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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아트넷,artnet &amp;gt; 아티스트 &amp;gt; 아티스트</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link>
<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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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박철준</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109</link>
<description><![CDATA[박철준(PARK Cheol-jun)은 동심(童心)과 환상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감정과 기억을 따뜻한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아티스트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회화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탄탄한 회화적 기반 위에서 순수한 감정과 위로의 서사를 구축하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br/><br/>작가의 작품은 밤하늘, 별, 달, 구름, 비, 숲과 같은 자연적 상징과 아이 같은 존재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적 장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화면 속 인물들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구름 위에서 평온한 휴식을 취하거나, 비 내리는 밤 서로를 의지하며,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감정의 안식처를 발견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단순한 동화적 상상이 아닌,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잊혀져가는 감정의 순수성과 내면의 평온을 회복하려는 심리적 풍경으로 읽힌다.<br/><br/>특히 박철준의 회화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색채, 부드러운 곡선의 조형 언어, 감각적인 화면 구성 속에서 ‘해피엔딩(Happy Ending)’의 정서를 담아낸다. 작품 속 빛나는 존재들은 불안과 피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 내면의 순수성을 상징하며, 관람자에게 잠시 머물러 쉬어갈 수 있는 감정적 공간과 정서적 위안을 제안한다.<br/><br/>웹툰적 상상력과 회화적 조형성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박철준의 작업은 친숙하면서도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형성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언어를 동화적 이미지로 풀어내는 그의 작품은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동시대 회화 안에서 따뜻한 감수성과 서정적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br/><br/>박철준은 개인전 《Fantasy Island》, 《잠시, 휴식》을 비롯하여 다양한 단체전과 아트페어를 통해 작업 세계를 확장해오고 있으며, 현재도 ‘순수함의 회복’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잇는 회화를 이어가고 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Fri, 29 May 2026 00:23:3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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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호반화수</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108</link>
<description><![CDATA[호반화수(Hwasu)는 서사적 상상력과 강렬한 흑백 조형 언어를 기반으로 인간 내면의 감정과 기억, 관계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탐구하는 아티스트이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만화적 서사 구조와 화면 연출 경험을 바탕으로, 익숙한 풍경 속에 숨겨진 심리적 긴장과 감정의 층위를 독창적인 이미지 언어로 구축해오고 있다.<br/><br/>작가의 작업은 흑과 백의 극적인 대비, 세밀한 선묘, 반복적 패턴, 상징적 오브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놀이터, 개미 군집, 폐허가 된 구조물, 자연 풍경, 거대한 동물의 형상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간 존재와 기억, 사회적 관계를 은유하는 시각적 장치로 작동한다. 현실과 환상, 유년의 기억과 현재의 불안이 교차하는 화면은 관람자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자연스럽게 투영하도록 유도한다.<br/><br/>특히 호반화수의 작품은 ‘읽는 그림(Readable Image)’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웹툰과 만화에서 출발한 서사적 감각은 평면 회화와 그래픽 아트의 영역으로 확장되며,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장면과 감정, 시간의 흐름을 동시에 경험하게 만든다. 절제된 색감과 강렬한 콘트라스트, 밀도 높은 디테일은 작품에 독창적인 긴장감을 부여하며, 동시대 시각예술 안에서 차별화된 조형 언어를 형성한다.<br/><br/>작가는 개인전 《안개 너머의 안갯속》을 비롯해 서울 핑크아트페어, 서울아트쇼, 월드아트페어 등 다양한 전시를 통해 작업 세계를 확장하고 있으며, 독립출판 《잇다_있다》를 통해 시각 서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호반화수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가 잊고 지나온 감정과 기억의 흔적을 섬세한 시선으로 복원해 나가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description>
<dc:creator>호반화수</dc:creator>
<dc:date>Fri, 29 May 2026 00:12:2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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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민충기</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107</link>
<description><![CDATA[민충기 | Min Chung-gi<br/><br/>민충기(Min Chung-gi)는 시간의 흔적과 인간 내면의 심리적 층위를 동시대적 추상 언어로 재해석하는 아티스트다. 인덕대학교 만화과를 졸업한 그는 웹툰 작가로 활동하며 축적한 서사적 감각과 장면 연출 능력을 기반으로, 디지털 서사의 구조를 회화적 감성으로 확장해오고 있다.<br/><br/>작가의 대표 연작 《시간의 궤적(Trace of Time)》은 ‘흘러가는 시간 속 감정의 흔적’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깊이감 있는 흑(墨)의 레이어와 정교하게 배치된 금(金)의 포인트는 기억과 감정의 응축된 순간을 상징하며, 화면 위에 남겨진 시간의 물성을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유동적인 수채의 번짐 위에 두터운 아크릴 질감이 더해진 Mixed Media 방식은 회화적 긴장감과 조형적 완성도를 동시에 형성한다.<br/><br/>특히 민충기의 작업은 단순한 추상이 아닌, 감정과 기억이 축적되는 ‘심리적 풍경’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검은 흐름은 무의식의 시간과 침묵을 상징하고, 그 위에 놓인 금빛의 점들은 삶 속 결정적 순간과 기억의 파편을 암시한다.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각자의 경험과 감정을 작품 안에 투영하도록 유도하며 깊은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br/><br/>웹툰이라는 서사 매체에서 출발한 작가는 회화로 영역을 확장하며, 장면을 구성하는 감각과 내러티브적 밀도를 캔버스 위에 독창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디지털 화면을 벗어난 물리적 캔버스 위에서, 민충기는 ‘시간’이라는 비가시적 개념을 물질화하며 동시대 추상 회화의 새로운 감각을 제안한다.<br/><br/>현재 민충기는 흑과 금의 조형 언어를 중심으로 시간, 기억, 존재의 흔적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회화와 서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창적 작업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hu, 28 May 2026 23:57:4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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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헤돈139</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106</link>
<description><![CDATA[작가 노트 | Artist note<br/><br/>나는 학창시절, 남자아이들이 파란 크레파스를 들 때 혼자 핑크색을 들던 아이였다.<br/>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핑크가 더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br/>그 단순한 선택은 나를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밀어냈다.<br/>남자아이들은 나를 놀렸고, 나는 여자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br/>그 속에서 나는 또래보다 조금 빠르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접하게 됐다.<br/><br/>하지만 학교가 끝난 뒤의 시간은 늘 혼자였다.<br/>집으로 돌아와 TV 앞에 앉아 챔프와 투니버스를 틀고,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며 시간을 보냈다.<br/>특히 가면라이더를 보며 히어로에 대한 동경을 키워갔다.<br/><br/>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br/>아버지의 부재는 나를 또 다른 방식으로 고립시켰고, 비슷한 형태의 따돌림을 겪게 했다.<br/>그 와중에 그림이라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았지만, 가정 형편상 미술학원에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은 또 다른 좌절이었다.<br/><br/>그 감정 속에서 나는 점점 서브컬처에 깊이 빠져들었다.<br/>가면라이더, 애니메이션, 그리고 홍대에서 랩을 하던 사람들.<br/>단순히 멋있어 보였고, 한때는 래퍼를 꿈꾸기도 했다.<br/><br/>결국 미술학원에 들어갔지만, 그 시간조차 오래 가지 못했다.<br/>고등학교 시절 과도한 손목 사용으로 종양이 생겼고, 수술 이후 손 떨림이 남았다.<br/>그로 인해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나는 ‘그림을 포기했다’는 감각과 함께 방향을 잃었다.<br/>그 시기 나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려 했다.<br/><br/>그러던 중 우연히 본 외국 힙합 뮤직비디오 속, 래퍼 뒤에 있던 그래피티가 눈에 들어왔다.<br/>집에는 공장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남겨둔 락카가 있었다.<br/>별다른 생각 없이 그것을 집어 들고 방에 그림을 그렸다.<br/>그 순간이 시작이었다.<br/><br/>고등학교 시절, 나는 또 하나의 선택 앞에 서 있었다.<br/>학교를 계속 다닐 것인가, 아니면 그래피티를 배우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갈 것인가.<br/>그때의 나는 학교가 싫었던 것이 아니다.<br/>단지,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 더 분명하게 보였을 뿐이다.<br/><br/>결국 나는 자퇴를 선택했다.<br/>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열차에 올랐다.<br/>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무모했을지도 모른다.<br/>하지만 그때의 나는 확신에 가까운 감각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br/><br/>그 이후 나는 그래피티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고,<br/>인터넷으로 알게 된 작가를 무작정 찾아가 배우기 시작했다.<br/>점점 ‘잘 그리는 것’보다 ‘그리는 행위 자체’에 빠져들었고,<br/>여기저기에 그림을 남기며 살아갔다.<br/><br/>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br/>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이른바 ‘지뢰계’, ‘멘헤라’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br/>그들과 어울리고,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br/><br/>우리는 공통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br/>하지만 그 관계들은 건강하지 않았다.<br/>우울증, 조울증 같은 문제들이 가까이 있을수록 나 역시 점점 피폐해져 갔다.<br/>그 경험은 내 연애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br/>사랑은 아름답게만 존재하지 않았다.<br/><br/>배신적이고, 폭력적이며, 때로는 자기 파괴적이었다.<br/>성인이 된 이후, 나는 술자리에서 자주 연애 상담을 해주곤 했다.<br/>그때마다 반복해서 하던 말이 있다.<br/>“사랑은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br/><br/>이 생각은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처럼 느껴졌다.<br/>특히 SNS, 그중에서도 릴스를 통해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더 자주 보게 되면서 확신은 더 강해졌다.<br/><br/>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br/>이걸 말로만 소비할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풀어내야겠다고.<br/>그렇게 지금의 작업이 시작되었다.<br/><br/>그전까지 나의 그림은 설명이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br/>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내 이름을 쓰는 것 자체가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br/>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br/>“나는 정말 작가인가?”<br/><br/>그 질문 이후, 나는 그림에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br/>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섞었다.<br/>서브컬처와 그래피티.<br/>애니메이션적인 캐릭터성과 거리의 질감.<br/><br/>작업 방식 또한 변화했다.<br/>그래피티를 배우던 시절에 벽의 금들을 보수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벽을 직접 만들기 위해 퍼티를 사용했고, 점차 재료를 발전시키며 지금은 젤스톤과 모델링 페이스트를 활용해 크랙이 살아있는 바탕을 만든다.<br/><br/>나는 일본 문화, 힙합, 걸밴드의 분위기, 애니메이션, 그리고 특정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한다.<br/>그래서 나는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린다.<br/><br/>내 이름 ‘헤돈 (Hedon)’은 쾌락주의(Hedonism)에서 따왔다.<br/>쾌락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이라는 개념이 인상 깊었다.<br/><br/>그래서 나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br/>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br/><br/>내 작업에는 아기 천사 ‘헨젤’과 아기 악마 ‘헤빌’이 등장한다.<br/>이 둘은 선과 악을 나누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br/>모든 것은 이면성을 가진다.<br/>사랑도 그렇고, 인간도 그렇다.<br/>천사와 악마는 하나의 존재 안에 공존하는 두 가지 상태다.<br/>그리고 그 사이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개입한다.<br/>경험, 관계, 환경. 작품 속 스티커와 낙서들은 그런 요소들을 의미한다.<br/><br/>나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br/>그냥내가 겪은 것들,<br/>내가 좋아하는 것들,<br/>내가 느낀 것들을 그린다.<br/>그게 전부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Wed, 13 May 2026 21:40:0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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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훈어</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105</link>
<description><![CDATA[안녕하세요, 작가 Hn.U(훈어)입니다.<br/>저는 여러분의 삶의 궤도를 함께하며, 제 예술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전하고자 하는 아티스트입니다.<br/>우키요에의 섬세한 선과 몽환적인 요소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 보는 이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듯한 신비로운 작품을 창작합니다.<br/>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의견에 쉽게 휩쓸리며 자신의 목소리를 잃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주인’임을 상기시키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br/>제 작품은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과 순간을 담아내며, 삶의 도전 속에서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br/>제 예술을 통해 잠시 멈춰 서서 깊이 생각하고, 그림 속 세부 요소들이 전하는 독특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br/>제 작품이 따뜻한 위로가 되고,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창이 되길 바랍니다.<br/><br/>[창작 철학]<br/>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정답을 찾으려 애쓰며, 타인과의 비교가 너무나도 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상대적이 되었고, 자신을 증명하고 타인의 평가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정의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질문, 즉 &#034;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034;라는 물음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br/><br/><br/><br/>삶은 탄생이라는 시작과 죽음이라는 결말 사이의 짧은 여정입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수많은 도전과 감정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결말의 시기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정말로 중요시해야 할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고, 결국 그 답은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제시합니다. 삶의 가치는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고 정의해야 합니다.<br/><br/><br/><br/>제 작품은 단순히 감상하는 시각적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용기와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관람자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삶의 궤도에서 제가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잠시라도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만든 작품이 여러분의 삶속에 스며들어 함께 공전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동반자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br/><br/><br/><br/>&#034;Hn.U in your ORBIT&#034; – 이 말은 저의 작품과 여러분의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br/>잠시라도 저의 작품이 여러분의 삶에 따뜻한 위로와 영감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제가 이 여정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br/><br/>[표현 방식]<br/>어린 시절, 저는 그림 동화책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한스 드 베르의 삽화는 제게 화가의 꿈을 품게 한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그분의 그림을 따라 그리며 예술적 감각을 키워 나갔고, 그 과정에서 저만의 예술 세계의 기초를 다져갔습니다.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은 제 작품의 핵심 요소가 되었으며, 관람자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제 작품 속에 투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습니다.<br/><br/><br/>저는 빈센트 반 고흐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서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열정적인 붓터치와 초현실적인 세계관은 예술 표현의 깊이를 새롭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우키요에의 유려한 선과 몽환적인 분위기, 그리고 한국화의 정교하면서도 고요한 디테일은 저만의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영향을 미쳤습니다.<br/><br/><br/>지금도 저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실험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예술은 단순한 영역이 아니라, 제가 느끼고 경험한모든 순간들의 총합입니다. <br/>제 작품이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마음 깊은 곳까지 울림을 전하고 감상자와 깊이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hu, 12 Feb 2026 10:50:5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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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라병연</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104</link>
