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포인트: 서울/방콕

웨이포인트: 서울/방콕

페이지 정보

작성자 빈츠 조회 38회 작성일 26-06-29 20:56
작가 류민수, 정우빈
기간 2026-06-27 - 2026-07-11
초대일시 2026-06-27 / 17시 오프닝 리셉션
관람시간 12:00-19:00
휴관일 없음
장소 오시선(서울 성동구 성덕정길 112)
주소 04776 서울 성동구 성덕정길 112
좋아요 0

《웨이포인트: 서울/방콕》 전시 서문

 

산다는 건, 아주 구체적이고 아주 보편적인 일

살다 보니


《웨이포인트: 서울/방콕》(이하《웨이포인트》)은 류민수와 정우빈의 2인전이다. 이 둘은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이자, 전시를 만들며 미술 현장에서 각자의 일을 이어가고 있는 동료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의 생활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류민수는 현재 서울에 머물며 자신의 생활 기반을 이어가고 있고, 정우빈은 태국과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다. 삶의 일부를 공유해왔던 두 사람의 일상은 점차 변화했고, 이 변화를 들여다보는 것이 이번 전시의 시작이다. 전시 제목인 ‘웨이포인트’ (Waypoint)도 이 맥락을 함축한다. 웨이포인트는 경유지라는 뜻으로 류민수와 정우빈의 작업이 전시장이라는 특정한 교차점에서 만나 잠시 머물고,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가리킨다. 부제 ‘서울’과 ‘방콕’은 두 작가가 활동하거나 생활의 기반을 두고 있는 실제 장소이다. 이번 전시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서 출발하지만, 그 시선은 곧 자신 바깥으로 번져 나간다. 한 사람을 이루는 것은 하나의 사건으로 응축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오며 겪은 관계와 압박, 실패와 유예, 머물고 싶음과 떠나고 싶음 사이의 긴장, 그리고 일반적인 삶의 경로로는 포섭되지 않는 특수한 경험의 축적이다. 이 전시는 이렇듯 쉽게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자신과 그 삶을 되돌아본다. 자신의 주변인을 불러 모으고, 나를 둘러싼 기대와 요구가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되짚으며, 두 작가는 작업을 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류민수: 함께 있음이 실패할 자리 

류민수는 가상의 캠핑 현장인 〈V.F〉를 만든다. 이는 작년 가을 옥상에서 동료 작가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며 경험했던,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들과 환경을 다시 불러오려는 시도에서 출발한다. 〈V.F〉에선 모닥불이 중심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온기를 제공하지 않는 불이며, 주변의 인물들 역시 실제 몸을 갖지 못한 채 그 주위를 둘러싼다. 류민수의 가상은 3D 프린팅, 홈캠, 전화, 전선과 같은 기술적 매개를 통해 조각적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의 작업은 조각적 상황을 완성하기 위한 조각들을 모으는 행위에 가깝다. 〈V.F〉는 가족, 친구, 지인의 몸을 스캔한 뒤, 그 표면을 3D 프린팅하여 반투명한 외피로 옮긴다. 이들은 실제로 전시장에 모이지 않지만, 형상은 출력된 외피로, 시선은 홈캠으로, 목소리는 통화 장치를 거쳐 연결된다. 기술은 함께 있을 수 있는 환경을 일부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그 한계도 확인시킨다. 경험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자신의 몸을 통해 성립하는 것이라면 그의 작업 방식은 바로 그 몸이 삭제된 상태를 드러낸다. 
      류민수는 ‘나’에서 출발해, 나와 조금은 가깝지만, 또 다른 나, 또는 조금 더 먼 나, 그리고 나의 주변으로 관계의 반경을 넓혀간다. 그런 점에서 〈V.F〉는 류민수가 지속적으로 다루어온 관계의 반경과 모임의 불가능성을 다른 방식으로 확장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계의 반경은 〈V.F〉에서 작가-작품, 작품-관객 그리고 주변인이라는 관계 항을 놓고 볼 수 있다. 〈V.F〉는 누구도 안정적인 위치에 머물지 못하는 조각적 상황을 보여준다. 작가는 작품 제작자이며, 〈V.F〉가 작동하도록 연결 상태를 확인하고 유지하는 개입자로 등장한다. 그는 두상에 설치된 홈캠과 전선, 장치의 상태를 점검하며 이 가상의 캠핑 현장을 유지한다. 이처럼 작가는 조각적 상황 안팎의 경계에 놓인 존재로 남는다. 관객 역시 〈V.F〉에 온전히 초대된 상대는 아니다. 통화 중인 작가는 관객을 향하지 않고, 홈캠의 응시 대상이 되기도 한다. 〈V.F〉에서 관계는 연결되면서도 어긋나고, 모두를 초대하는 듯 보이지만 끝내 완전히 포함되지 않는다. 류민수는 주변인을 호출하지만, 이들은 보편적 인간의 사례가 아니라 그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구체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바로 이 구체적인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는 장면에서 오늘날 관계가 얼마나 쉽게 분리되며 어긋나는지가 드러난다. 보편성은 추상적인 공통점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예외와 실패를 통해 드러난다.    류민수의 가상 캠핑장은 공동체의 성공적인 재현이 아니라, 함께 있음이 실패하는 방식의 재현에 가깝다. 여기서 실패는 실패할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것, 혹은 끝내 모르는 척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실패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누구와 함께 있고, 혹은 누구를 잃었으며,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한편으로 실패를 반복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 질문에 답을 낼 수 있을까? 


