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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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랑갤러리 조회 104회 작성일 26-08-05 11:53
전시명 ㅣ '숨, 이어지다'
작가 ㅣ 강유림
전시 기간 ㅣ 2026. 8. 12.(Wed)- 8. 23.(Sun)
소개 ㅣ인간의 표정을 통해 삶의 흔적을 담아내던 강유림 작가는 시선을 자연으로 확장하며 존재와 시간에 관한 심오한 탐구를 이어간다. 작가에게 '얼굴'이 살아온 시간의 응축이자 서사였다면, '숲'은 시간과 존재가 머무르는 거대한 생명 공간으로 다가온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연의 형상을 단절된 관조의 대상이 아닌, 무수한 시간의 층위가 겹겹이 쌓여 완성된 하나의 유기적 공간으로 재구성한다.
초기 작업에서 한지와 먹의 번짐을 통해 시간의 농담(濃淡)을 담아냈다면, 최근 작업에서는 석채를 매개로 물성과 색채의 축적을 고찰한다. 화면 위로 켜켜이 올라간 색과 마띠에르는 올리고 덜어내는 작위적 행위의 반복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형태를 비워낼수록 화면에는 시간이 남고, 눈에 보이는 형상보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기운이 더욱 선명해진다. 화면을 관통하는 대나무의 수직적 리듬 역시 대상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제자리를 지키며 서로 기대어 서는 존재들의 호흡이자 시간의 축적을 드러내는 시각적 언어이다.
매일의 반복된 붓질을 하나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작가는 자연이 시간을 머금는 방식을 닮아가고자 한다. 먹의 층과 석채의 질감, 화면을 스치는 미세한 흔적들은 존재를 형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구조인 '시간'을 천천히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강유림 작가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정지된 풍경을 넘어 그 안에 스며든 보이지 않는 숨결과 마주하게 한다. 유연하지만 견고하게 쌓아 올린 시간의 층위 앞에서, 관람객은 각자의 시간을 조용히 응시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마주하는 침묵의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랑갤러리 ㅣ종로구 자하문로 38길 45, 1F (환기미술관 맞은편)
관람시간 ㅣ 11 am- 5 pm (월,화 휴관, 무료관람)
문의 ㅣ(02)365-9545, galleryharang@gmail.com, Instagram @galleryharang
후원 ㅣ강원문화재단
작품 문의 ㅣ e-mail, DM, 또는 링크트리에서 신청 부탁 드립니다. linktr.ee/galleryharang

숨-이어지다/ 보이지 않는 시간은 흔들리는 잎 사이를 천천히 지나간다, 180x80cm, 장지에 채색, 2026, 강유림 KANG Yoo Lim

숨-이어지다/ 매일 쌓아 올린 시간은 숲이 되어 다시 나를 바라본다, 180x80cm, 장지에 채색, 2026 강유림 KANG Yoo Lim

숨-이어지다/ 머무는 것은 형상이 아니라 시간이 남긴 결이다, 180x40cm, 장지에 채색, 2026, 강유림 KANG, Yoo Lim
강유림 작가노트
오랫동안 나는 사람의 얼굴을 그려왔다. 얼굴은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며, 말보다 먼저 존재를 드러내는 풍경이었다.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응시하는 일이었고, 그 시선은 자연스럽게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숲을 걷고, 바람을 듣고, 대나무가 흔들리는 소리를 바라보며 깨달았다. 자연 또한 인간처럼 시간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최근의 작업에서 그 질문은 자연으로 옮겨갔다. 숲은 더 이상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시간과 존재가 머무는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나의 작업은 그 시간을 화면 위에 쌓아가는 과정이다.
초기의 작업에서는 한지 위에 먹을 스며들게 하며 시간의 층을 만들어 갔다. 먹은 번지고 마르기를 반복하며 깊이를 만들었고, 한지의 결은 시간을 품는 그릇이 되었다. 반복되는 붓질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화면에 새기는 행위였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석채를 사용해 화면의 마띠에르를 만들고, 그 위에 다시 색을 올리고 덜어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켜켜이 쌓인 색은 단순한 색채의 축적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간 흔적이며, 물질과 색, 질감이 만나 이루는 화면은 또 다른 시간의 층위를 품는다. 그렇게 화면은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시간이 응축된 공간으로 존재하게 된다.
대나무는 끊임없이 자라지만 제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수많은 줄기들이 서로를 기대며 숲을 이루고, 빛과 바람은 그 사이를 스쳐 지나간다. 화면 속 반복되는 수직의 리듬은 형태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과 존재의 호흡을 드러내기 위한 언어이다.
매일 반복되는 작업은 나에게 수행과도 같다. 붓을 들고 화면을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자연의 시간을 닮아가고, 그 시간의 층 위에서 비로소 작은 위로를 얻는다. 형태를 덜어낼수록 화면에는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남고, 보이는 형상보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더욱 선명해진다.
대나무는 시간의 형상이고, 먹은 시간의 층이며, 마띠에르 위에 켜켜이 쌓인 색은 시간의 흔적이다. 화면을 스쳐 지나가는 작은 흔적들은 시간을 스치는 숨결처럼 머물다 사라진다.
나는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존재를 이루는 방식을 그리고자 한다. 시간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존재를 이루는 가장 깊은 구조이며, 나의 작업은 그 보이지 않는 시간을 화면 위에 천천히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그림 앞에 선 누군가가 잠시 자신의 시간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조용히 존재를 마주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이 작업은 비로소 완성된다.
“나는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존재를 이루는 방식을 그리고자 한다.”
* 모든 작품 이미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사진 제공 : 하랑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