<description><![CDATA[전통 목조각 기능, 기술을 이수하였고 이러한 기능, 기술을 기반으로 디자인, 예술 영역으로 생각을 확장하여 작업하고 있습니다.<br/>나는 목재를 통해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목조각가입니다. 나의 작품은 단순히 목재의 형태를 넘어,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목재는 그 자체로서 고유한 질감과 색을 지니고 있으며,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 나는 각 작품에 나무의 역사와 감정을 스며들게 합니다.<br/>내 작업은 종종 자연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나무의 결이나 곡선은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며,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형성합니다. 나는 이러한 자연의 형상을 재구성하고, 관객이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고자 합니다.<br/>또한, 목조각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전통 예술입니다. 나는 이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여 새로운 표현 방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각 작품은 나만의 언어로 만들어진 조형물이며, 관객이 이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길 바랍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26 Jan 2026 15:48:5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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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최가</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103</link>
<description><![CDATA[라이더 카페를 운영하며, 그림 액자 및 원본 파일 판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Fri, 16 Jan 2026 10:48:1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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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칼파 김영수</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102</link>
<description><![CDATA[생명의 근원이 숲(철학적 해석)<br/>숲의 정의-<br/>생물과 동,식물 모두 자연이란 이름으로 생존의 법칙을 유지하며 공생의 틀을 이루어 놓은 베이스 (근원)이다.<br/>그냥 눈에 보이는 숲의 모습만이 아닌 생존의 열정과 성장의 인내,진보를 위한 진화, 그리고 탄생-소멸의 끝없는 순환.<br/>이런 법칙 안에서도 숲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br/>숲이 수많은 언어로 표현되듯이 수많은 회화적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<br/>그렇게 하려면 오랫 동안 숨겨온 숲이 말하지 못하는 부분, 꺼내지 못한 무질서도 작가는 깨달음으로 시도하고 <br/>또 시도하는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다.<br/>그 시도의 덕으로 새롭게 나타나는 색감에 작가는 미치도록 흥분한다.<br/>이렇게 숨겨진 색감을 발견하는 노력은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발견되지만,<br/>무 질서가 질서인 것처럼 무작위가 작위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뜻 밖에 일이 일어날 소망을 가지고 캔버스 앞에 앉는다.<br/>숲은 영원이라는 무한궤도 속으로 생명을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그 속에서 생명력은 억겁의 진화에 관여한 존재의 실험장으로 번성해<br/>왔지만, 또 숲이 전하는 진실은 비공식 언어로 억겁을 지켜내었던 사실적 흔적이 있었기에 이 흔적을 쫒아가는 작가는 과거의 명상 과 현재의<br/>명상을 풀어내려는 부담을 안고 있다.<br/>그 고충은 도전하는 길이고, 내일도 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br/><br/><br/>憶劫을 蓮結하는 線(억겁을 연결하는 선)<br/>:무한하게 오랜 시간의 연결 선 (kalpa of Connection line)<br/>문득 산을 쳐다보다가<br/>&lt;산은 언제부터 생겼을까?&gt;<br/>라는 질문에 태초 하늘이 열리고 땅이 형성되면서 찬란한 태양과 높<br/>은 산은 태고의 햇살을 아직도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br/>경이롭고 신비한 지구의 형상과<br/>빛으로 전해지는 연결선은 억겁의 연결 선이 존재 한다는 것도 알게<br/>한다.<br/>그래서 억겁의 연결선이 궁금하다.<br/>작가는 시공의 초월과 형상의 道, 그리고 안개와 같은 무형의 존재<br/>를 전하는 억겁의 연결 선을 찾으러 길을 떠난다.<br/>억겁의 연결선은 분명 무형일 것이다.<br/>존재와 비존재의 구분 속에 道와 같은 철학의 의미를 지닌 억겁의<br/>연결선을 존재와 비존재의 구분없이 형상으로 추상하여 전하려 한<br/>다.<br/>추상으로 형태를 살리고 추상으로 존재를 살려 억겁으로 전해지는<br/>무언의 대사같은... 그러나 존재하는 道와 理로 세상에 나타내려<br/>한다.우주를 감싸는 천력(天歷)으로 지금까지 세상이 연결된 것처럼<br/>억겁의 연결 선은 반드시 존재한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12 Jan 2026 13:51:4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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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은유</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99</link>
<description><![CDATA[감정은 향기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향기는 특정한 기억과 기분을 상기시키며, 마치 시간 속에 갇힌 감정들을 해방시키는 열쇠 역할을 한다.<br/>고양이는 자유롭고 신비로운 존재로, 나의 감정을 섬세하게 반영하는 매개체이다. 그들의 유연한 몸짓과 깊은 눈빛은 잊혀진 감정의 파편들을 깨우고, 고양이를 바라보는 순간마다 새로운 감정이 불쑥 솟아오른다. 이 신비로운 동물은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감정을 드러내는 거울과도 같다.<br/>이렇게 고양이와의 교감은 단순한 애완동물과의 관계를 넘어, 자신을 이해하고 감정을 탐구하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고양이와의 순간들은 나에게 감정의 향기를 다시 불러일으키며, 내 삶의 깊이를 더해주는 소중한 열쇠가 된다.<br/><br/><br/>I believe that emotions are like scents. Each fragrance evokes specific memories and feelings, serving as a key that releases emotions trapped in time.<br/>Cats are free and mysterious beings, delicately reflecting my emotions. Their graceful movements and deep gazes awaken fragments of forgotten feelings, and every moment spent looking at a cat brings forth new emotions. These enchanting animals act as mirrors, revealing the hidden emotions deep within us.<br/>Thus, the bond with a cat transcends a simple pet-owner relationship; it becomes a precious opportunity to understand myself and explore my emotions. Moments with my cat rekindle the fragrance of my feelings, providing a valuable key that enriches the depth of my life.]]></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20 Oct 2025 11:34:1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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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김 소 현</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96</link>
<description><![CDATA[[작가 노트] 내면의 순수를 깨우는 날갯짓: 작가 김소현<br/><br/>1. 일상에서 깨어나는 &#039;내면의 소녀&#039;<br/>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쳐 온 시간들, 그 무감각한 삶 속에서 김소현 작가는 내면 깊숙한 곳을 응시한다. 그의 작품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잠들어 있던, 동화 속 어린아이와 같은 청순함을 지닌 소녀를 일상으로 불러내는 과정이다.<br/><br/>이는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무미건조한 현실에서 내면의 자신을 돌보고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마치 번데기가 긴 인내 끝에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듯 삶의 특별함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br/><br/>2. 무의식의 두려움을 넘어선 희망의 메시지<br/>김소현 작가는 잠재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가냘픈 어린 소녀로 회귀하여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br/><br/>나이의 굴레 탈피: &#039;늦은 나이&#039;라는 사회적/심리적 제약을 떨쳐버릴 것.<br/><br/>두려움 극복: 갇혀 있던 무의식의 굴레와 두려움을 깨고 일어날 것.<br/><br/>행복과 꿈: 오늘과 내일의 행복을 위해 사랑하고, 희망을 품고, 다시 꿈을 꿀 것.<br/><br/>작가의 작품은 깊은 내면의 언어와 행동을 시각화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034;새로운 사랑과 희망을 담아, 다시 꿈을 꾸며 새롭게 살아가자&#034;**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21 Jul 2025 14:31: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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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배진희</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94</link>
<description><![CDATA[빛을 표현하는 예술가 배진희 입니다.<br/>해체되는 공간 사이의 새로운 차원에서 생긴 작업의 개념을 중심으로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느낌과 감각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시각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br/><br/>회화를 바탕으로 &#039;빛과 유리&#039;를 매체로 삼아 회화 속의 세계관을 실제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통해 관람자와 보다 더 가까이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작품을 연출합니다.<br/><br/>저의 작품이 평면적인 회화작업에서 출발하여 스테인드글라스라는 빛의 예술로 확장 된 만큼 앞으로도 작품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나가고자 합니다. <br/><br/>회화작품, 설치미술을 넘어 건축공간과 생활 공간 내에서 저의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행복함과 치유됨을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ue, 04 Mar 2025 12:06:2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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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경수</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93</link>
<description><![CDATA[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따뜻하고 꿈같은 경 험을 접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희망마저 잃을 수는 없다. <br/>그래서 나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그렇게 서로 소통하며 현 실에서 잠시 벗어나 따뜻하고 꿈같은 세계로 빠져들고 싶다.<br/><br/>이 작품은 개인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따뜻함과 꿈을 불러일으키는 공유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br/>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편안하고 초현실적인 환경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희망을 불어넣는 것이 목표입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24 Feb 2025 14:25:4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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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구본창</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92</link>
<description><![CDATA[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 디플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계원예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를 하였고 현재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br/><br/>2001년 삼성 로댕갤러리, 2002년 미국 피바디 에섹스 뮤지엄, 2004년 파리 갤러리 카메라 옵스큐라, 2006년 국제 갤러리, 교토 카히츠칸 미술관, 2007년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2010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 국내 외에서 3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br/><br/>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휴스턴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 교토 카히츠칸 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삼성 리움 등 국내외 다수의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으며, 작품집으로는 한길아트 ‘숨’, ‘탈’, ‘백자’, 일본 Rutles ‘白磁’, ‘Everyday Treasures’, &#039;공명의 시간&#039; 등이 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ue, 19 Nov 2024 11:43:1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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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서소영</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90</link>
<description><![CDATA[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해 현재는 그래픽아트와 회화영역까지 범위를 확장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 서소영은 관계와 자아성찰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감각들에 대해 탐구하고, 이를 콜라지한 애니메이션 형식의 그림으로 표현한다. 에반게리온, 아키라 등 일본 고전 애니메이션과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초현실주의 회화 작가에게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한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Wed, 27 Mar 2024 10:20: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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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서연</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89</link>
<description><![CDATA[작가는 이미지가 갖는 맥락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 자체를 작품의 본질로 본다. 인터넷에서 밈이나 이미지가 유통되어 변질되고 풍화하는 것처럼 모든 것의 고유한 맥락도 전달되는 경로에서 이탈하여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은 유통의 유해성이 아니라 부수적 효과로, 전달자가 가공하기 나름이라는 것이 작가의 주안점이다. 작가는 작업에서 주로 실제 사진에 기반을 둔 이미지를 사용하지만, 이를 콜라주의 요소처럼 활용하여 무결한 재현보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언캐니한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기존에서 동떨어지는 새로운 텍스트를 생성한다.<br/><br/>작가노트<br/>그림자라는 개념이 보유하는 일반적인 인식에 주목해 제작했다. 그림자는 보통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동양의 음과 양이 서로가 있음으로써 조화되어 균형을 이루는 것이듯이, 그림자가 존재하기에 연기와 같이 불확실한 유동성을 띠는 대상도 확고히 지각할 수 있게 된다. 이 작업을 총칭하는 시리즈의 제목인 &lt;흩어지는 연기조차도 그림자가 있다&gt;는 이러한 의미로, 희미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불안 속에서 스스로의 무게마저 유실되는 존재 대신 명확함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의 그림자를 묘사한 작업이다. 실제 그림자의 무채색이고, 날카롭기보다는 그림자의 경계면처럼 흐린 묘사와 톤이 주를 이루며 이를 은유한다. 화면은 각각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뒤섞인 꿈처럼 개연성 없고 언캐니한 구성인데, 이는 빛과 그림자처럼 반대됨으로써 상호보완적으로 기능하는 속성이 강조되도록, 유사하게 대치되는 현실과 꿈이라는 요소를 추가한 것이다. 그로써 작업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꿈(작업)을 감상하는 동시에 삶을 역설하기를 권유한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04 Mar 2024 15:56:3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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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유민하</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88</link>
<description><![CDATA[유민하(Minha Yoo) 작가는 대한민국을 베이스로 애니메이션 및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로 활동하고<br/>있다. 2022년 세종문화회관과 강남 미디어아트갤러리에서의 미디어아트 전시 경력과 더불어 다수<br/>의 애니메이션 제작 및 전시 경험이 있으며, 현재 콜라주 드로잉 및 섬유 공예를 활용한 보다 아<br/>날로그적인 작업을 전개하며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드는<br/>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개인의 내면적 치유를 격려하고, 보다 선순환적이고 자연스러운 삶의<br/>태도에 대해 고찰하며 그 메세지를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ue, 09 Jan 2024 12:29:5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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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슈라이벤</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87</link>