정우빈: 증명되지 않은 삶을 꺼내는 일 


 정우빈은 이번 전시에서 태국에서 생활하며 그려온 일상의 장면들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이는 기존 작업과는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일로, 작가는 전시를 (기획)함에 있어 스스로에게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용기라는 말은 언제나 동일한 무게로 주어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용기는 증명되지 않은 상태를 감수하는 용기에 가깝다. 따라서 〈태국〉 시리즈는 삶과 작업이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그가 이 작업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유는 단지 이전 작업과 결이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회가 승인하는 경로와 무엇이 정상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에서 비켜난 삶의 시간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정우빈은 2023년 처음 태국으로 떠난 뒤 그곳에 생활의 기반을 만들었고, 이후 한국과 태국을 오가며 살아왔다. 이때 이동과 정착의 과정은 한국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삶의 방식과 태국에서 새롭게 만들어가는 생활 사이의 차이를 통과하는 일이었다. 그 사이에서 작가는 사회가 어떤 삶을 납득 가능한 것으로 승인하는지, 그리고 그 바깥의 삶을 왜 쉽게 실패로 돌려세우는지를 되묻게 된다.     이때 삶의 기준은 가족이 기대하는 삶, 사회가 요구하는 안정, 작가로서 응당 쌓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경력, 그리고 미술 현장에서 반복되는 조언과 충고의 형태로 구체화한다.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증명해야 하는지, 조언에 어떻게 자신을 맞출지 먼저 계산하게 된다. 증명의 굴레로 들어가는 순간, 실패 역시 개인의 몫으로 귀속된다. 특히 작가의 삶은 이 구조와 쉽게 겹친다. 작가는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이 방황이나 실패가 아니라 다른 하나의 방향임을 반복해서 설득해야 한다. 정우빈의 태국 시리즈는 그의 삶이 성공과 실패로 쉽게 정리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바로 그 중간 상태가 그를 끊임없는 증명의 자리로 불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태국〉 시리즈는 정우빈에게 그 요구와 증명이 자신 안에서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조언과 충고, 비교와 기대 속에서 작가를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 넣었다면, 태국에서의 시간은 그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태국〉 시리즈는 자신이 선택했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마음, 떠났지만 완전히 벗어나지 못함을 품고 있다. 태국의 풍경과 사물, 사람을 그린 이 그림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이루는 존재들이며, 하나의 일관된 자아로 정리되지 않는 복수의 마음들이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그림들은 그동안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삶의 장면들을 전면으로 끌어낸다. 그것은 스스로를 해명하거나 증명하기보다, 전시라는 형식을 빌려 말하지 못했던 삶을 꺼내 보이는 하나의 시도에 가깝다. 전시 기간 동안 작가는 방문자에게 1:1 대화를 요청한다. 이 대화는 자신이 작업을 해오는 동안 스스로도 몰랐던 언어와 경로를 찾고 싶다고 했던 그의 말과 이어진다. 이는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자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어떤 부탁으로 읽히기도 한다.  


 삶과 여행 사이의 웨이포인트


두 작가의 작업에서는 여행과 삶이라는 단어가 서로 교차한다. 류민수는 찰나의 따뜻한 시간을 〈V.F〉로 옮기며,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던 순간의 온기를 다시 불러오고자 한다. 그러나 이는 여행(캠핑)의 설렘을 재현한다기보다, 이미 식어버린 불씨를 다시 살려보려는 안간힘에 가깝다. 이때 삶과 여행이 갖는 이질적인 시간은 서로 겹친다. 《웨이포인트》를 보러 온 사람 중 대부분에게 태국은 여행지일 것이다. 반면 정우빈에게 태국은 도망치듯 떠난 끝에 도착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가족이 있는 집이다. 여행과 삶은 지금 당장 내 앞에 놓인 것과 더 멀리 놓인 것 사이의 거리에서 갈라진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거나, 거절당할지 두려워하거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까 노심초사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여행은 잠시 다른 곳에 놓일 수 있으리라는 해방감의 약속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행이 삶이 되거나, 삶이 여행이 되거나, 결국 그 둘이 이도 저도 아니게 희미해져 버릴 때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되는가. 《웨이포인트》는 바로 그런 희미함 속에서의 돌아봄을 말한다. 류민수와 정우빈이 만든 사적이고 특수한 장면들이 실패하거나 어긋나는 순간, 오늘날 관계와 삶을 지탱하는 보편성이 함께 드러난다. 한 사람은 함께 있음이 실패할 자리를 계속 점검하고, 다른 한 사람은 외부에 의해 정해진 삶의 기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들의 작업은 삶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이 계속해서 흔들리고 어긋나는 과정 안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전시는 하나의 나로 수렴되지 않는 삶, 정해진 경로에서 자꾸 벗어나는 인생, 그리고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다른 시간을 기대하게 되는 마음을 보여준다. 《웨이포인트》는 오늘을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쉽게 설명될 수 없는지를 드러낸다. 산다는 건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존재하는 여러 갈래의 마음이 남아 있는 곳일지도 모를 일이다.


글. 박주희



b622039f92a8381aec44e7381b51f4e3_1782734336_393.jpg
b622039f92a8381aec44e7381b51f4e3_1782734317_9759.jpg
b622039f92a8381aec44e7381b51f4e3_1782734279_1209.jpg


 

전시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