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타 미노: 조용한 생활과 사소한 점유

아라타 미노: 조용한 생활과 사소한 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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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856 조회 32회 작성일 26-03-14 14:10
작가 아라타 미노
기간 2026-03-05 - 2026-03-25
휴관일 일요일 - 화요일
장소 인가희갤러리
주소 04344 서울 용산구 소월로44길 29 102호 인가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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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생활과 사소한 점유 — 사이의 상태를 바라보는 시선


아라타 미노의 개인전 《조용한 생활과 사소한 점유》(Still Life with Minor Occupations)는 도자기 인형 설치 작업 〈사소한 점유〉,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풍경을 담은 사진 시리즈 〈해안에서의 시선〉(Perspective on the Shore)과 〈온실로부터 바다에〉, 그리고 퍼포먼스 영상 〈숨을 이어가다〉(One Breath Followed by Another)를 함께 선보인다. 다양한 매체로 구성된 이 작업들은 하나의 전시 공간 안에서 교차하며, 물질과 신체, 그리고 시선의 층위를 통해 우리가 서 있는 세계의 구조를 드러낸다.


전시의 영문 제목은 ‘정물’을 뜻하는 회화 장르인 ’정물(Still Life)’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여기서의 ‘정물’은 단순히 멈춘 사물의 묘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복잡한 세계를 내포한 채 지속되는 삶의 형식에 가깝다. 거대한 역사와 정치적 사건 속에서도 일상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역사적 구조 속에서 삶은 미세하게 흔들리며 계속 이어진다. 아라타 미노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조용하지만 결코 고요하지 않은 상태’를 탐구한다. 겉으로는 평온하게 보이는 일상의 장면들 속에는 식민주의의 역사, 전후 국제 질서, 그리고 군사 동맹의 구조와 같은 거대한 역사적 힘이 미묘한 형태로 스며들어 있다. 작가는 이러한 구조를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로 드러내기보다, 사물과 풍경, 그리고 신체의 경험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관계의 형태로 제시한다.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설치 작업 〈사소한 점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은 전후 점령기에 제작된 ‘미 점령기 일본제작(Made in Occupied Japan)’ 표기의 도자 인형을 주요 오브제로 삼는다. 이 표기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연합군의 점령 하에 있었던 시기(1945–1952)에 생산된 수출 공예품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전후 질서와 권력 관계의 흔적을 물질적 형태로 남긴다. 작가는 골동품 시장에서 수집한 이 인형들을 전시 공간 안에 배치하며, 점령기의 역사적 흔적을 현재의 시간 속으로 불러온다. 약 14~25cm 크기의 인형들은 전시 공간 속에서 하나의 작은 장면을 형성한다. 인형들은 천으로 감싸여 있으며, 그 주변에는 녹색 플라스틱 장난감 병사인 ‘그린 아미맨(green army men)’이 배치되어 있다. 어린이 장난감으로 널리 알려진 이 작은 병사들은 인형들을 둘러싸듯 포위한 형태를 이루며 배치된다. 이 장면은 전쟁과 점령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그것이 일상의 사물 속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암시한다. 


사진 작업 〈해안에서의 시선〉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또 다른 방식으로 확장한다. 이 작업들은 비무장지대(DMZ), 진주만(Pearl Harbor), 그리고 부산-후쿠오카 해협과 같은 장소들을 병치하며,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역사적 기억의 지형을 드러낸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풍경들은 전시 공간 안에서 나란히 제시되며, 국가 간 관계와 역사적 기억의 층위를 드러낸다.


특히 이러한 풍경들은 단순한 풍경 사진이 아니라, 특정한 ‘위치(position)’에서 바라본 시선의 기록이기도 하다. 버스 창문, 페리의 갑판, 군함의 창문과 같은 장치들은 이 풍경들이 이동하는 신체의 경험 속에서 촬영된 이미지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풍경 그 자체보다 어디에서, 어떤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퍼포먼스 영상 〈숨을 이어가다〉에서 신체의 차원으로 이어진다. 이 작업은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숨(Breath)」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리듬인 ‘호흡’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한 번의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삶은 미세하게 흔들리면서도 계속 이어진다. 작가는 이러한 호흡의 리듬을 통해 인간 존재가 공간 속에 잠시 머무르는 일시적 존재(temporary existence)임을 드러낸다.


아라타 미노의 작업에서 물질, 풍경, 그리고 신체는 서로 분리된 요소가 아니다. 도자기 인형이라는 사물, 역사적 풍경을 기록한 사진, 그리고 숨을 쉬는 신체는 하나의 전시 공간 안에서 서로를 반사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의 재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가 교차하는 ‘사이의 상태(in-betweenness)’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사이의 상태를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일본 작가로서 작가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사이의 역사적 관계를 외부에서 관찰하는 위치에 서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그 역사적 구조 속에 이미 위치한 존재로서, 자신의 신체와 시선을 통해 이러한 관계를 바라본다. 이러한 태도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선언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역사와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머무르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세계의 복잡성을 단순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서울에서 이 전시가 열리는 것 또한 그 맥락의 일부가 된다. 역사적 긴장과 교차가 반복되어 온 동아시아의 관계 속에서, 작가는 이 장소에 서서 질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조용한 생활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관계와 점유 속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며 지속되는 삶의 형식이다. 아라타 미노의 작업은 그 작은 진동을 응시하며,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의 구조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글. 인가희) 

여기서 ‘점유(occupation)’라는 개념은 단순한 군사적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공간과 존재, 기억과 시선이 서로를 점유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전후 점령기의 흔적을 지닌 작은 인형은 전시 공간 안에서 조용히 서 있지만, 그 내부에는 복잡한 역사적 시간과 권력의 구조가 내포되어 있다. 작가는 이러한 장면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어떻게 사소한 사물의 형태로 일상 속에 잔존하는지를 보여준다. 

전시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