<description><![CDATA[미술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1순위입니다. 첫째, ‘시각적인’ 요소는 음악, 문학 등 수많은 단일 예술 장르 중에서 미술만이 가지는 독특하고 고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름다움’을 지니지 않은 미술은 관객에게 심미적인 쾌락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br/><br/>아름다움은 주관적이며 정형화되지 않았다는 것이 사회적 관념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철저한 계산을 통해 이성적으로 설계할 수 있고, 이에 대한 공식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고전 미술을 연구함으로써 정리할 수 있습니다.<br/>회화예술의 최종 단계인 모더니즘 미술은 회화의 고유성인 ‘평면성’을 제외한 모든 요소를 캔버스에서 제거하는 데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입체적인 공간의 재현을 포기한 추상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잭슨 폴록, 피에트 몬드리안, 마크 로스코 등의 그림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의 그림은 전통적인 회화 – 인물 또는 사물을 평면 매체에 아름답게 재현하여 심미적인 쾌락을 주는 그림과 달리 비재현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장식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는데, 그들의 그림이 색상 균형과 화면 분할에서 심미적 쾌락을 끌어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아름다운 색상 조합과 화면 분할에 대한 공식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br/><br/>저의 작품은 모더니즘을 계승하여 색상 조합과 화면 분할을 통해 관객에게 심미적인 쾌락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동시에 모더니즘과는 달리 3차원 공간의 재현을 아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순히 예쁘기만 한 장식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작품에 인물과 서사를 추가하여 인체의 관능미, 감정의 승화 등에서도 관객이 심미적 쾌락을 얻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를 통해 작품 속의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주고자 합니다.<br/>따라서 비재현적으로 보이지만 재현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초점을 둡니다. 관객의 시선이 화면 한구석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화면 전체로 분산되게 설계하여, 그림이 입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구상화를 추상화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br/><br/>이러한 모더니즘으로의 비판적 회귀를 기반으로 다음 요소들을 첨가하였습니다.<br/><br/>첫째, 패션. 하이패션 계에서 추구하는 우아함, 세련됨 등의 키워드가 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부합하기 때문에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주로 레퍼런스로 차용합니다.<br/>특히 앙리 마티스를 필두로 한 야수파와 마일스 알드리지, 말리카 파브르 등의 패션 아티스트 작품들을 좋아하고 참고합니다. 아름다움은 세련된 색 조합과 우아한 몸짓, 실루엣 등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위 작가들의 작품에는 그러한 것들이 잘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br/><br/>둘째, 수인. 강하고 독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을 존경합니다. 짐승처럼 말입니다. 그들을 볼 때면 정신이 번쩍 현실로 돌아오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됩니다.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그림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림은 이미 많은 사람이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그림을 그립니다. 비범한 인물을 강한 모습으로 그려냅니다. 내면에 숨겨두었던 욕망과 모험심을 그대로 표현합니다.<br/>사람이라는 소재가 가진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과 짐승의 머리가 합쳐진 수인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수인을 소재로 하면 훨씬 사납고 공격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br/><br/>셋째, 장인정신. 어떻게 하면 더 손이 많이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효율성만을 따지며 작업하다 보면 완성된 이미지의 무게는 가벼워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1밀리미터짜리 디테일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표현합니다. 그런 작은 디테일이 화면에 모여서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어느 한 부분을 잘라서 확대해놓고 보아도 아름답도록 그림을 완성한 뒤에는 꼼꼼히 검토합니다.<br/>디지털 매체는 실물 매체에 비해 정교하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할 정도로 반듯하게 짜인 이미지는 오히려 불쾌한 골짜기에 빠지게 됩니다. 기계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복사 붙여넣기, 직선 그리기 등을 자제하여 디지털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도록 작업합니다. 반듯한 직선으로 이뤄진 이미지와 울퉁불퉁한 직선으로 이뤄진 이미지가 내뿜는 분위기는 절대로 다릅니다.<br/><br/>마지막, 서사. 앞의 세 가지도 중요하지만, 그것들만으로 작업을 전개하면 어딘가 아쉽습니다. 속이 텅 빈 장식품을 만드는 느낌입니다. 저의 작업물이 단순한 공예품에 그치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개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하고, 그것을 실물로 형상화할 때 저는 마치 창조신이 된 듯한 희열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감정이 제가 작업하는 이유이고, 동기입니다.<br/>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개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허울 그 이상의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사학을 연구하고, 작품 속에 녹여 넣었습니다. 다음은 서사학을 바탕으로 하여 제가 설정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개체’를 만들기 위한 요소 4가지입니다.<br/>첫째, 인물. 인물을 설계할 때는 최대한 ‘인간’답게 설계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어떤 생각으로 무슨 행동을 하는지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특징은 사연이 있고, 감정은 복잡미묘하게 요동치고, 생각은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없는 돌발 행동을 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특징을 반영하여 인물을 설계합니다.<br/>둘째, 갈등이 있는 사건. 사건을 설계할 때는 반드시 갈등이 발생하도록 설계합니다. 갈등은 이야기에 재미를 더합니다. 인물의 성격 변화, 심리 변화를 촉진하여 인물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장치입니다.<br/>셋째, 세계. 우리가 사는 세계에 제가 설계한 인물을 던져 넣는다면 어색할 것입니다. 현실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우리에게 맞춰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물들은 그들을 위해 맞춤 제작된 세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속에서 갈등할 때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br/>마지막으로, 시간성.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물이라도 멈춰 있다면 죽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물이 움직이고, 갈등이 발생하고, 세계가 드러나기 때문에 시간성 없이 서사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애니메이션, 로보틱 아트 등의 매체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매체의 경우 이미지 자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시간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br/>반면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의 경우 이미지 자체가 멈춰있기 때문에, 작업물 대신 감상자의 시선을 움직임으로써 시간성을 만들어냅니다. 그림 속 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없도록, 조금씩 뜯어 봐야 이해할 수 있도록 화면을 설계하여 시간성을 만들어냅니다.<br/><br/>저는 아직 어리고, 지혜도, 지식도 부족합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많은 것을 경험한다 해도 항상 누군가보다는 부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훈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신이 아닌 이상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없습니다.<br/>대신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디즈니가 지친 사람들을 위한 환상적인 도피처가 된다면, 저는 그들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현실은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Wed, 06 Dec 2023 10:40:2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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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김태형</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80</link>
<description><![CDATA[01)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계기<br/><br/>&gt; 영국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 하고 돌아와 6년 여 시간동안 전공을 살려 해당 업계에서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다가 현재는 마음이 맞는 친구 2명과 함께 EREVO 라는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br/><br/>EREVO 에서 현재 Creative Director을 담당하고 있으며, 주 업무 중에 하나로 오프라인 공간내에 위치한 미니갤러리를 운영하며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작가로서의 도전을 해 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올해(2023년) 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 했습니다.<br/><br/>02)SYDWILLDO 라는 작가명을 짓게 된 계기<br/><br/>•SYD<br/><br/>&nbsp;&gt; 저의 결혼식 행진곡으로 사용했을 만큼 제가 사랑하는 작품인 Toy Story에는 Sid 라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이 캐릭터가 작중에서 악랄하고 무섭게만 그려 지는게 아쉬웠습니다. 그 방식이 조금 파괴적이긴 했지만&nbsp; 해당 캐릭터는 단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요소들을 모아 본인 취향대로 새롭게 창조해 내며 장난감 놀이를 하는 정말 창의적인 친구라고 생각 되었기 때문입니다.<br/><br/>&gt; 미국의 대표적인 산업 디자이너이자 블레이드 러너, 트론 등 공상 과학 영화의&nbsp; 컨셉 아트로 유명한 Syd Mead 라는 분은 자동차 디자이너로 본인의 커리어를 시작 했지만 이를 기반으로 본인의 역량 스펙트럼을 무궁무진하게 확장하시던 저의 롤 모델 입니다.<br/><br/>&gt;&gt; 위 두명의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이름을 따서 SYD 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br/><br/>•WILLDO<br/><br/>&gt; 저는 일단 해 보고 싶은 건 결과를 떠나서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성취하기 위해 꼭 어떠한 방식으로 든 시도 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입니다. 이러한 성향을 설명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SYD 뒤에 Will Do를 추가 해서 SYDWILLDO 라는 이름이 만들어 지게 되었습니다.<br/><br/>3)향후 활동 계획<br/><br/>•현재는 저의 자동차 디자이너로서 의 백그라운드를 어필 하기 위해 자동차를 오브제로 작품활동을 해 보고 있습니다. 또한 저만의 스타일을 구축 하기 위해 다작을 하며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 해 보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단순히 자동차 뿐 아닌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다채로운 그림을 그려 보고 싶습니다.<br/><br/>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업무 외의 시간에 그림을 그리며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 입니다. 현재 확장 되고 있는 한국 아트씬을 등에 업고 가능하면 KIAF, FRIEZE 등 대형 아트패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전시를 하고 싶습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07 Aug 2023 10:25:4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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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리정</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79</link>
<description><![CDATA[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후, 미술대학원에서 예술 기획을 전공했다.<br/>일찍이 사회 환원의 일환으로 인성교육을 모토로 하는 자연체험 예술체험학교 ‘숲을보는아이들’을 설립하였고, 국내 최초 어린이 미술관을 개관했다.<br/>갤러리와 아트스페이스를 운영했으며, 서울시 장식디자인 심의위원과 선화예술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br/>시(詩)로 등단했으며, 칼럼니스트와 미술 작가로 활동 중이다..<br/>네이버에 다수의 글들이 메인 창에 탑재되었으며 미술, 디자인 부문 ‘파워 블러거’ 에 선정되었다<br/>저서로는 &lt;100명의 성공한 화가들의 비밀&gt; 1, 2와 &lt;자연주의 화가 리정의 그림시집&gt;이 있으며 &lt;예술가들의 오두막집&gt;이 출간 예정이다.<br/><br/># 월간 메종 기사 (2022.5)<br/>자연주의 화가 리정이 ‘자연주의 화가 리정의 그림시집: In paradise’를 출간했다. 어릴적부터 푸른 바닷가와 숲, 강가와 호숫가에서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온 그녀는 자연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br/>‘In paradise’작품은 이러한 자연 속에서 영원한 시간을 얻고자 열망하는 간절함에서 탄생했다. 작가는 작품에 모든 생명체와 교감하는 21세기형 여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을 등장시키고 작품 속 배경으로는 먼 평원과 하늘, 숲을 펼쳐 놓았다. 작품에 맹수들도 등장하는데 이는 기원전 36000년 73종의 동물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는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그 후 자신의 작품에 맹수를 자주 등장시키는데 2022년은 검은 호랑이해인 임인년을 맞아 작품에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를 통해 물질문명의 이기로 변질되어가는 인간성을 회복하고, 치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자연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역동적인 맹수와 유순한 눈동자의 초식 동물을 사이좋게 공존하는 모습을 그려 전쟁과 서로 배타적인 인류에게 세계 평화와 생명 존중을 통한 평화의 화두를 제시한다. <br/>신비로운 자연의 세계가 전하는 깊은 울림의 메시지를 직접 느끼고 싶다면 작품을 찾아보길.<br/>WEB blog.naver.com/forestcds<br/>CREDIT<br/>어시스턴트 에디터강성엽<br/>TAGS<br/>#inparadise#paradise#개인전#그림시집#그림집#리정#시집#자연주의#자연주의 화가#전시<br/>기사: <A HREF="http://www.powerin.co.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108042" TARGET="_blank"  rel="nofollow">http://www.powerin.co.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108042</A><br/><br/>#출판사 서평 <br/>리정 작가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함께 힐링을 주는 작품으로 감동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의 시집은 삽화와 함께 시를 엮는 것이 대부분이나 &lt;자연주의 화가 리정의 그림시집:In paradise&gt;그림시집은 작가의 내면세계와 생명 존중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미술 작품세계와 함께 감성적인 시가 결합되어있다. <br/><br/>#추천사<br/>푸른 하늘의 뭉게구름만 봐도 여행과 작품에 대한 열망이 불꽃처럼 타오른다는 리정작가의 이번, &lt;자연주의 화가 리정의 그림시집:In paradise&gt;에서는 작가의 신비롭고 자유로운 상상, 강렬한 색채인 ‘In paradise’ 작품과 감성적인 시가 펼쳐져 있는데 보는 사람의 마음을 맑고 순수하게 만들어준다. 작가가 추구하는 영원한 시간은 늘 동경하는 고향인 동해 바다에 대한 짙은 그리움과 애틋함으로 용해돼 작품의 모티브와 영감, 즉 원초적 향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nbsp; - 김대식 (사)한국방송신문연합회취재국장,파워인터뷰 대표 <br/><br/>‘인간 세상의 질서가 이토록 사정없이 파괴되고 있는 때에 ,동물의 공존 화풍은 리정작가가 시대를 정면에서 직시하고 응시하는 통찰의 힘이자, 생명력이 아닐까 합니다. 가능하다면 푸틴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은 오늘의 그림이자, 지구의 미래에 던지는 작품성이라 믿어집니다’<br/><A HREF="http://kclassicnews.com/news/article.html?no=41446" TARGET="_blank"  rel="nofollow">http://kclassicnews.com/news/article.html?no=41446</A><br/>k-클래식 탁계석회장님 기사와 추천사 <br/><br/>*작가의 글 -<br/>어려서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살았다. 그 후 숲에서 사는 동안 자연은 사유의 시간과 함께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힘을 주었으며,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는 슬기롭게 이겨내는 정신적 내공을 발휘하게 했다. 항상 자연을 선호했으므로 강가와 호숫가에서도 살게 되었는데 자연은 예술가로 살아가는 나의 삶에 큰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 <br/>&lt;in paradise&gt; 작품은 이러한 자연 속에서 영원한 시간을 얻고자 하는 절실한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br/>내용 면에서 맹수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기원전 36000년 전에 형성된 프랑스 쇼베 동굴 벽화에서 영감을 받게 되면서 비롯되었다. 쇼베 동굴은 라스코 벽화나 알타미라 동굴 벽화보다 훨씬 정교한 묘사로 학계를 놀라게 했는데 코뿔소. 곰. 사자. 표범 등 73점의 동물들이 현대미술의 경지를 넘나드는 표현으로 놀라게 했다. <br/>특히 처음에 맹수 중에 치타를 선호한 것은 강한 모성애적인 성향뿐만 아니라 날렵하고 장식적인 미에 이끌렸다. 그래서 작품에서 평화와 균형을 위해 스스로 수비하는 착한 수호자의 역할을 맡도록 했다. <br/>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동물 중에 아프리카 사바나에 서식하는 얼룩말은 말이나 당나귀처럼 사육된 적이 없는 동물이다. 맹수가 침범하면 무리 지어 쫓아내기도 하는데 역시, 장식적인 얼룩무늬가 매력적이다. <br/>2022년, 검은 호랑이해인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치타와 사자에 이어 호랑이가 등장하게 되었다. 맹수 중에서 수영을 잘하는 호랑이는 산악지대가 많은 한반도를 좋아하던 동물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으로 뼈를 비롯한 신체 부위들을 한약재로 사용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멸종되어가고 있다. 작품에 표면화된 각각의 다른 습성을 지닌 동물들은 종은 다르지만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면서 평화롭게 자연환경을 공유하고 유지하는 존재로 표현했다. <br/>&lt;In paradise&gt;를 작품화한 계기는 물질문명의 이기로 인해 변질해가는 인간성을 회복하고, 치유와 함께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연’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탐욕으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지극히 배타적으로 변하는 현대의 인류에게 세계평화와 생명존중, 공존을 통해 평화 공존의 화두를 제시하고자 했다. 작품 속 여인은 21세기형 숲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상징화했다. 특히 맹수들은 자연 속 평화와 균형을 위해 스스로 수비를 하는 착한 수호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작품에 표면화된 각각의 동물들은 종류가 다르지만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면서 평화를 공유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그래서 역동적인 호랑이, 치타, 사자 등의 맹수와 유순한 눈동자를 지닌 코끼리, 얼룩말 사슴, 순록, 등의 여러 초식 동물과 새들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모습들을 작품에 담게 되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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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Mon, 26 Jun 2023 12:29: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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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변재준</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78</link>
<description><![CDATA[현 모아도 소속 작가<br/>현 동양화와 일러스트를 결합하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며 그리고 있으며 원래 있던 것의 발전 이라는 주제로 작업하고 있음]]></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26 Jun 2023 10:01:4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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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하판덕</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77</link>
<description><![CDATA[솔직하나 유치한 민화의 형식을 차용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래야 할 이유는 화법을 넘어 마음의 법을 다루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의 그림의 확정적이고 고정된 틀을 깰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대신 만유일체를 마음의 법으로 새김해야 할 것을 제기한다. 가령, 민화를 보자면 사물들이 당장에는 서로 모순되고 상충되게 그려져 있다.<br/><br/>통일성이나 균형과 평형보다는 산란함과 불균형, 나아가서는 비평형의 세계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참이란 바로 이러한 산란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작가는 생각한다.<br/>민화의 형식과 내용이 이렇게 해서 궤를 달리하여 하판덕의 그림들에 등장하게 되었다.<br/><br/>그가 민화의 예를 차용하거나 유추함으로써 자신의 그림세계를 일구려한다고 하였지만 차용과 유추보다 더 적극적인 의의가 그의 해법을 지탱해 주고 있다고 믿어진다.<br/><br/>그림이란 것의 실체를 탈취함으로써 그림 자체를 기호화 하고자 한다는 것으로 직시할 수 있다. 그림의 실체의 폐기와 그후의 기호화는 진리 또는 참 자체가 실재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역으로 말하자면 참 자체가 존재한다든지 존재에 관련된 개념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흔적이거나 기호로서 이해된다는 것이다.<br/><br/>참의 이해에 대한 유비로서 접근해 보려는 하판덕의 해법은 그림을 하나의 기호체계로 간주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참의 이해가 애매성에 필연적으로 봉착하려는 것과 그림의 해법이 애매성에 직면할 운명이 같은 수준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br/>이것들에서 공통되게 찾아지는 애매성이란 논리적으로 동형의 것이기 때문이다. <br/>따라서 하판덕은 민화의 시사를 받아들이면서도 이것을 마음의 법으로 세계를 읽으려는 것의 표본모델로 간주함으로서 그림의 제작에 임하고자 한다.<br/><br/>하판덕 작가의 작품은 수호,지조,장수,절개,풍류등을 나타내는 소나무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특히 소나무의 생생하게 살아있는 두거운 껍질과 질감의 오봉, 학 등이 작품속 기호로서 작가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나무중 으뜸이라는 소나무는 백목지장(百木之長)이요 만수지왕(萬樹之王) 이라 한다. 벼랑과 척박한 모래밭을 가리지 않고 독야청청 푸르른 빛을 발하는 소나무처럼 장생과 힘찬기상의 길상(吉祥)의 의미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034;<br/>구매한 하작가님의 작품이 좋은건강 1월호에 실려 있어 기쁨이 더하다. 작품 소개내용을 공유하고 싶어 옮겨 적어 보았고 작품을 집안 거실 벽에 옮겨보니 거실에 길상(성서로운 좋은 기운)의 기운이 느껴지는것 같다. 소나무를 표현하는 방법도 작가분들마다 다르지만 하작가님의 소나무는 독특하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 사진을 좋아해서 오래된 소나무의 껍질만 사진화면 가득하게 찍곤하는데.... 소나무를 소재로 사진을 많이 찍으시는 배병우 작가님의 사진 작품과도 다른 독특한 점이 있어 더욱 좋다 좋은건강 1월호를 읽다가 그림을 찿아보았고 여러날 망설이다 한번은 놓쳤고 이번은 꼭 가지라고 자신에게 수없이 주문해 드디어 갖겠됨을 ..벅차다 하루한번 그림을 보면서 소나무의 기상을 느끼리라.....]]></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13 Jun 2022 15:43:5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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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전병택</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76</link>
