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인드스톰은 20세기 레고의 대안으로 여전히 부족하다.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장난감은 ‘쓰레기더미와 자연’이다. 잘 갖춰진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보다, 장난감이 하나도 없어 장난감을 ‘만들어서’ 노는 학생들이 실제론 창의적이라는 연구결과는 장난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실제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은 레고를 조립하며 노는 어린이가 아니라, 레고 회사에서 장난감을 만드는 기술자들이다!). 라면박스로 자동차를 만들고 나뭇가지를 꺾어 집을 짓고 놀던 옛날 어린이들이 ‘레고 시리즈’ 풀세트를 가지고 노는 어린이들보다 더 21세기적이다

추천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