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재중, 부재: 중》

《부: 재중, 부재: 중》

페이지 정보

작성자 art 조회 2,900회 작성일 26-04-17 12:26
작가 김학언
기간 2026-04-21 - 2026-04-26
관람시간 수요일 13:00-21:00 목-일요일 13:00–19:00
휴관일 (월, 화요일 휴관) *수요일은 오후 9시까지 야간타임 운영
장소 옥상팩토리
주소 05855 서울 송파구 법원로4길 5 송파법조타운푸르지오시티 지하1층 B113호
좋아요 0

전시 제목 : 《부: 재중, 부재: 중》

전시 기간 : 2026년 4월 22일 (수) – 4월 26일 (일)

장 르 :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전시 장소 : 옥상팩토리 (서울 송파구 법원로4길 5 송파법조타운푸르지오시티 지하1층

B113호)

관람 안내 : 수요일 13:00-21:00 목-일요일 13:00–19:00

(월, 화요일 휴관)

*수요일은 오후 9시까지 야간타임 운영

*마감 1시간 전 입장 마감

입 장 료 : 무료



전시 서문

찰나의 순간에 무수한 타자들과 관계의 그물망을 엮어낸다. 관계 이면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공백이 자리하게 된다. 부재는 관계라는 구조 자체에 기입된 근원적인 조건이자, 의식하게 되는 존재에 가깝다. 사랑하는 이가 물리적으로 곁에 없을 때 감각되는 낯설게 느껴지는 스스로의 기시감, 혹은 나 자신과 맺는 관계에서조차 발생하는 여백은 우리가 타인과 온전히 포개어질 수 없다는 고립감을 동반한다. 마치 자석의 N극과 N극이 서로를 맹렬히 밀어내며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척력(斥力) 같이, 우리의 관계망은 다가가려 할수록 미끄러지는 궤도 위에 놓여 있다.


88fe456fb09a761ea8357a84dad6c64c_1776396300_4437.JPG
인지적 대화시점,2026,단채널 비디오,컬러,사운드,7분30초


세실 피보의 소설 『에스테르의 편지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편지로 마음을 전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부재의 감각을 선명하게 앓고 있는 자들이다.1) 에스테르가 진행하는편지 쓰기 아틀리에에 모인 이들은 물리적,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에게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 마음의 응어리를 한 줄 한 자 써내려간다. 이들에게 ‘편지’라는 우회적이고 지연된 매체는 비로소 관계의 균열을 응시하게 한다. 이처럼 누군가와 눈앞에서 대면하고 있다는 물리적 사실이 곧장 심리적 결합으로 직결되지 않음을, 오히려 즉각적인 상호작용 속에서는 감각하지 못했던 진실이 시간차를 둔 활자의 궤적속에서만 발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 재중, 부재: 중≫은 이러한 층위의감각을 자전적인 태도로, 나와 타인, 혹은 사회와 맺어온 모든 연결 고리 안에서 살펴본다.


88fe456fb09a761ea8357a84dad6c64c_1776396466_7525.JPG
Whitening-surface, 2026,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40초.



김학언은 운둔과 고립에 대한 고민을 이어 좁혀지지 않는 관계의 간극과 그로 인해발생하는 부재를 퍼포먼스와 매체 설치를 통해 집요하게 추적한다. 작품들은 관계 속의 부재와 ‘부재함’의 존재를 신체적 행위로 치환하여 인식하게 한다. 〈인지적 대화시점〉에서 두 인물이 무표정하게 소주를 주고받는 반복적 행위는 오랜 친구(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일상적인 대화를 은유하는 동시에, 표면적인 소통 이면에 존재하는인지적 단절을 서늘하게 보여준다. 테이블 위로 흐르는 술과 허공에 교차하는 눈빛은상호작용이 있음에도 단절되는 두 퍼포머의 무용한 몸짓을 담는다. 가장 내밀하게 타인과 밀착하는 행위인 입맞춤에도 부재의 ‘틈’을 보여준다. 〈ㅋㅣㅅ-〉에서 퍼포머는 혀와 혀가 닿을 듯 교차하는 행위가 반복된다. 혀와 혀가 움직이는 근육 사이 미세한 진동과 틈이 음파처럼 진동한다. 진동하는 미세한 기류가 그 틈 사이를 스쳐가듯 지나가며 몰입한다.

1) 세실 피보, 백신희 역,『에스테르의 편지들』, 뮤진트리, 2026. 


88fe456fb09a761ea8357a84dad6c64c_1776396369_1115.JPG
ㅋㅣㅅㅡ,2026,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5분 35초.


외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관계는 더욱 큰 부재와 공백으로 또는 수행적인 몸짓으로가시화된다. 〈Whitening - surface〉에서 퍼포머는 자신의 신체를 공간의 일부로 하얀안료로 지워나간다. 〈Shaving: 세 가지 세인물〉에서 퍼포머(자신)는 이발기와 눈썹칼로털을 제모하는 행위로 인과 관계의 시간성을 보여준다. 밀어내고 부딪히는 파편화된신체의 공백들은 결국 타인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이지 않을까. 이러한 맥락 속에서 전시장 중앙에 놓인 검정색 설치물은 관람자의 가장 깊은 틈을 공략한다. 압도적인물질성으로 전시를 점유하는 육면체 형태의 검은 천막은 그 내부를 완전히 은폐한 채공간을 불길하게 점유한다. 관람자는 천막 안을 투과해 볼 수 없으며, 미세한 들썩임은마치 누군가 그곳에 도사리고 있는 듯한 생생한 ‘인기척’을 발생시킨다. 관람자가 작품을 관람하는 중에도, 등 뒤에서 끊임없이 어떤 그 인기척에 강박적으로 뒤를 돌아보게될 것이다.


이렇듯 부재는 순간의 결여가 아니라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자신의 ‘있음(재중)’을 증명한다.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틈에 대한 실체를 묻고 감각함으로써, 그 불가능성을 인정한 채로 더 관계를 구축하려는 치열한 의지의 표명이다. 부재의 덩어리를 곁에 둔채 계속해서 서로의 궤도를 돈다.


글: 윤지희



전시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