<description><![CDATA[[비평] 현대인의 불안과 욕망, 그 위태로운 카드탑: 작가 전병택<br/><br/>1. 현대인의 초상: 선택의 기로와 불안한 순응<br/>현대인들은, 아니 어쩌면 인류는 출현부터 다양한 선택을 해왔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욕망을 위해, 성공을 향해 매일 매순간 어떤 카드를 내밀어야 하는지 혹은 집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br/><br/>하지만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 그건 마치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 ‘무(無)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던 노자의 말처럼 궁극적 근거를 대기 곤란한 형이상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찌 범인(凡人)으로서 떠난 것이 생(生)이고 돌아온 것이 사(死)라는 의미를 쉽게 독해할 수 있겠는가.)<br/><br/>때문에 많은 이들은 현실에 적응하고 사회구조에 순응한다. 원한 것이든 아니든, 영역 밖보다 영역 내가 편한 것이든 아니든 그저 주어진 삶에 의탁할 따름이다. 실제로도 현세인은 있는 그대로의 가시적 세계가 무위의 세계보다 훨씬 무거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br/><br/>공동체의 규율과 조직 내의 위계 속에서 선택의 기로는 쓰나미처럼 들이닥치지만, 당장의 결정 앞에 딱히 저항다운 저항을 할 수조차 없다. 되레 자본계급이라는 새로운 계급과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태생적 신분 앞에 좌절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게 바로 현대인들의 삶이며 불안한 여정의 짙은 단면이다.<br/><br/>2. 시간의 감옥: 52장의 카드와 365일<br/>작가 전병택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삶을 **‘카드(게임용 카드)’**로 재현한다. 스페이드, 다이아, 하트, 클로버에 들어 있는 의미와 수, 조형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br/><br/>작가에 의하면 52장인 카드의 수는 조커를 더해 365다. 52주인 년 단위와 년일 수가 교묘하게 접목된 수이다. 이는 전병택이 어째서 카드를 예술표현의 주요 소재로 ‘선택’하게 되었는지 일러준다. 즉, 인간이 정한 시간의 표준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의미로써의 카드인 셈이다.<br/><br/>3. 쌓아 올린 카드탑: 불안과 계급의 이중주<br/>카드 속에 표현된 각종 캐릭터와 구조는 보다 직접적인 내러티브를 담보한다.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인 **‘쌓아 올린 카드’**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br/><br/>첫 번째는 매사에 불안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일정한 프레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구멍조차 없이 일상을 소화하고 있는 우리네 초상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초상은 언제 어느 때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한다.<br/><br/>두 번째는 계급의 문제요, 욕망의 문제다. 숱한 경쟁을 뚫으며 상위로 오르려는 결핍된 욕망과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 신분의 관점이 투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br/><br/>카드의 도상으로 봤을 때 계급은 중세시대나 왕정시대의 계급을 가리키지만, 그것이 현재의 계급문화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도상의 시대적 정의는 무의미해진다. (필자는 이 카드의 무늬가 상징하는 바를 전병택 작가의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처음 알았다.)<br/><br/>스페이드: 검과 군인<br/><br/>다이아: 돈과 상인<br/><br/>하트: 성배와 성직자<br/><br/>클로버: 곤봉과 농부<br/><br/>흥미로운 건 아슬아슬한 카드 탑의 모양이 말해주듯, 그래봤자 위태로운 형편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신분이든 위계든 계급이든 그 무엇인들 얻기 위해 피나는 사투를 벌이며 기어오른들, 나아가 능력과 성공에 매달린들 매사에 불안한 인간들이란 거푸집은 일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br/><br/>따라서 그의 쌓아 올린 카드는 그저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욕망하고 이루기 위해 종잇조각 같은 유무형의 사다리에 기대는 인간의 헛된 욕구와 투쟁적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그 길은 보편적인 선택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소수만이 떠나는 특수한 길일뿐임을 차갑게 내보인다.<br/><br/>4. 불규칙한 탑과 캐릭터: 현실과 이상의 모순<br/>그러나 몇몇 작품에서의 카드 탑은 수직적이지 않다. 그야말로 불규칙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는 교훈적 상투성을 이탈하는 조형적 장치이자 작가의 의도가 녹아 있는 고의적인 배치(재구성)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본래 태어나면서부터 계급이란 부과되는 것이 아니며, 그런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br/><br/>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캐릭터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작가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자본주의 매체의 표상이면서 가공된 존재들이다. (배트맨, 뽀로로, 아이언 맨, 피에로, 톰과 제리, 앨리스, 올빼미 등)<br/><br/>이들 캐릭터는 실체가 아니지만 미디어를 통해 널리 전파된 탓에 친근함이 물씬하다. 그로 인해 관람자들의 긍정적인 시선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드러남이 전부는 아니다. 그 내부엔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놓여 있다.<br/><br/>현실과 이상의 거리감을 말해주는 두 얼굴로써의 캐릭터<br/><br/>작가 자신이 바라는 희망적인 세상을 투과시키는 수단으로써의 캐릭터<br/><br/>실제로 이 캐릭터들은 현실감이 없다. 만화 속 주인공이거나 만들어진 영웅들, 이상화된 대상이요, 상황을 예시하는 존재다. 그러나 이들이 앉아 있는 곳은 다분히 현실적인 공간, 더 정확히는 현실을 대리화한 카드 위다.<br/><br/>이 모순적인 상황이 뜻하는 것은 수직적이지 않게 자유분방한 양태의 카드 탑과 같다. 즉,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이자 가시적인 규율과 법칙, 보이지 않는 틀에서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양가적 입장을 모두 아우르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동시에 그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위태위태한 삶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현재를 반추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br/><br/>5. 맺음말: 당신은 어떤 카드를 선택할 것인가<br/>전병택의 그림들은 들여다볼수록 겉과 다름을 발견하게 된다. 화려한 컬러와 친숙한 도상 탓에 호기심으로 접근하기 쉽지만, 내용은 꽤나 짙은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철학적인 이해와 개념을 제외한 채 단순히 캐릭터만 놓고 해석한다면 그만큼 아쉬움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작가의 시점을 파악하는 것이 그의 그림을 간파하는 핵심이다.<br/><br/>한편 카드게임은 확률게임이다. 운이 좋으면 이기기도 하지만 지기도 한다. 여기에 요행이란 없다. 그저 말 그대로 확률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br/><br/>그럼에도 인간은 승부에 집착하고 성공을 기원한다. 언제 으스러질지 모를 탑을 쌓으면서 순간의 선택에 매몰된다. 이때의 노력은 &#039;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039;에 관해 관대할 뿐, &#039;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걸을 것인지&#039;에 대한 노력에는 인색해진다.<br/><br/>그런 점에서 전병택의 그림들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으며, 우리에게 자문자답의 기회를 준다.<br/><br/>&#034;당신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중에서 가장 올바른 것을 선택하는 &#039;선택의 미학&#039; 앞에서 무엇을 집어들 것인가?&#034;<br/><br/>성공이라는 욕망의 실현, 계급사회 최상위로의 진입, 과거와 다른 미래를 위한 모든 것들 앞에서 우린 어떤 카드를 내놓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근거와 방법, 가치와 목적 등은 분명한가.<br/><br/>아마도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여러 대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내 앞에 다가설 미래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사실이다. 선택의 수와 행동의 수, 결과의 수가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그게 삶이다. 전병택의 그림들은 이 지점을 우회적으로 관통하고 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13 Jun 2022 15:00:0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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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경현</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75</link>
<description><![CDATA[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표정 없는 얼굴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멀리서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작품에 담아냅니다. 이 시선을 통해 사람들의 가치를 똑같이 만들고, 현대인들의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 너도 나도 비슷한 프레임 안에 갇혀있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희화화 합니다. 이렇게 획일화된 가치와 끝없는 경쟁 속에서 얽히고 설킨 인간 군상들을 다양한 장면과 상황을 통하여 표현하는데, 그 모습은 연초에 소원을 빌며 풍등을 날리는 수많은 사람들이기도 하고, 입시설명을 듣는 학부모들이기도 하며, 핸드폰만을 응시하며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회사원들이기도 합니다.<br/><br/>&nbsp;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단순한 형태와 화려하고 선명한 컬러로 이루어져 있고, 표정을 보여주지 않은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은 알 수 없이 복잡하며 세밀한 패턴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내부의 제각기 다른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캔버스 안으로 점점 더 가까이 이끌어 세밀한 관찰을 유도합니다.<br/><br/>&nbsp;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광경 또는 이야기를 통하여 현대인의 삶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현대 사회 속에서 개개인 내면의 의미를 뒤로 하고 어딘가 모를 공허함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슬며시 질문을 건냅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13 Jun 2022 14:30:0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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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용백</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74</link>
<description><![CDATA[예술은 사회적 편견과 강요된 형식을 타파하면서 인생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해 실험하는 인생의 영원한 동적 과정 (dynamic process of life)이라고 믿는다.<br/><br/>이용백은 한국 미디어아트의 대표작가다. 그는 한국 특유의 정치 문화적 쟁점과 함께 인간 존재와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시각화하여 독자적인 틀을 구축한다. <br/><br/>이용백의 작품세계는 총 4가지 시리즈로 나뉜다. &lt;엔젤-솔져&gt;는 우리 세대의 사회를 대범하고 적나라하게 천사와 군인이라는 대비적인 소재로 표현한다. &lt;브로큰 미러&gt;는 거울, 평면 스크린, 그리고 컴퓨터로 단순하게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귀청이 찢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깨지는 거울을 보여주며 존재에 대해 말한다. 작품 앞에 서 있는 관람객은 깨진 거울이 진짜인지 허구인지를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lt;플라스틱 피쉬&gt;는 실제 물고기가 생존을 위해 낚시찌를 무는 모습과 그리고 그 이후에 사람이 낚싯대로 물고기를 낚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생존의 대한 모순을 고통이라고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lt;피에타&gt; 조각 시리즈는 인간의 생존과 문명의 미개에 대한 모순을 성모마리아와 예수의 형상을 두 가지의 대비되는 구성으로 만들었다. <br/><br/>이용백은 1966년 김포에서 태어나 1990년 홍익대학고 서양학과, 1993년 독일 슈트트가르트 국립조형예술대학 회화과, 1995년 동 대학 조소과 연구 심화 과정을 졸업한 후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11년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었고, 2014년 독일 라이프치히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13 Jun 2022 14:00:3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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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박용일</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73</link>
<description><![CDATA[1990년대 초 일산 화정 신도시 개발이 한창일 때 철거되고 파괴되는 지역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작가로서 본격적인 작업의 시작이었으며 그 후로도 표현의 방법은 몇 번의 변화가 있었으나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계속 작업을 하던 중 철거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보따리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br/>지금은 보따리에 철거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빠져 있지만 삶에 대한 철학이 없이 오직 물질 만능주의로의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보따리에 각자의 삶의 의미와 이야기를 담아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br/><br/>보따리에 원하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천에 이미지를 출력하여 실제 보따리 모델을 만들어 놓고 작업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미지가 접히고 잘려나가고 하면서 원래의 이미지와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되는데 이점이 여러모로 작업의 재미와 의미를 더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13 Jun 2022 13:37:1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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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천눈이</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72</link>
<description><![CDATA[이미지의 주종 관계<br/>&nbsp;<br/><br/>대체로 많은 이들은 직관적이고 완결된 문장을 선호한다.<br/><br/>해석의 태도는 시대적 지배 안에 있고, 텍스트와 영상에 둘러싸인 환경은 직관적인 해석에 익숙하게 한다. <br/><br/>이와는 달리 정적인 영역의 회화는 멈춰진 시간 속에서 개인의 주관성을 개입시키며 다양한 해석을 만들 수 있기에 평면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br/><br/>작품에는 익숙한 피사체의 중첩과 정체성이 불분명한 도형적 장치가 혼재한다. <br/><br/>이는 피사체를 관습적으로 해석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br/><br/>해석의 태도는 각자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데, 혼재된 형상들은 그 안에서 익숙한 정도에 따라 우선순위와 서열이 매겨지게 된다. <br/><br/>인류는 추상적으로 이루어진 불가사의한 생태계에서 구체성을 붙잡고 살아왔다. <br/><br/>이처럼 익숙함이라는 것은 통상적으로 안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br/>&nbsp;<br/><br/>관객은 이미지를 마주한 순간 해석의 욕구로 익숙함에 집중할지, 그 이면에 집중할지 선택하게 된다. <br/><br/>각기 드러내는 태도와 그에 따른 내러티브는 시대적 선입견임을 알려준다.<br/><br/>현대인들은 겉으로는 매우 현실적으로 살아가지만 현실을 잊거나 공상에 다가서기를 바라기도 한다. 마치 사람이라서 당연히 갖을수밖에없는 이중적 양면성을 표현하고있다.<br/>하지만 이 양면성은 태생적 환경 또는 과거로부터의 지배적 구조에 의인하기때문에, 어쩔수없이 얽매이기도한다. 그래서 저마다 각자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로부터 자유롭고싶은 마음도 있기에 이러한 일상의 구조나 지배적인 풍경을, 가볍게 파괴하고 그안에서 스토리를 구성해나가려는 노력을 표현하고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13 Jun 2022 11:38:0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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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근화</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71</link>
<description><![CDATA[이근화 작가의 작품은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바다를 통해,무의식과 의식의 경계를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캔버스에서 에너지가 강렬하게 꿈틀대며 응결되어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작가의 작품은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 있다. 의식은 빛을 통해,사물을 대상으로 보려 하지만, 무의식은 사물을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무엇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표출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무엇을 그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림은 단지 그 결과일 따름이다.작가는 무의식의 바다에 침잠하고 있고, 유영하고 있다. <br/>이근화 작가의 작품은 자연친화적인 컨셉의 작품으로, 렉서스의 LS의 최첨단 글로벌 하이브리드의 면모를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13 Jun 2022 11:16:5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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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심유하</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70</link>
<description><![CDATA[전통을 탐하다!<br/><br/>전통에서 길어 올린 이미지!<br/><br/>그것은 고요하게 가라앉아있는<br/><br/>나 자신의 심연(深淵)에서 나오는<br/><br/>작은 우주(宇宙)와 만난다.<br/><br/>나에게 있어 전통의 이미지들은...<br/><br/>옛 조상의 너그러운 지혜와 여유, 사랑과 情,<br/><br/>따스함과 풋풋함 등으로 다가온다.<br/><br/>나의 작품 속...<br/><br/>오색의 띠는 화면에 생수 같은 ‘생기’를 주는<br/><br/>엑센트이고 변화를 의미한다<br/><br/>또한 민화에서 찾아지는 조형과 정겨움은,<br/><br/>나를 돌아보게 하고 더욱 깊어지게 한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Fri, 10 Jun 2022 15:54:2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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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노은희</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69</link>
<description><![CDATA[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빛이 존재하며, 그 마다 의미를 지니고 있다.<br/>그 중…<br/>칠흑같이 어둡고 깜깜한 밤.<br/>그 무엇 하나 보이지도, 한 발자국 내딛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짙은 어둠 속.<br/>분명 존재하고 있는 빛들을 표현하고자 한다.<br/><br/>어둠이 짙을수록 그 작은 빛이 지닌 의미 크다.<br/>사람에 있어…<br/>작은 빛… 아주 작은 빛만이라도 있다면…<br/>살아갈 수…<br/>살아낼 수 있음을 알기에…<br/><br/>나의 작업을 보는 이들이 자신만의 작은 빛을 발견하고,<br/>그 속에서 위로하고 위안 받기를 바란다.<br/><br/>작품은 기본적으로 한지에 먹을 사용하며, 한국전통재료와 기법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br/>바탕은 세필로 가는 먹선들을 중첩시켜 그음으로서, 쌓이고 쌓여 먹(墨) 특유의 맑으나 깊고 무거운 검정, 칠흑 같이 깊고 어두운 밤을 표현한다.<br/>그리고 오브제(자개, 금,은박 등)를 사용하여 원하는 빛의 이미지를 만든다.<br/>단순하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빛을 표현하고자 함에, 여러 종류의 자개를 섞어 임의로 잘게 부순 다음 짙은 아교를 사용 원하는 형태를 표현한다.<br/>달항아리가 지닌 달의 느낌을 좀 더 강조하기 위해 박을 붙이고, 그 위에 먹을 올림으로써 달그림자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br/>이렇게 하나 하나 선을 긋고, 자개 조각을 하나 하나 붙이며, 빛을 표현하는 수고로운 작업은 시간의 중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작업에서 표현되고 있는 그믐에서 초승달, 반달, 보름달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Fri, 10 Jun 2022 15:10:1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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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유유비</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68</link>
<description><![CDATA[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이 기억하는 여러 가지의 개인사들이 내면에 간직되어 있다. 내 그림 속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과 여행지에서 본 것들, 또한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것들의 인상적인 기억들이 산재하여 있다. 이러한 것들은 나의 삶을 기쁘게도 때로는 슬프게도 했던 소중한 편린들이다.<br/><br/>나의 조형 세계는 시각적 환경들에서 가져온 이미지들과 모든 자연 속에서 느껴지는 벅찬 감동들, 그리고 끝없는 상상들과 함께한다. 그것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 주었다. 때로는 나를 종이비행기로 접어 하늘을 날고 커다란 목련꽃 속으로 들어가 낮잠을 자기도 하고 구름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한 나머지 사다리를 놓고 구름 너머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단풍이 예쁘게 드는 나뭇잎을 보고 나무는 어디서 저런 물감을 가져다 자기 잎사귀에 물을 들이나 땅속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놀란다. 거기에는 색색의 물감 저장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의 작품에는 늘 작은 상상과 모험으로 가득 찬 소녀 하나가 산다.<br/>그 소녀는 세상을 행복으로 물들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산업화와 공해로 찌들고 힘든 세상살이에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잠시만이라도 웃어 보라고 권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은 얼마나 행복했는가.<br/><br/>이러한 것들을 화폭에 담아내다 보면 나의 조형 의지는 어느새 화려한 색채를 고르고 동화적 상상은 춤을 춘다. 작품 속에 그려진 작은 스토리들은 때로는 비현실적이지만 대부분 긍정적이고 따뜻하다. 언제나 내가 그리고 싶은 표현의 결론은 행복과 사랑이 주제이다. 갖가지 색채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놀이터로 만들고 화면에 구성되는 추상적인 요소와 구상적인 요소가 같이 어우러지게 하고 싶다. 그런 형태들은 나를 빠져들게 한다.<br/><br/>나는 관객과 하나가 되어 상상 속의 행복 나라로 날아가 같이 신나게 뛰어다니고 싶다. 오늘 저녁 박명의 시간에 민들레 홀씨가 하늘로 올라간대요. 그때 그 옆에 서 있다가 훌쩍 올라타면 하늘 구경을 시켜 준다는데 오실래요?]]></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Fri, 10 Jun 2022 14:48:5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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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법관 스님</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67</link>
<description><![CDATA[법관은 불가에 귀의하여 40여 년간 수행을 정진해온 선승(禪僧)이다. 그가 선보이는 ‘선화(禪畵)’는 승려의 선 수행의 과정을 드러내는 예술적 화면으로, 기존 화법이나 서법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선화는 한국 선불교의 유산이다. 선 수행을 하는 승려만의 전유물로서, 나름의 독자성을 지닌다. <br/><br/>촘촘히 엮어진 그물망 같은 선들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그려져 변화를 이끌어 내고 수많은 점들은 찍었을 때 확장하려는 힘과 막으려는 선들의 충돌에서 생기는 작은 에너지들을 만들어 시선을 좀 더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도록 하면서 공간 확장을 통해 무수한 여백을 만들기도 한다 밤하늘의 별빛과 먼 도시의 불빛을 연상케 하는 정형화 되지 않은 화면은 담담하면서도 무한한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선(禪)수행으로부터 오는 긴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기도 한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Fri, 10 Jun 2022 14:23:4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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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박소은</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66</link>
<description><![CDATA[모든 사람은 내면에 무언가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와 염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선조들의 자유분방하고 소박한 현실적 염원, 즉 물질적 욕구보다는 정신적 욕구를 추구하는 한국인의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 과거의 기억 속에 표현된 한국적 정서를 일상생활을 통한 경험, 감정, 기억 등으로 전통적인 표현 방식을 이용하여 시각화한다. 전통은 변화하는 시대의 상징이며, 끊임없이 선택되고, 계승되고, 창조되고, 변화한다. 그것은 박제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로써 현대화 된 전통으로 계속 계승되며, 이러한 전통이 현대미술과 회화를 통해 우리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Fri, 10 Jun 2022 14:01:1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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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호국</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65</link>
<description><![CDATA[자연의 평범함 속에서 위대함을 본다.<br/><br/>녹색이 주는 평온과 안락함은 어느 무엇과도 대신 할 수 없는 것 같다.<br/><br/>마음껏 뛰놀 수 있는 숲과 길은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소통의 끈이다.<br/><br/>구름아래 나무는 시원한 바람 사이에 길을 따라 서 있고, <br/><br/>길 위의&nbsp; 자전거는 주인의 발길질에 바람이 되어&nbsp; 잎들을 흔들어댄다.<br/><br/>새들은 놀라 잠시 둥지를 떠나고 마실 나온 아낙들은 하던 얘기를&nbsp; 멈춘다. <br/><br/>평범한 일상과&nbsp; 풍경이 주는 가치를 작은 붓 하나로 선을 긋는 행위가 수없이 반복되어지면서 숲이 이루어지는 과정인 것이다.<br/><br/>이러한 행위는 가끔 우리의 굴곡진 인생과도 같다.<br/><br/>보이지 않는 바람과 공기는 화면에서는 미적 도구로 재구성되어 나만의 형태로 나타난다.<br/><br/>그 형태는 인물과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 일정하면서도 불규칙적인 선으로 꿈틀거린다.<br/><br/>그 선이 나의 조형언어이며 아이들과 나무는 행복을 전해주는 매개체이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Fri, 10 Jun 2022 13:29:4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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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손수민</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63</link>
<description><![CDATA[누구나 더 나은 삶을 원하고 행복한 시간을 꿈꾼다.<br/><br/>꿈꾸며 계획하고 갈망하는 마음과 기도로 세상은 변화되고 진화하고 있으며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고 있다.<br/><br/>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모든 것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br/><br/>“내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br/><br/>아이작 뉴턴의 말처럼 우리 삶의 목적과 이유, 그리고 앞으로 남은 생은 누군가의 열정과 노력, 고민 속에 맺힌 수많은 열매를 섭취하며, 그 어깨 위에 각자의 철학적 사고와 시선으로 다시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고 또 다른 기준으로 새로운 세상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과거는 현재를 반영하고 미래는 과거에서 찾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br/><br/><br/>&nbsp;<br/><br/>&nbsp;‘The great legacy’ 시리즈는 물을 응용한 존재 이유가 주제이다.<br/><br/>도킨슨의 이론처럼 더욱 나은 유전자를 생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과 도구일지라도 과거에서 오는 새로움의 해석과 탄생이 감정의 교환과 정신적 실체로 더욱 나은 세상의 역사와 철학의 시간을 꿈꾸게 만든다고 믿는다. 그 뒤와 그 속엔 과거 누군가의 유산적 발자취가 있었기에 지금 여기에 꿈꾸는 시간이 가능한 것이다.<br/><br/>물방울을 통해 투영된 이미지들이 또 다른 파장이 되어 새로운 해석과 다양한 기준을 위한 사유의 시간으로 초대되길 희망한다.<br/><br/><br/>&nbsp;<br/><br/>칸딘스키는 &#034;예술 작품에는 인간 내부의 의식이 반영된다.&#034;라고 하였다. 그는 어떤 예술 작품은 현상적 공간과 영적 영역 사이에 놓여 있고, 그 시각적 의미가 전달되고 나면 표면으로부터 나오는 가치는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나, 우리가 그 사물과 대상이 가지는 본질에 더 다가가고자 원한다면,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능동적이고 살아 숨 쉬는 모든 감각을 통하여, 그 예술적 영감이 깃든 작품의 진가를 또한 깊숙이 체험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br/><br/><br/>&nbsp;<br/><br/>(물방울 작업의 시작과 동기는 실제 가족 중 두 분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신다<br/><br/>나의 의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제작되었고 작업은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br/><br/><br/>&nbsp;<br/><br/>모든 것에는 역사가 존재한다.<br/><br/>그 역사가 남긴 많은 감정들과<br/><br/>찬란했던 여정들이 오랫동안<br/><br/>기억되어 전해지길 고대한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Fri, 10 Jun 2022 12:02:4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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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고현지</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62</link>
<description><![CDATA[최근 나의 작업은 “인간의 숙명 혹은 존재의 본질에 대한 사유”라는 주제로 진행되어 왔다. <br/><br/>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삶과 죽음은 무엇인지, 삶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고민의 결과물을 <br/><br/>일상생활에서 겪은 다양한 사건들과 평소 예술작품이나 각종 매체에서 접한 이미지들과 결합하여 회화작업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br/><br/>&nbsp;<br/>초기 작업은 주로 자연의 일부분을 포착하여 자연 속에서 사유하는 인물들을 그려 넣었다. <br/><br/>여기서는 “물”이라는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자연 속의 물은 멈춰 있지 않고 항상 어디론가 흘러간다. <br/><br/>문득 우리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끊임없이 흘러가는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br/><br/>&nbsp;<br/><br/>이후 작업에서도 흘러가는 속성을 가진 자연물인 구름, 연기 등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br/><br/>&nbsp;<br/><br/>이후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그려지게 되는데, <br/><br/>&lt;to be left behind&gt;는 존재와 부재 사이의 간극과 그 속에서 느낀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남겨지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br/><br/>&nbsp;<br/><br/>이외에도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다양한 사건들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이 그려졌다. <br/><br/>&lt;그렇고 그런 이야기들&gt;은 사생 여행을 통해 경험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한 화면에 재구성하여 표현한 것으로, 단편적인 관점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개념들의 상대성, <br/><br/>그리고 다양한 인과관계들로 얽힌 복잡한 삶의 구조를 표현하려고 하였다.<br/><br/>&nbsp;<br/><br/>&nbsp;<br/><br/>최근 작품인 &lt;보이지 않는 흐름&gt;은 생과 사, 순환하는 삶을 주제로 나타내고 있다.<br/><br/>텐트 속에서 교미하는 사람들, 새끼들을 양육하는 어미 새,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입을 벌리는 새들, <br/><br/>또 그들을 탐하는 고양이들, 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며 생명을 소진해가는 노인, 그 속에서 사색하는 인물 등 전체적인 삶의 흐름을 한 화면 속에 넣어 표현하였다. <br/><br/>구체적인 장소, 시간은 확실하지 않지만, 여기에 묘사된 사물들은 비교적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묘사되어있다. <br/><br/>&nbsp;<br/><br/>그렇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들은 시각적으로는 볼 수 없는 오묘하고 내적인 것들이다. <br/><br/>삶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순환의 흐름 속에서 이어져 나간다. 그래서 제목을 “보이지 않는 흐름”이라는 붙이게 되었다.<br/><br/>&nbsp;<br/><br/>어쩌면 “존재의 본질”이라는 주제는 다소 광범위하고 자칫하면 관념적으로 치우칠 우려가 있다. <br/><br/>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주제의 범위를 좁히고 개인적인 경험이 더 묻어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br/><br/>기법적인 면에서도 비단 위에 채색 방식과 더불어 순지, 화선지, 광목천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수묵의 번지는 기법을 활용한 표현방식을 연구해 보려고 한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Fri, 10 Jun 2022 11:14:4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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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노형래</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61</link>
<description><![CDATA[안녕하세요 아마추어 작가 에브리데이입니다. <br/>저는 인물캐릭터 중에서 미소녀 위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br/>비록 부족해보여도 더 나은 작품활동을 위해 노력하기에 절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Wed, 08 Jun 2022 11:20:0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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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김영진</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60</link>
<description><![CDATA[2013년부터 시작한 &lt;자유소생도&gt; 연작의 계기는 미시세계의 밝은 형상들을 심층적으로 바라보고자 시작하게 되었다.&nbsp; 주된 모티브는 늘 우리 곁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으로, 변두리 또는 인식 이외에 공간에서 묵묵히 자라는 생명력이야말로 참된 삶의 주인이 아닌가 생각되어 이와 같은 지점을 인간의 삶에 투영시키고 있다.&nbsp; 특히, 도상에서 주로 덩굴식물을 묘사하여 상징적 의미인 ‘기쁜 소식’과 형상적 성질인 ‘덩굴의 군락’을 부각시켜 희망이란 덩굴의 줄기처럼 얇은 가닥일지라도 끊임없이 감아 오르고, 피어나며, 군락을 이뤄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화폭에 담아보았다.&nbsp; 그리고 자유소생도의 모체가 된 &lt;이야기가 있는 풍경&gt; 연작은 2008년부터 시작하여 유년기의 희로애락을 서사적 구조와 거시적 풍경으로 풀어낸 작품이다.&nbsp; 개인적 일대기를 회상함으로써 자연스레 무색 또는 여러 파스텔 톤으로 표현된 경우가 눈에 띄고, 2010년을 기점으로 유년기의 체현(體現)에서 시기의 전후를 아우르는 풍경으로 차차 변화하여, 기존에 추구했던 서사의 방식을 버리고 가능태를 접목함으로써 불행했던 과거의 기억일지라도 현재와 미래를 위한 돛과 방향타가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ue, 31 May 2022 16:42: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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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정의지</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59</link>
<description><![CDATA[조각가 정의지는 생성과 소멸을 둘러싼 순환의 개념을 가시화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리제네시스(Re-Genesis)시리즈는 버려진 것, 쓸모없는 것의 이면을 들춰내고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의 연장이다.​작가는 각종 동물의 조형적 특징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이를 형상화하기 위해 버려진 오브제를 수없이 두드리고 접어 나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소성의 단계를 거치는데, 작품에 스며있는 불의 흔적은 생명에 대한 깨달음의 결정체이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ue, 31 May 2022 13:34:0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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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아이라최</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58</link>
<description><![CDATA[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난제 속에서 예술가는 어떤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br/>나는 이 질문에 끝없이 물음표를 던지며 시공간과 생(生)에 얽매이지 않은 대자연의 달빛 유토피아를 그려왔다. <br/>눈을 감으면 드넓은 고원에 만개한 꽃들과 신성한 동물, 적도의 식물이 길게 뻗은 광활한 대지가 펼쳐진다. <br/>그렇게 나는 이젤 앞에 앉아 상상 속 낙원으로의 신비로운 여행을 한다.<br/>맹수들이 지키는 깎아지르는 바위산과 끝없는 사막, 깊은 강물과 초원을 지나면 닿을 듯한 까다로운 낙원. <br/>그 문을 두드리는 작업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나를 떠밀고 그 설렘은 나를 몰입시킨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9:30:4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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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최혜지</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57</link>
<description><![CDATA[전용으로서의 재료, 시멘트로 담아낸 창조적 일상.]]></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9:21:5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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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전인경</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56</link>
<description><![CDATA[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작품활동을 진행하다 한국불화 무형문화재 48호 만봉스님을 5년간 사사한 인연으로 동서양의 영적 정신적 종교적 세계관에 관한 작품으로 전환했다. 한국 전통 불교 회화와 현대미술의 접목을 시도하는 작가로 불교회화의 &lt;만다라&gt;양식의 함축된 구도와 깨달음의 의미를 현대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과 결합하여 우주, 자연, 환경, 인간의 연기론적 관점에서 현대인들에게 성찰적 반성적 물음을 제기하는 작품이다. 최근 대우주와 별, 소우주와 뇌세포, 우주만물의 생성과 확장, 우주생명의 순환과 의미 등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한 사유하는 회화를 추구하고 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8:52:2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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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감만지</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55</link>
<description><![CDATA[판화를 전공한 감만지는 콜라페인팅(colla painting)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다. 판화기법중에 Collagraphy가 있다. 두꺼운 종이에 요철이 만들어 질 수 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붙이거나 올린 후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방법이다. 감만지는 콜라그래피에서 사용되는 두꺼운 종이를 긁거나 누르거나 파내면서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7:43:2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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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김덕용</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54</link>
<description><![CDATA[1961년 광주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2002 마니프 국제아트페어 우수작가상, 1996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수상(동아일보, 국립현대미술관), 1995 제1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문예진흥원, 국립현대미술관), 1992년 이후 10여 회 개인전과 주요 단체전 참여.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 중.]]></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7:24:3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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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수오</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53</link>
<description><![CDATA[제주에서 사진과 흙으로 기록하며 짓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화산섬의 고유성을 보여주는 오름, 용암의 흔적인 숨골(풍혈), 지질에 관한 소재 등 섬의 생채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갈라지거나 시들어서 분해되는 것들에 마음이 가는 데다가 거기서 건강함을 느끼고 이로 인한 감정의 파동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편입니다. 자연이 나이 먹는 모습, 다듬어지지 않고 거친 흔적들을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며 적합한 방식을 찾아 작업에 담습니다. 사진책 &lt;온도의 질감 Texture of temperature&gt;을 출간하였으며 3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습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7:01:5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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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양정욱</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52</link>
<description><![CDATA[양정욱은 거대하면서도 섬세하고, 기계적이면서도 서사적이고, 신비하면서도 세속적이고, 구조적이면서도 시적인 미술을 한다. 이 작가의 작품은 말 그대로 질료를 갈고 닦아 만든 조각, 특정한 공간과 시간을 조건으로 한 설치미술이다. 동시에 그것은 간단한 동력장치가 수없이 많고 다양한 부속장치를 작동시키는 큰 기계, 빛과 그림자와 소리와 움직임이 어우러진 연극, 시각이미지로 직조된(텍스트의 어원 ‘textum’이 지시하듯이) 문학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양정욱의 미술은 이 모든 속성과 형식을 동시에, 한꺼번에 가진 복합체이자 다면체라고 해야 옳다. 싱겁게 들리겠지만,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그 같은 미학적 속성을 종합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그의 작업을 어떤 특정 예술 양식이나 장르로 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6:42:0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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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미경</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51</link>
<description><![CDATA[손끝 여문 외할머니의 솜씨를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만들고 그리는 걸 즐겼고 자라서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br/>둘째 아이를 갖고 퇴촌으로 이사해 산책을 다니다가 퇴촌 관음리 구멍가게에 마음을 빼앗긴 후 20여년 동안 전국 곳곳을 직접 찾아 다니며 수백 점의 구멍가게 작품을 그려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 그리고 감동을 전했다.<br/>개발과 성장의 미명 아래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안타까움으로 오늘도 작은 골목들을 누비며 구멍가게의 모습과 이야기를 정교한 펜화로 그려내고 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6:17:0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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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원희수</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50</link>
<description><![CDATA[상상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색채와 재료들로 내면의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작가 원희수]]></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5:51:4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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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국대호</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49</link>
<description><![CDATA[199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10여년이 넘는 동안 끊임없이 색채에 대한 일관된 탐구를 이어온 작가이다. <br/>색채 작업을 한 작은 캔버스들을 모아 전시공간에 패치워크(patchwork) 하듯 모아 붙이는 작업들을 시작으로 그림의 사각형으로서의 틀과 공간의 문제 및 물질로서의 색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며 회화의 단순성과 순수함에 대한 천착을 거듭해왔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5:38:1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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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내</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48</link>
<description><![CDATA[이내 작가는 세종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여, 세 가지의 연작들 [경배], [기역], [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30 May 2022 15:09:1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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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박시유</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47</link>
<description><![CDATA[좀더 좋은곳에서 살기위해, 좀더 좋은음식을 먹기위해,쉼없이 일하고 노력하고 인내한다.<br/>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달린다.<br/>쉽게 얻거나 가질 수 있는 것은 물 한 모금조차 어렵다.<br/>그것이 현재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br/>&#039;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039;]]></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hu, 19 May 2022 19:20:1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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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소</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46</link>
<description><![CDATA[우리는 사람을 인식하고,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며 살아간다. 나는 아우라라는 형상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br/><br/>사람들의 시선에 내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형상)으로 존재하는지 궁금했다. 내 모습들은 정말 다양했고, 그 모습들 모두 결국 &#039;나&#039;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인정하게 되었다. 저마다 다른 형상들로 존재할테지만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며 살았갈 것이다.<br/><br/>본연의 자신이 있기에 아우라가 존재하듯, 아우라가 어떤 형상을 뛰던 우리는 변함없이 &#039;나&#039;이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hu, 19 May 2022 19:05:1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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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왕열</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45</link>
<description><![CDATA[출생&nbsp; |&nbsp; 1961-01-17, 전라북도 진안<br/>분야&nbsp; |&nbsp; 회화]]></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hu, 19 May 2022 18:42:3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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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강경미</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44</link>
<description><![CDATA[나에게 그림은 단순히 화면 안의 조형미와 기술이 아닌 예술은 사람들의 사고에 질문을 주고 관점을 전환하도록 깨우치는 메신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br/>하루하루 삶 가운데서 보고 느끼는 개인적인 생각과 관점을 식물들과 동물 그리고 어린 아이가 등장하는 하나의 작은 동화이야기로 표현한다.<br/>세상이 아름답기를 바라는 나의 소망을 내 그림의 이야기에&nbsp; 순하고 맑은 목소리의 노래로 독창 하듯 그려나간다.<br/>정치인의 준비된 연설보다 작은 소녀의 일상의 목소리가 내면의 진실함을 더 잘 느끼게 하듯 ,<br/>나는 화려하고 세련된 조형언어를 피하고 느리고 투박하며 삐뚤삐뚤한 어린아이의 표현을 선호한다. <br/>캔버스 흰 바탕작업 후 칠해지는 순색의 투명함과 흰색을 더한 색조합의 단단함의 대비,<br/>자연물을 상대적으로 확대하여 과장하고 인물을 축소하는 대비의 작업으로 단순한 주제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화면으로 보완한다.<br/>그림이 주는 아름다움은 미술적인 요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닌 그 내용과 철학이 동일하게 아름다워야 함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nbsp; 관람자가 삶의 가치에 무디어진 마음에 맑은 물 한 모금 마신 것처럼 잔잔한 감동이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면 작가의 의도는 성공이다.<br/>세상은 가시적이고 표면적인 것에 집중하도록 사람을 만들어가지만, 사실 원래 우리 인생은 내면의 미덕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선행을 하도록 설계되어진 피조물이다.&nbsp; 동물과 식물, 말하지 못하는 그들의 숨은 언어, 즉 생태활동을 통해 다시금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중요시하며 살아야할지 나의 그림 안에 그 미세한 목소리를 담아본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Sat, 15 Feb 2020 03:39:4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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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박부곤</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43</link>
<description><![CDATA[&lt;또 하나의 유기적 세계&gt; - 어떤 기원 (Some Origins)<br/><br/>박부곤은 개발 현장을 주목한다. 영종도, 군포 물류 센터, 경인 아라뱃길, 동탄 신도시와 같은 건설현장들은 작가가 담아내는 풍경이며 한반도의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br/><br/>작가는 상처받은 대지의 실재와 변모하는 땅의 정체성에 관한 의문으로 시작한다. 그 의문은 ‘진화의 땅(The land)’시리즈를 시작으로 ‘열린 풍경’에서는 토지개발의경제적 효용과 사회적 문제점을 시사하는(경인아래뱃길) 첨예한 담론을 형성한 현장을 담아냈다. 그는 공사, 개발, 산업, 도시의 성장이라는 한국의 땅과 자본이념들이 일구어낸 견고하고 넓은 토지들을 관찰로서의 작업을 넘어, 랜턴을 들고 그 현장을 몸으로 체험하여 카메라 렌즈의 장 노출을 통해 인위적이고 무작위 한 흔적들을 그려낸다. 이러한 체험으로서의 Tracking 시리즈는 개발의 흔적들을 검은 밤 속에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이미지로 변환 시킨다. 그 풍경은 어둠 속에서 발화하는 자연의 섬광을 닮거나 화학적이고 인공적인 전기적 파장을 닮고 있다.<br/><br/>새롭게 선보이는 ‘어떤 기원(Some origins)에는 기둥과 로프를 설치하고 카메라에 랜턴을 비추고 회전하는 원형 이미지의’공전-Revolution’시리즈를 포함하고 있다. 작가가 주목했던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장소로서의 공간의 정체성은 검은 빛으로 대체되고 불빛이 지나가면서 만들어낸 축적된 흔적들만이 원형으로 드러난다. 마치 일 필(一 筆)이나 일 획(一 劃)과 같은 통찰적이고 직감적인 동양화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 이는 신화적 제의적 기원을 더듬어 가는 듯 철학적 풍경과 대면하게 됨을 부정할 수 없다. 이로써 작가는 한국 발전의 변화 자체의 현상에 주목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br/><br/>이는 가시적이고 현상적 기술과 탐색(The land, 열린 풍경)에서 유기적인 구조의 발견(Mechanical City), 이를 통한 패턴을 인식하고 몸으로 사유(Tracking, Revolution)하며,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하는 변증법적인 생각의 발전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건설 현장의 반복적 걷기는 외적 환경의 변모를 체화하는 사색적이고 관조적인 내적 사유의 과정으로 보인다. 경남 합천의 고향 길을 반복적으로 걸으며 안개 속에서 포착된 흔들린 랜턴의 흔적들은 마치 소요(逍遙)를 통해 물아(物我)로 나아가는 노장사상의 정신적 몰입의 단계처럼 보인다. 이는 외부에서 내부로, 아래에서 위로, 물질에서 정신으로 향하는 시각의 고민과 성숙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관심과 모색은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곳에서 인간의 본질, 자연의 질서, 태초부터 존재하는 무의식적 신화와 상징을 대면하고 있는 듯하다.<br/><br/>작가가 경험한 환경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자연이며 개발 속에 등장한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담은 일련의 사진들은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직면한 포스트자연 환경에 관한 실재와 가상, 흔적과 허구의 진실에 관한 문학적인 글쓰기를 닮고 있다. 21세기 사진의 변화에 관하여 프레드 리천(Fred ritchin)은 사실에 기초하는 사진의 기계적 특징들보다 시인으로서의 사진가들의 주관적 통찰을 강조하였다. 이를 시적인 전환(a poeticturn)이라 말한다. 이 주관적 통찰들은 한편으로 모호함과 혼란을 야기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이는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기도 하고, 사진의 의미를 탐색하고, 대안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등 사진의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1) 이처럼 재현과 기록, 로고스적 의미로서의 사진의 종말 이후 대두되고 있는 새로운 사진의 확장된 영역에 있어 박부곤의 작품은 영혼과 세계질서와 같은 통찰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사진은 환경, 사건을 취사선택하는 시선의 문제이며, 이는 곧 동시대를 인식하는 철학의 문제이다.<br/><br/>그의 공간들은 사실적 공간을 넘어서 회화의 환영과 같이 시각을 뒤흔들고 있다. Mechanical City에서 구조물들의 짜임새를 탐색한 작품들에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사에서 흔히 보이는 아기예수의 탄생과 같은 경이로운 빛이나 사건의 반영이 드러나고 있으며, 기원전의 이집트 신전과 같이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아름다움이 발견된다. 공간에서 대면하는 긍정과 부정의 경계에서 상상의 발전을 경험하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거시와 미시를 오가는 특정 공간이나 장소에의 관심은 주목할 만하다.<br/><br/>종과 횡으로 구획되는 공간과 지역성은 엘리스가 토끼 굴에 빠지듯 무한의 세계이며 숨 쉬는 세계로 나아간다. 작가는 어쩌면 또 하나의 유기적 세계로의 산업과 개발의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연적으로 시공의 좌표에 내던져져 있는 우리들의 실존에서 우리들을 해방시켜 인류의 보편적인 본질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인간의 상상력이라 말한다. 집과 같은 공간은 불과 물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추억과, 추억을 넘어서는 태고의 종합을 밝혀 보이는 어렴풋한 몽상의 빛을 환기 시킨다.2) 실제로 작가는 ‘공전-Revolution’에서 선화(禪畵)의 직관적인 이미지의 연출처럼, 지구가 태양을 도는 우주의 질서를 가시화하는 실험적 작업을 보여준다. 둥근 원의 도상적 상징, 신성, 예술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원초적이며 태고, 기원과 같은 무의식의 이야기로 전환될 수 있는 풍부한 문학성을 담고 있다. 터널(The hole) 시리즈에서 이미 직접적인 은유를 담고 있는 건설현장의 터널을 통해 우주적 여행, 근원적 자궁의 도상을 탐색하고 있다. 작가의 시리즈들에서 포착되는 도시개발, 산업현장은 차이와 반복, 시뮬라크르, 불안정한 흔적들의 유희, 가치들의 배재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의미들을 탐색함으로써,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적인 대상으로서의 환경과 그와 관계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br/><br/>인공적이고 구조적인 산업현장은 작가 삶의 터전이며 예술적 대상이다. 작가는 자연과 인간, 전통, 개발과 도시발전의 사회적 이슈와 같은 현대의 간극 속에 살아간다. 도시 개발과 같은 인공 환경 속에서, 우리 삶의 방식을 변화하고 성숙시킬 수 있는 공존의 모색, 더 좋은 관계 맺기와 고유의 정체성에 관하여 작가의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br/><br/><br/>- 박옥생 (미술평론가 박옥생미술연구소장), 2016년 3월]]></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Mon, 19 Aug 2019 13:26:5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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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김혜선</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42</link>
<description><![CDATA[회화적인 풍경, 회화와 풍경 사이 <br/>&lt;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gt;<br/>■	김혜선의 작업은 풍경과 회화 사이, 풍경과 지각 사이, 풍경과 해석 사이, 풍경과 선입견 사이에 위치하는, 그런 경계 위의 풍경을 그린다. <br/>한쪽에 풍경이, 그리고 다른 쪽에 회화와 지각과 해석과 선입견이 위치해있는. 재현적인 그림이다................그렇게 그림은 바다 같고, 강 같고, 지형 같고, 빙하 같다. 그리고 내면풍경 같고 심연풍경 같다. <br/>이 작가를 주목할 점은 무엇보다도 안료의 물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대형 나이프로 두툼하게 발라 올린 물감 덩어리가 전혀 둔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데, 빠르고 느리게 흐르다가 맺히는 순간순간을 거의 호흡의 감각으로 갈무리하는 것이 감각적 쾌감을 자아낸다.<br/><br/>작업일지<br/>나의 작업들은 가로질 이다. 대형나이프에 농도가 다른 물감덩어리들을 가로로 밀고 당기며 마음을 닦는다. 추상과 구상 중간지점에 위치한 내 작품은 언뜻 바다와 갯벌을 연상하기도 한다.<br/>아마도 내 기억 속의 풍경이 기호화 되어 화면의 배색과 질감을 이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br/>그런 이유로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과 감성으로 자신의 기억 속 풍경을 상상하게 된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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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Mon, 19 Aug 2019 12:44:2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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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정 해광</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41</link>
<description><![CDATA[극사실주의의 경계를 넘어<br/><br/>장준석(미술평론가, 한국미술비평연구소 소장)<br/><br/>&nbsp;<br/><br/>&nbsp;정해광은 원래 누드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극사실적 성향의 작가이다. 이 극사실성은 자연주의적인 사실성이 아니라, 보다 감성적이고 리얼하면서도 현대적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극사실적 리얼리즘은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후 꾸준히 지속되어 온 것이다. 이처럼 극사실성에 바탕을 둔 그의 작품은 몇 년 전부터 좀 더 심도 있는 고민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는 미술사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흥미롭거나 주목받아 온 인물 및 소재 등을 새로운 느낌으로 합성시키는 작업으로서 새로운 리얼리즘 미술에 대한 참여인 것이다.<br/><br/>작가의 최근 작품들은 조선시대 신윤복의 미인도나 이집트 네페르티티(Nefertiit, Nofretete) 여왕의 얼굴 또는 북한 여성의 이미지 등을 차용하거나 혹은 창의적으로 그려내면서 시사적인 것 및 사회의 이슈거리가 될 만한 것 등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에 나오는 여성의 모습이 그대로 차용되면서도 현대 문명의 소산이라 할 수 있는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모습이 그려지거나, 북한 여성이 햄버거 위에 앉아있는 모습 혹은 샤넬 핸드백 위에 앉은 비너스의 모습 등이 리얼리즘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는 이집트 왕비 네페르티티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을 선물해준다. 그녀가 끼고 있는 반지에 그려져 있는, 파라오인 아크나톤(Akhenaton), 그리고 그와 통화하고 있는 왕비의 모습 등을 통해서 우리는 과거의 시간과 현재를 소통시킬 수 있으며, 그들과의 공존을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바쁘고 각박한 현대를 사는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못할 수 있는 여러 부분을 놓치지 않고, 다양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차용하여 마치 감성을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몰아가듯 독특한 리얼리즘적인 조형으로 내면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는 이들에게 사실적이면서도 가상적인 세계에로의 상상을 선물한다. <br/>&nbsp;이처럼 작가의 작품에는 극사실적인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독특한 조형 경험과 상상력이 발휘된 내면의 감흥 등을 시각적으로 이미지화시켜 가며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예술성을 함축하고 있다. 독특한 상상력과 사실성을 토대로 하면서도 내면에 흐르는 감각과 미적 본성에 의한 조형성을 붓에 의존하여 가장 극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br/><br/>과거와는 다른 2000년대의 새로운 극사실 미술은 이제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작가 정해광의 작품이 과거의 사실주의와는 다른 이미지의 극사실주의라는 점이다. 최근 그가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순환과 소통에 대한 문제는 극사실성을 바탕으로 하기에 더욱 현실감을 줄 수 있다. 전체를 화면에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특정 부위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시간성과 공간성을 환기시키며 아울러 디테일한 이미지를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조형적인 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의 손이 뿜어내는 극사실적인 조형성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의 심리 상태를 잘 묘사한 경우로 생각된다. 극사실주의인데도 가볍고도 날렵한 색의 처리라든가 몸의 상태가 거의 들어날 듯한 청바지를 입은 반 누드 상태의 여성의 모습 등에서 우리는 황금만능의 허영과 자기 과시를 엿볼 수 있다. 작가의 예리한 시각은 경제 발전을 이룬 우리 시대를 만끽하고 즐기는 젊은 도시 여성들의 삶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현대의 허영과 사치 혹은 자기도취적인 삶을 직시하고, 이를 현대문명의 이중적 모순으로 보고자 하였다. 작가는 자연적인 순수한 인간의 이미지와 물질 만능의 현대 사이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갈등을&nbsp; 극사실이라는 회화적인 방법으로 그 실체에 접근하고자 한 것이다. 특히 우리시대를 함께 호흡하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보며,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경제 발전 속에서 드러나는 비인간적인 모습과 황금만능의 여성심리 상태를 단 한 장의 그림으로 압축하고 있다.<br/><br/>우리시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의 심리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정해광의 최근의 극사실 작품들은 빠른 변화와 흐름을 타는 우리 시대의 삶의 현장을 자신만의 독특한 극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압축하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삶의 메시지가 깃든 이미지로 창출하고 있다. 때로는 얇고 간결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색 처리로 우리 시대 한국의 정서를 잘 드러낸다. 우리들이 놓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극사실주의적인 그의 그림만큼이나 예리한 시각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nbsp; <br/>&nbsp;그러면서도 정해광의 극사실은 현대적이면서도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느낌을 주는 형태와 분위기가 장점이라 생각된다. 이는 극사실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리의 정서와 결합된 듯한 미적 에너지가 비교적 잘 조화를 이루면서 형상적·감각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는 그동안 작가가 우리 시대의 상황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왔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작가의 작업은 서양의 극사실주의와는 다른 이미지를 지닌 작업으로, 과거와의 소통을 통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우리들의 삶을 보다 참신하게 조형화시킨 경우라 하겠다. 현대 한국인의 꿈과 이상, 인간에 대한 사랑이나 삶에 대한 관심, 과거에 대한 추억 등이 하나의 극사실로 조화를 이루며 은은하게 드러나고 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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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Thu, 13 Dec 2018 16:12:2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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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김 광미</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40</link>
<description><![CDATA[작가 김광미 근작에 대한 소론<br/>실존, ‘관조의 망루’에서 묻다-답하다 <br/>홍경한(미술평론가) <br/><br/>1. 작가 김광미 작품은 실존의 문제와 맞닿는다. 실존이란 항상 세계내존재이듯, 작가 역시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과의 간극, 타자와 부딪히며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존재의식이 작업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삶과 풍경, 바라보고 바라보기, 숨과 애(愛), 심(心) 등을 키워드로 한 그의 그림은 단순한 추상을 넘어 특수하고 개별적이며,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이면서 근본적으론 존재양식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그래서 김광미에게 예술이란 ‘현존재’에 관한 예민한 자기투영이다.&nbsp; <br/>김광미의 작품들은 삶에 있어 제한하거나 제약받는 상황에서 싹을 틔우며, 조형은 고의적 드러남과 감춰짐의 틈에서 자란다. 이는 일종의 내재율(內在律)로, 드러남과 감춰짐은 상보적 작용을 거치며 작품 내에 뿌릴 내린다. 마치 억 겹의 나날을 드러내는 것 마냥 서서히 말라 고착된 채 집약된 ‘삶의 궤적’에서 체감했을 법한 어떤 결을 깊이 있게,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결이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체감한 절망이나 현실의 암담함 혹은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깊은 어둠일 수 있다. 어쩌면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과의 간극,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느낄법한 모든 순간자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문자화 혹은 조형화되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br/><br/>‘삶의 궤적’은 두 가지 등선에 위치한다. 첫 번째는 조형의 빌미다. 작가가 오랜 시간 화두로 삼은 관조하기, 바라보고 바라보기는 곧 ‘서사화하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궤적 위에 놓이는 구체적 언어요, 표상화 되는 순간 생성되는 ‘궤적의 풍경’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애(愛)와 심(心)이 암시하듯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가시적 범주에 있지 않다. 시각적 발견은 불가능하며, 읽기도 어렵다. 무언가를 꾹꾹 눌러왔듯 기호적이고 상징적이며 에두르는 탓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장막일 뿐이다.<br/>&nbsp;<br/>다만 우린 그의 그림(표상체계)을 통해 감정이입을 하고, 물성과 반비례한 관념의 노획을 통해 찰나의 연속인 존재에 관한 자문을 헤아릴 수 있다. 역대 추상표현주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 공명이란 반드시 재현의 영역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광미 특유의 내재율이 지닌 특성은 알 수 없는 마음의 동요를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br/>‘삶의 궤적’ 그 두 번째는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자아의 투사이다. 김광미의 작품은 ‘심리의 그늘’ 밑에서 피어난 감정, 의지와 같은 여러 심리적-정신작용의 주관임을 암시한다. 그곳엔 환상이 없다. 자신을 옥죄는 세상이라는 그물도 없다. 대신 현실계에서의 결핍과 충족의 조형적 인용이 들어 있으며, 내적 혼란과 존재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구원의 갈망, 자유로의 의미가 배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자의식을 소실점으로 하며, 그 소실점을 축으로 굴레로부터의 자유, 소통, 욕망, 절제, 관조, 성찰 등의 명사가 놓인다. <br/>마티에르 두터운-거칠고 투박한 옛 작품들도 그렇지만, 김광미의 근작 또한 어쩌면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에 근접한다. 삶을 지탱해온 무언가의 한 귀퉁이에 의지한 채 본능적으로나마 느끼는 유토피아를 향해 놓여 있다가 처절하게 말라 타들어가는 초라한 존재의 불안감이 배회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br/><br/>2. 김광미의 그림은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마주할 수 있는 진실한 무대이자 세상에 대한 반응임을 고지한다. 작가에게 세상이란 몸과 정신으로 느끼고 체감한 것들의 반영임을 일러준다. 특히 그의 근작들은 살며 살아가며 느끼는 기쁨과 슬픔, 좌절과 고통, 비애와 환희 등을 미적 거름망을 통해 걸러낸 결과물이다. 걸러낸 자리, 즉 내면과 외계 간 마찰과 충돌로 거친 듯 조용하게 여울진 장소에 들어선 건 내면을 향한 희구(希求)이다. 원하는 것, 바라는 것, 보이는 것, 볼 수 있는 것을 포함한 모든 풍경이다.<br/><br/>흥미롭게도 김광미의 모든 작업은 구성되어질 수 있는 어떤 것을 빗대더라도 구체적 사물로부터 시작된 재현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감각적, 직관적 흐름이 다분하고, 형태는 모방에 충실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관자들의 가치관 혹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격정적 시상(詩想)을 제공하며 김광미의 작품은 그 관점에 너그럽다. <br/>일례로 흑과 백으로 분리된 채, 삼각형, 사각형의 기하학적 구성을 하고 있는 그의 여러 근작들은 표면적으로 앞서 기술한 삶의 풍경과 직접적이지 않다. 그보단 면과 선, 색과 사물이라는 조형요소를 통한 유보의 관념과 가감의 보류라는 개념이 앞선다. 여기서 가감은 곧 비움과 채움의 활성화(또는 정체화)를 나타내나 ‘비움’보다는 ‘채움’의 여백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고유한 미감을 획득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br/>다소 물질성이 두드러지는 일부 오브제 작업도 매한가지다. 금속판에 타원형의 묘한 이미지를 새긴 이 오브제 작가는 이 오브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적동물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감과 원초적인 나의 존재감 사이에서 부딪히는 이성과 감성 사이의 내밀한 생각들을 표출하기에 지금의 이 오브제들은 현재 진행형으로 내겐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선택 되어지는 것이다.” 작가는 그동안 흙이나 짚, 인쇄용 마판(석판화용 재료)을 문명의 부산물의 상징으로 사용해 왔다.<br/>는 어둡고 건조한 공간에서 독자성을 띤다. 재료가 금속이기에 평면의 회화와는 달리 물질성은 한층 강조된다. 그러나 그러함으로써 조형적 대비는 두드러지고, 개인적 함의에 집중되는 역할을 한다. 이 오브제는 여성인 작가 자신의 히스토리를 포괄하며, 평면과 입체로 조응시키면서 (의외의, 불현 듯, 예상 가능한)반응의 공간을 형성한다. <br/>이 가운데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산(山) 모양의 도형과 삼각형, 여타 작품에서 곧잘 표현되는 인체와 자연물 등은 주체에 관한 은유적 서술이다. 특히 근작에서 강조되곤 하는 화면 분할은 비가시적인 이미지를 통해 숨겨진 공간을 보다 확장하면서도 동시에 기존의 열린 공간을 구획 짓는다는 점에서 양가적 속성을 지닌다. <br/>양가적 속성은 말 그대로 작가 개인과 공동체의 단락을 의미하는 것이자 속박의 오늘이고, 조응을 뒤로한 관조이자 예민한 관찰이다. 관조와 관찰의 조형인 넓은 여백은 궁극을 향해 줄달음치지만, 시공을 포박한 비물질이면서 물질인 오브제 및 이미지와 결합됨으로써 내면의식과 외부와의 관계를 소환한다. 물론 이를 확장하여 보면 단절과 소통, 주체와 타자 간 상호성에 관한 실마리로 자리하며, 이 역시 김광미 작업의 화두인 삶의 풍경에 있어서의 동질화와 탈영역화를 통한 현존에 관한 자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은 타자에게 밀도 있는 공감을 선사한다. 그의 그림을 통해 되레 자신을 반추한다. <br/>이처럼 김광미의 작품들은 실존과 절대적 근원에 관한 고민의 무대다. 간결하게 다가오는 시적 형용의 단초이기도 하다. 특히 삶의 여정에서 거둬들인 가시적인 것과 감추어진 것,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비동일성을 리듬 있게 연주하는 것과 갈음된다. 작가는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실존의 가치에 의미를 두어 왔고, 굳이 숨겨져 있을 이유는 없을 내레이션,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그동안 스스로를 지탱시켜온 에너지, 자아와 연관된 표출의식임을 지향하려는 작가의식을 예술로 담아 왔다.<br/>&nbsp;그러고 보면 김광미에게 예술이란 무정형의 정형이며, 시작은 사변적이나 결과는 미학적 차원에서 변형되고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과정과 다름없다. 그 과정의 단락을 들여다보면 이성의 묘사가 아닌 순간적이고 날카롭고 뾰족한 직감-그러면서 한없이 포용적인 프로세스를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br/><br/>3. 김광미의 작품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균등하게 산포하는 유일한 도구이면서 존재성과 의미를 담아내는 거푸집이다. 내면과 마주하는 통로이자 거울이고, 자신만의 예술적 정신과 가슴에 끝없이 쌓이는 희로애락을 담은 장렬한 장소이다. 이를 미학적으로 풀어도 동일하다. 가령, 삶과 그 삶에 관한 시선,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작품에 드리운 공간성과 더불어 공소(空所)의 미(美)라는 원리, 시간성을 동반한다. 전체적으론 자아와 존재의식, 실존에 관한 의문, 자연의 일부로서의 삶에 관한 깊은 성찰이 배어 있지만 동시에 각각의 요소마다 고유의 시간성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시적 파편성을 띤다. 이는 공간, 즉 분할된 화면에서 드러나는 실제의 공간과 기호의 공간으로 구분되고, 실제의 공간과 기호의 공간은 모두 김광미 자신으로 귀납되는 공통점이 있다.<br/>귀납을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작업은 근래 작업에서 더욱 강해진다. 기본적으로 삶과 일상의 의미복제라는 프레임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시공의 변주와 맞물린 심리성이 보다 간결하게 함축되어 있다. 작품자체는 매우 체계적이나 즉흥적이고 임시적 공간을 통한 공감각적 상황은 무언가에 대한 집요함이 녹아 있다. 이는 표현한다는 행위와 감각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묘사와 그리기를 넘어 인지와 사고, 개념에 치우치지만 오히려 그것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br/>누구에게나 인식 가능할 만큼 이해가 원활한 것도 아니고, 취합의 구조 역시 이치를 따지기도 어려우나, 그는 물리적, 심리적 제약 혹은 원초적 내면을 작품에 그대로 수용하여 자연스럽게 삶의 일상성이 미술에 침투하게 둔다. 끊임없이 길을 잃고 헤매면서 길을 찾으려는 (일부 작품에서의 격렬한 선과 붓질에서 알 수 있듯) 뜨거운 몸짓, 불안한 인간의 위치,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을 고스란히 녹여내고 있다. 작가는 이와 같은 조형어법을 통해 삶의 일상성을 깨트리고, 시공을 숙고하며 심리적 해방 재밌게도 심리적 해방은 하나의 공간 속에서 병렬-중첩되면 기존 시청각적 체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지며 구축된다. 여기엔 구분, 제지, 차단이라는 규칙적 용도의 의미까지 포함된다.<br/>을 맛본다. <br/>따라서 우린 그의 그림을 보며 삶과 존재라는 미지의 세계를 고찰하며, 삶과 이상이라는-현실적 이상과 이상적 현실이라는 양립불가능성에 관한 가능성의 이미지를 훑는다. 나아가 특정 카테고리 내부로 스스로 귀속시켜온 관념을 해체함과 더불어 새로운 질서마저 맛보게 된다. 그건 밝은 성품 뒤에 아련한 슬픔이 들어 있고, 다른 방도가 없기에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노력과 현존성을 탐구하는 삶의 모색을 그의 작품을 통해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br/>한편 오늘의 작업을 잇는 수년 전의 작품들 &lt;삶-풍경…애(愛)&gt;연작이나 &lt;삶-바라보고-바라보기&gt; 시리즈 등이 그렇다. <br/>은 현재의 작업에 비해 상당히 투박하다. 인간, 나뭇잎과 같은 자연물, 기호로써의 도형과 오브제의 활용이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어 현실을 터전으로 한 억눌림과 비틀림, 작가로서-인간으로써 살아야 할 동시대 희망과 애환이 진하게 서려 있다. <br/>그에 비해 근작들은 군더더기를 제거한 여운이 크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 붙잡아야할 삶의 지속이란 실제적 삶에서 어떤 가능성들의 분절과 집합을 의미하고, 그것은 본질적으로 작가적 삶의 고지에 해당된다. 또한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직조되는 실존의 세계와 맞닿고 있다. 그러기 위해 설명은 줄였고 함축적인 의미만 골라냈다. 때문에 현존의 자각을 선험한 채 보다 짙은 체험을 유발하는 매개로써의 그림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br/>특히 작금의 작품들은 흡사 나무가 나이테를 두르듯 명도의 짙음이 가중되고 있으며, 이는 순연의 삶, 운명일 수 있는 현실에 관한 작가적 진솔함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렇게 그는 ‘관조의 망루’에 선 채 매일같이 삶과 실존에 대해 물으며 답하고 있다.]]></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hu, 13 Dec 2018 15:51:5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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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선희</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39</link>
<description><![CDATA[꽃을 피우기 위해서 씨앗은 어두운 땅속에서 잉태를 준비하며 침묵의 시간을 견딘다.<br/>씨앗은 침묵을 지나고 발아, 만개, 낙화의 과정을 거치는 꽃의 생이자 운명인 이 자연의 시간들은 긴 진통의 시간을 통해 세상과 마주보는 우리의 삶과 닮은 생의 주기를 가졌다.<br/><br/>우리의 삶과 닮은 꽃들을 자꾸만 들여다 본다.<br/>안쓰럽다.<br/>그래서 더 아름답다. 사람이 그러하듯...<br/><br/>그 꽃에 우리의 삶이 투영되었을 때 꽃은 꽃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순리에 따른 성장 과정이 내제되어 있는 희로애락의 메토포가 되었다.<br/><br/>메타포인 꽃은 화면 위에 면의 분할, 선의 유무, 색의 흐름으로 꽃의 부분적 외곡과 사실적인 표현을 통하여 재구성 되어지고 그 과정을 통하여 기억속의 숨겨진 다양한 갈등과 고통, 상처가 투영되는 치우의 매개체가 되어 인간애를 품은 꽃으로 재탄성 되었다.<br/><br/>꽃은 그렇게 우리를 함께 아우르는 공동체이며, 어느것 하나 같음 없는 다름의 너와 내가 &#039;같이&#039; 라는 울타리에서 어울려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며 기거하는 집이 되었다.<br/><br/>The Flower 1st는 인생을 아우르는 꽃,<br/>The Flower 2nd는 역경을 포용하는 꽃<br/>The Flower 3rd는 꿈을 꾸는 꽃이 되었다.<br/><br/>발아의 순간부터 갖가지의 꿈을 꾸는 꽃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희노애락이 담겨진 희망의 꽃으로 소생되었다.<br/><br/>앞다투어 피던 꽃들은<br/>서둘러 떠나고<br/>잎마저 떨어뜨릴 즈음<br/>다시 피어날 꽃을 기리며<br/><br/>세번째 꽃에게-]]></description>
<dc:creator>art</dc:creator>
<dc:date>Thu, 13 Dec 2018 15:30:2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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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조 현익</title>
<link>https://artnet.kr/p/artist/1</link>
<description><![CDATA[2018년 7월에 열린 조현익의 11번째 개인전 metamorphosis는 스스로 10번의 전시를 되돌아봄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를 가늠해 보자는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회고전적 성격을 가진다. 자신이 해왔던 작품들이라도 전시회를 통해 한번 맥락화됨으로써 빈 곳, 즉 미진한 부분과 새롭게 시작할 부분이 비로소 드러나기 마련이기에, 한 작가에게 전시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값비싼 검증행위인 셈이다. 그것은 머릿속으로만 진행할 수 없는 예술의 특징이다. 10번 정도 개인전을 치른 작가라면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계속 작업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막 40세를 넘긴 나이에 10번 이상의 개인전을 했으면 그동안 열심히 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지난 15년간의 작업 중에서 2008년부터 2018년까지의 10년 동안의 작품들에서 골랐으며, 근래의 작품도 포함시켰다. 최근 작품에는 어린 아들이 ‘자유롭게’ 찍은 사진들도 포함된다.<br/><br/>​<br/><br/>남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크게 다가오는 것들로부터 작업을 시작하고 키워나가는 방식은 사랑하는 여인이 화면 가득히 담겨있던 초창기 작품부터 발견된다. 예술은 나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로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의 발명품이다. 대형 설치작품을 포함하여 작은 소품까지 70여 점 되는 작품들의 배열은 많은 고민을 낳았을 것이다. 금천예술공장의 전시장은 결코 좁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설치작품을 포함한 70여 점의 작품을 한 번에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가벽을 설치한 몇몇 구역은 그 자체가 하나의 개인전이라 할 만한 응집력을 가지고 연출되었다. 그러나 지난 개인전들을 그대로 옮겨온 것은 아니며, 지금의 관점으로 강약을 조절했다. 물론 현재 생각이 바뀌었다고 이전의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응시한다. 그의 작품은 에둘러가지 않고 직접 표현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방식 때문에 스스로도 낯설게 다가오는 것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예술은 모든 것이 지나고 나서야 오는 것이니까.<br/><br/>​<br/><br/>각 시기의 작품에는 몸과 영혼에 남겨진 시간의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이 선명하다. ‘metamorphosis’라는 전시 부제는 그동안의 변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작품의 변화를 반영한다. ‘metamorphosis’는 그냥 변화가 아니라, 변신 즉 생사고락이 관통하는 유기체의 변화와 관련된다. 형식 면에서 형상성을 고수해왔던 그의 작품들에서는 그때마다의 관심사가 반영된 몸에 대한 드라마틱한 관점이 있다. 관심이 관심으로만 머문다면 일반 관객인 제삼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작가가 전시를 통해 세상에 던져진 작품들 하나하나를 해명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그는 한 관심사를 표현하기 위한 구체적 해법에 골몰한다. 심지어는 그 관심사가 사라질 무렵에도 그 해법에 대한 연구나 실험은 계속되었던 듯하다. 시작은 우연적이어도 마무리는 필연적이다.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이 떠내려가도 작품은 남아있다. 철판 작업이 대표적이다. 육중한 재료들에서 발산되는 물성의 특이함 때문에 그는 ‘철판 작가’라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다.<br/><br/>​<br/><br/>물론 철판 작업은 새로운 소재 및 실험과 더불어 지속될 것이지만, 최근에 대거 도입된 오브제나 사진 작업 등은 철판 작업을 작가가 구사하는 여러 기법 중의 하나로 상대화시키고 있음을 알려준다. 삶의 진실을 깨닫게 해준 사건들에 대해 담담해진 요즘 작업에도 그 매체는 적절한 맥락에서 재출현하여 힘을 발휘한다. 한 여인이 가득했던 철판에는 현실의 종교나 정치를 비롯한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풍자가 자리한다. 여인을 뒤덮었던 꽃은 근조 화환이 되어 현실을 풍자한다. 조현익에게 육중한 철판은 내밀한 것으로부터 바깥으로 확장되는 정치적 메시지까지 모두를 담을 수 있는 친숙한 매체이다. 20대 작품 속 여성과 30대 작품 속 가족의 이미지의 대조는 거의 빛과 그림자의 대조만큼이나 선명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밝음과 어둠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령 작품 [수호천사]는 두 가지 면을 한몸에 표현한다. 어두컴컴한 설치작품에서의 빛의 역할은 승화를 갈망하지만, 태양처럼 빛나는 해맑은 아이 이미지에 깔린 정서는 아버지로서의 묵직함이다.<br/><br/>​<br/><br/>그러나 전체적으로 20대에서, 30대, 40대가 되어감에 따라 깊은 어둠의 세계는 밝혀진다. 물론 그것은 불행도 행복도 아니고, 삶을 대하는 작가의 인식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예술은 작은 변화도 기록함으로써 기념비적인 것이 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더 강렬하듯이, 삶 또한 죽음의 그림자를 포함한다. 그의 작품에 편재하는 빛/어둠, 가벼움/무거움, 삶/죽음, 성/속, 사물/예술 등의 대조 항은 완전히 중첩되지는 않지만 일련의 계열을 이루면서, 형이상학적인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은 종교적이다. 여기서의 종교는 제도로서의 종교가 아니다. 굳이 종교라 한다면, 특정 신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우주적 종교(cosmic religion)’(엘리아데)이다. 만신전이 떠오르는 전시장에서의 ‘종교’는 현실의 종교를 풍자한다. 몰입을 통한 열락과 희생이 있는 삶에서 가장 큰 종교는 예술일 것이다. 이때 종교는 보다 넓은 지평, 즉 인문학적인 것이 된다.<br/><br/>​<br/><br/>그것은 종교학자 엘리아데가 [종교의 의미-물음과 답변]에서 말하듯이, 의식의 역사의 한 단계가 아니라, 의식 구조의 한 요소를 말한다. 조현익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스러움(그리고 그 대응격인 세속성)이다. 엘리아데는 그 책에서 성(聖)의 경험을 나타낼 때 종교라는 용어보다 더 적절한 용어는 없을까를 묻는다. 그에 의하면 종교라는 용어는 성(聖)의 경험을 지칭함으로써 존재, 의미, 참과 같은 개념에 참여한다. 엘리아데는 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어떤 고유한 실재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하는 확신 없이, 인간 정신이 어떻게 활동할 수 있을지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참되고 의미 있는 세계에 대한 인식은 본래 성(聖)의 발견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엘리아데는 인간 정신은 성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참되고 강력하고 풍부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드러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즉 무질서하게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는 사물들과 그것들의 우연적이고도 무의미한 출몰—과의 차이를 포착해왔다.<br/><br/>​<br/><br/>우주적 시간에 비한다면 짧은 시간을 살다가는 인간에게 보다 긴 시공간에 대한 상상은 필연적이다. 제도로서의 종교가 쇠할 무렵 예술이 그 역할을 떠맡은 것은 자연스럽다. 그래서 근대시대의 예술은 ‘예술종교’라고 지칭되기도 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기존의 예술이 포함했던 종교를 배제하지만, 그것은 예술 자체를 종교의 차원으로 고양 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다. 어쨌든 당면한 현실을 넘어 그 전후와 위아래를 생각해보는 조금이라도 진지한 사람에게 종교적인 것은 친밀하다. 15년간의 작업 일부들에서 보이듯이, 조현익의 관심사는 삶의 여러 국면에 걸쳐있다. 많은 작품들이 모여있는 전시장에서 삶은 보편적이고 총체적으로 다가온다. 전시작품에는 종교적 도상이 동원되는 것은 물론, 제의적 공간이 연출되기도 한다. 무엇인가를 기념한다는 것 그 자체가 종교적 의례의 특징이다. 종교적 의례는 성스러웠던 것이 기원했던 시공간을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성스러움은 세속, 즉 일상과는 구별되는 무엇이었기에,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예술적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br/><br/>​<br/><br/>아예 [믿음의 도리]라는 단어가 분명히 박혀있는 작품을 비롯하여, 조현익의 작품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신념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인간이 중요시해야 할 것으로 흔히 ‘사랑, 믿음, 소망’이 꼽히는데, 청년기의 작가를 사로잡았던 것이 사랑이라면, 지금은 믿음이다. 소망은 이 둘을 지켜나가고 잘 표현하는 것과 관련되지 않을까. 그가 자주 사용하는 촛불은 이러한 소망과 연결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오브제 등을 활용하는 최근 작품에서의 믿음은 다소간 풍자적이다. 풍자란 가려진 진실에 대한 반대급부이다. 비종교적인 사람은 종교에 대해 풍자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소망의 경우에는, 결혼해서 가족을 이룬 생애주기를 반영한다. 특히 자신의 분신인 자식들과 함께 하는 삶에는 절실한 소망이 없을 수 없다. 온통 황금빛으로 둘러싸인 가족 이미지에서는 세속적 욕망이 흘러넘친다. 작가는 굳이 그것을 감추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한 부적 같다. 2011년 어떤 공적인 발표 자리에서 봤던 충격적인 여성의 성기 그림이 여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부적 같았듯이 말이다.<br/><br/>​<br/><br/>빛나는 것에 대한 관심과 매혹에는 주술적인 것이 포함된다. 기복이나 주술이 고상하게 된 것이 종교인 것이다. 아이 밥그릇이 댕댕 울려 퍼지는 설치작품은 전업 작가로서 살아가는 자신을 매 순간 각성시킬 소리로 다가올 것이다. 숟가락과 밥그릇이 부딪히는 이미지와 소리는 일견 가벼우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무겁다. 명과 암이 함께 하는 역설은 그의 초기작품에도 선명하다. 금속성 표면에 대한 관심은 한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의 작품들을 연결 시켜 주는 형식적 고리가 되고 있다. 작가가 금속에서 주목하는 것은 묵직한 물성이기도 하지만, 그 반사면에서 보이는 것은 빛의 은유이다. 지상에 내리쬐는 빛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롭다. 지상의 존재에게 천상으로부터 비롯되는 빛은 승화나 초월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영지주의는 빛에 대한 선호를 정신적으로 설명한다. 천상에서 비롯된 인간은 다시 그곳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정신적 기원이 있기 이전에 우선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성스럽게 여겨졌을 것이다. 조현익의 최근 작품에서 빛의 상징은 보다 물질적이다.<br/><br/>​<br/><br/>사랑이라는 미명아래 남/여의 극단적 대결적 의식이 감지되는 초창기 작업에서 빛에 반응하는 여성 또한 자연(물질)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연속성이 감지되기도 한다. 빛을 반사하는 금속은 미약한 빛 또한 확장성을 가지게 한다. 조현익이 자주 사용하는 광원은 촛불이다. 실제의 초는 아니고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발명한 상품이다. 실제 초가 자연적 물질로 되어있다면 초의 시뮬라크르는 전기가 흐르는 플라스틱 주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법당이나 성당에서 신도가 헌금을 넣으면 불이 켜지는 촛불도 있다고 한다. 그 또한 성과 속이 일체화된 상황을 알려준다. 성/속 일체의 이미지는 성(聖)과 성(性)을 결합시킨 작품들에서 선명하다. 전시장 모퉁이에 연출된 무대는 포르노에 나올 법한 여성의 체위와 불상이 기괴한 기계음을 내면서 주기적으로 만나는 작품이다. 정통적인 교의에서는 배제된 종교적 전통에서, 종교적 법열과 성적 열락은 다르지 않음을 알려주는 작품이나 기록은 적지 않다. 그것은 결국 주체/객체의 구별이 사라지는 상황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을 말한다.<br/><br/>​<br/><br/>두 개의 성은 금기로 나뉘어있지만, 그러한 금기는 위반되곤 한다. 위반은 기괴함과 불온함을 낳았다. 이러한 생각이나 정서는 남성적 성이 승화와 관련된 것이고 여성적 성이 퇴행적으로 간주해온 가부장적 전통과 관련된 것은 아닌가 의심해 본다. 남성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지만 결국 그 욕망이 만족 될 수 없으므로 여성의 성은 부정적이다. 그래서 그녀의 성은 그자체로 죽음과 관련된다. 그것은 여성에 매몰되었을 때의 남성의 죽음이고, 욕망의 좌절이 폭력적으로 실현되었을 때의 여성의 죽음일 것이다. 이단적인 철학자 바타이유는 두 개의 성을 교차시킨 대표적 작가로 알려져 있다. 바타이유의 사고나 조현익의 작품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본다면 비판적인 대목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성적 사유와 욕망을 끝까지 전개했다는 점은 인정돼야 할 것이다. 예술은 그러한 과도함을 통해 현실을 다시 보게 한다. 조현익의 작품에서 종교적 분위기를—비록 그것이 이교의 제단처럼 보인다 할지라도—연출하는 촛불은 여성의 성기의 이미지 또한 포함하는 이질적인 것이다.<br/><br/>​<br/><br/>동시에 얼마 전 한국의 촛불혁명이 그러했듯이 꺼질 수 없는 희망(그러나 꺼지지도 쉬운 희망)을 표현한다. 그것이 사적인 욕망과 관련된 것이든, 공적인 열망과 관련된 것이든 자신을 죽이면서 사는(또는 죽여야 사는) 역설은 공통된다. 조현익이 활용하는 인공 촛불은 안에 자석이 달려있어 무게 중심을 바꾸면서 마치 입김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인공 촛불은 하나 또는 여럿으로 조합되면서 메시지를 공중에 띄운다. 여러 개가 조합된 것은 마치 탑이나 기둥 같은 모습으로 확장되어 제의적 분위기를 북돋운다. 그 촛불들이 내밀한 공간을 밝히는 것이든 사회적 공간을 은유하는 것이든, 일단 하나로 서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하나하나가 모여 다수가 된다. 촛불에 관련된 가장 유명한 에세이 중의 하나를 쓴 철학자는 가스통 바슐라르이다. 그는 [촛불의 미학]에서 촛불의 불꽃은 조용하며 미묘한 생의 한 전형이라고 말한다.<br/><br/>​<br/><br/>바슐라르의 예지에 찬 표현을 직접 들어보자; ‘불꽃은 위쪽을 향해서 흐르는 모래시계다. 부서져 내리는 모래보다 가벼운 불꽃은 마치 시간 자체가 항상 무엇인가 해야 할 것처럼 그 형태를 쌓고 있다.’ 조현익의 ‘metamorphosis’전에서 변모는 시간의 축을 따라 일어나지만, 그것은 동시에 공간적으로 연출된다. 인공조명이기도 한 기계 촛불은 삶과 죽음을 켜짐과 꺼짐으로 구별한다. 지금은 촛불이나 램프를 켜놓고 몽상에 잠기던 바슐라르의 시대는 아니지만, 켜짐/꺼짐에 얽힌 생/사의 구별은 자연을 넘어 기계까지 포함되는 환경에도 적용된다. 산업혁명 시대를 넘어선 시대의 대표적인 기계인 컴퓨터는 이진법을 기초로 한다. 전자시대의 기계들은 on/off, 1/0의 차이에 의해 작동된다. 촛불에 내재된 수직성—‘불꽃은 직립하는 생명의 동적 요소’(바슐라르)이다—은 작동 중인 생명/기계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주어진 시간을 살아갈 뿐인 인간 또한 서서히 타는 촛불이다.<br/><br/>​<br/><br/>자연과 교감했던 낭만주의자들은 자연도 그렇게 보았다. 가령 [촛불의 미학]에 인용된 시인 노발리스는 ‘나무는 꽃 피는 불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바슐라르는 불꽃은 켜기도 쉽고 끄기도 쉽다고 말하면서, 여기서는 삶과 죽음이 아주 나란히 놓여있다고 말한다. 촛불은 무엇보다도 죽음으로써 사는 역설의 구현체이다. 조현익은 삶과 죽음이 한데 얽힌 역설적 진실을 사랑에서 발견한다. 여성에 대한 사랑이든 신에 대한 사랑이든, 아니면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물신적 사랑이든, 그것은 언제나 주어진 경계를 흘러넘치는 것, 그래서 숭고한 것/비천한 것이다. 체액이 줄줄 흐르는 듯한 초기 작업부터 눈이 부시다 못해 아플 정도까지 번쩍거리는 황금빛 표면들이 있는 요즘 작품까지를 관통하는 것은 모두 적절한 선을 넘어선 과도함이다. 경계가 고수되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경계가 허물어진 상극은 화학반응을 일으켜 제3의 실체가 된다. ‘metamorphosis’라는 전시 부제는 연금술 같은 전통을 떠올린다. 연금술은 종교로 친다면 이교(異敎)나 비교(祕敎)에 해당하는 것으로, 동일성보다는 이질성에 관심을 가지는 예술과 더욱 가깝다.<br/><br/>​<br/><br/>작가는 두꺼운 금속판을 작업실 인근에 방치하여 자연스러운 변화를 각인시킨다. 오필리아나 메두사 같은 신화적 이미지를 가진 여인들이 새겨진 철판들은 나사로 조여지고 녹슬며 그 위에 회화적 액션이 더해져서 애증에 얽힌 강렬한 이미지로 거듭난다. 그녀들은 포로처럼 잡혀있으며 작가의 욕망이 투사된 행동의 무기력한 대상이 되고 있다. 정액을 뿌리면 정액을 받고, 피를 뿌리면 피를 받는다/또는 흘린다. 가학 피학적인 여인의 초상들은 아름다움의 정점에서 죽어가고 있으며, ‘사랑하는 대상이 결국은 주체의 은유’(크리스테바)라고 볼 때, 작가 또한 그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연인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주체와 타자의 끈적한 얽힘이 어둑한 공간 속 희미한 빛을 통해 드러난다. 전시장의 조명뿐 아니라 수많은 촛불들이 어둠을 밝히는 광원이 되고 있다. 연금술은 변모의 과학이자 종교이며, 여기에 성적인 은유는 강력하다.<br/><br/>​<br/><br/>귀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것저것 섞는 용기(容器)는 자궁과 비교된다. 모듈처럼 연결해서 거대한 평면으로 조합된 철판들은 이런저런 재료와 기구가 한데 얽히는 장이다. 거기에서는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영원과 순간이 뒤섞인다. 여러 가지 변성이 자연적으로 혹은 인공적으로 일어나곤 하는데, 조현익의 작업 속 철판들은 변성에 대한 은유이면서 실제이다. 연금술은 ‘화학반응으로 표현되는 생명의 철학’(앨리슨 쿠더트)이라고 정의된다. 앨리슨 쿠더트는 [연금술 이야기]에서 변성은 생명의 필연성이며 연금술 용기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은 거대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성이 미시세계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앨리슨 쿠더트에 의하면 연금술사들에게 변성이란 개인을 물리적 세계에 스며들어 있는 통상의 숙명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의 수수께끼를 완전히 깨닫게 되는 초월적인 존재로 이끄는 것을 뜻했다. 조현익이 금속 및 금속성을 다루는 방식은 완전한 존재로의 변모를 꾀하는 연금술을 닮았다.<br/><br/>​<br/><br/>특히 이분법적 세계관, 정확히는 이분법 그 자체가 아니라, 양극의 극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기대치가 그러하다. 상극되는 둘이 만나서 발생하는 사건에 초점이 맞춰진다. 초기 작업에 강력했던 여성의 연금술적 분위기 또한 여성이 단지 금속에 구현되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연금술은 동양적 세계관에서도 친숙하다. 음양 사상이 그것이다. 앨리슨 쿠더트는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 그것은 도’라고 말하는 중국의 문헌을 인용한다. 그에 의하면 음은 무겁고 크고 어둡고 여성적이며 죽어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해, 양은 그 반대의 성질들, 정교하고 가볍고 뜨겁고 남성적이며 강한 성질을 나타낸다. 조현익의 작품에서 여성은 음의 전형이며, 양은 음을 드러낸다. 오랫동안 이러한 음양의 원리에 따라 가족, 사회, 국가는 형성되어 왔다. 그것은 보편적이면서도 가속화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자체로 변모하고 있다.<br/><br/>​<br/><br/>그렇지만 반대되는 성이 만나 하나가 되고, 후세가 만들어지고 그 후세들이 날로 가속화되는 경쟁적 환경 속에서 먹고 살아야 사실은 기본적인 현실로 남아있다. 금속을 흉내 낸 휘황찬란한 배경 속의 천진한 가족 이미지나 기념비적으로 재현된 아이의 이미지에는 완전체가 되기 위한 무수한 시행착오들과 비극을 감수하며 변모를 꾀했던 기적에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있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여인의 이미지가 어두운 판본이라면 그다음 판본은 밝을 뿐이다. 밝음 뒤에 어둠이, 밝은 옆에 어둠이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 자체에 내재 된 잔인한 현실—[연금술 이야기]에는 ‘태아는 어머니 자궁(연금술의 용기이기도 함)에서 성장해 가지만 성장이 끝났을 때에는 자궁을 폭발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페트루스 보누스)는 말이 인용되어 있다—이 있는 것이다. 왜 남성의 작품에서 여성은 피 흘리고 죽어가는가. 특히 사랑하는 대상일수록!<br/><br/>​<br/><br/>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연결을 강조하는 조현익의 작품 속 아이 또한 자신을 정립하기 위해 어머니/여성을 부정해야 한다. 정신분석학은 여성이 부정되고 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이 상징적 우주로서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오랜 세월 동안 남성으로 간주되어왔던)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알에서 깨어나는 초기 작업과 후기 작업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더구나 가족과 함께 밝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작가로 변모시킨 이 또한 한 여성 아닌가. 그 점엔 전시실 초입에 제단의 형식으로 구현되어 있다. 이전 작업이 심각했다면, 요즘 작업은 가벼움을 포함한다. 특히 오브제가 적극적으로 도입되면서 가벼움이 많아졌다. 우리를 둘러싼 상품들은 최대한 가벼워지려고 한다. 조현익의 작품에 의하면 섹스에 관련된 사업이나 종교사업, 아이들의 장난감, 집 모든 것이 그렇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무게 중심은 언제나 있다. 작가는 변모라는 전시 개념을 통해서 십수 년간의 삶과 작업을 요약한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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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Thu, 06 Dec 2018 12:53:2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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