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스케이프: 읽기. 쓰기. 기억하기 / 마산 로봇랜드 유치 기념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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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rt 댓글 0건 조회 7,536회 작성일 09-02-12 12:10
전시기간 ~
전시장소명

멀티스케이프: 읽기. 쓰기. 기억하기

마산 로봇랜드 유치 기념展

2009_0212 ▶ 2009_0414 /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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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가브리엘 로페즈_W3_람다 프린트_120×152cm_2007





초대일시_2009_0212_목요일_06:30pm

MultiScape: Reading, Writing, Memorizing

책임기획
최예희_신혜경

참여작가
Jean-Gabriel Lopez_Wu Shang-Lin_김세진_김종구_김지수_김희선_난다_박준범_박형근
신미혜_유성일_이민호_이상우_이소영_주도양_최예희_최중원_하차연_황명주

주최_마산시

관람료
일반인_5,000원 / 청소년_3,000원 / 아동_무료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3·15 아트센터_3·15 ART CENTER
경남 마산시 양덕동 532-3번지 제1~3전시실
Tel. +82.55.220.6670
www.315art.net






사진과 비디오아트에서 피어난 새로운 풍경전 : MultiScape ● 현대미술과 기계 이미지의 조우 ● 1960년대부터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은 사진과 비디오아트를 이용한 다른 형식의 미술 형식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예술의 아우라를 온전히 부여받지 못한 사진과 비디오아트는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에 걸쳐 퍼포먼스, 바디아트, 대지미술의 ‘순간성’을 기록하고 ‘라이브’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해서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전시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새로운 미학을 탐구했던 광범위한 예술가들에게 미디어 아트는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어필했고 이들은 다른 장르와 미디어 아트를 적극적으로 결합시키면서 미디어 아트의 창조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특히 다양한 양식과 매체로 자유롭게 작업 활동을 펼쳤던 새로운 부류의 미술가들은 조각, 설치미술, 퍼포먼스에 사진과 비디오아트를 자연스럽게 접목하면서 미디어 아트의 위상을 공고히 하였다. 미디어아트에 열광하기 시작하는 1980년대에 와서 사진과 비디오아트는 기계적 장치로서의 콤플렉스를 완전히 뛰어넘어서 ‘라이브’ 피드백을 빠른 시간 안에 제공할 수 있는 테크롤로지 아트의 주인공으로, 새로운 미술 형식의 총아로 현대미술의 주류에서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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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_풍경_람다 프린트_117×237cm_2007


Mutlti와 Scape가 만나는 자리 ● 이번 전시의 주요테마는 풍경이다. 그래서 전시 타이틀도 ‘MultiScape'로 정했으며 어원이 말해주듯이 다양한〈Multi〉+풍경〈Scape〉전이다. 여기서 〈Multi〉는 다양성의 의미와 함께 미디어아트의 무제한 생산가능하다는 특성을 말한다. 이중적인 의미로서의 〈Multi〉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무제한 생산 가능한 〈Multi〉 개념을 기본 속성으로 지니고 있는 미디어 아트는 발터 벤야민이 말한 유일무이한 예술의 아우라을 취득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나 1980년대 이후, 새롭고 급진적인 미술 형식을 갈구했던 예술가들의 욕구는 미디어아트에 예술적 아우라를 거침없이 제공했다. ●사실 테크롤로지 아트와 미술사의 적자인 풍경화와의 만남은 흥미로운 일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전통적인 풍경 화가들의 족적은 16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17세기의 네덜란드의사실적 풍경화는 풍경화의 독립적인 장르를 획득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세기에 들어서 영국의 터너, 컨스터블과 프랑스의 루소, 밀레 등 바르비종(Barbizon)파 화가들이 좀 더 근대적인 사실 풍경을 만들어냈다면. 인상파의 풍경화는 순간성을 강조한 사진적인 풍경화를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풍경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실적 풍경화와는 사뭇 다른 작가의 시각과 감수성만이 돌출된 풍경화로 발전하면서 그 다양성은 심화되었다. 사실 현대미술에서의 풍경화는 그 어원의 의미군을 통째로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풍경화’가 많이 존재한다. 고전적의미의 ‘풍경’이 없는 풍경화에서부터 ‘풍경’은 있으나 풍경화임을 부정하는 다양한 개념의 풍경화를 이번 전시를 통해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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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범_The Occupation 2_단채널 HDV_00:04:30_2008


창작하는 기관으로서 읽고. 쓰고. 기억하기 ● 이번 전시의 소주제는 〈읽기. 쓰기. 기억하기〉, 〈쓰기. 읽기. 기억하기〉, 〈기억하기. 읽기. 쓰기〉로 구성되어있다. 소주제의 의미는 창작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세상을 읽고, 쓰고, 기억하는 것의 연결고리를 표현한 것이다. 이 개념은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의 대표적인 작가인 주제페 페노네(Guiseppe Penone)의 1960년대 말의 작품 〈Writes/Reads/Remembers〉의 명제에서 영감을 얻었다. 어린나무에 숫자모양의 철제 쐐기를 박는 행위가 나무의 성장과 함께 변화화고 각인되는 과정은 창작활동의 순환이치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읽기. 쓰기. 기억하기〉공간은 주로 세상의 풍경을 읽어내는 작가 군으로, 〈쓰기. 읽기. 기억하기〉공간은 풍경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가 군으로, 〈기억하기. 읽기. 쓰기〉는 기억 속에 각인된 파편을 표현하고 재조합하는 작가 군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소주제별로 작가를 분류한 것은 하나의 단절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의 카테고리 중 조금 더 부각되는 점을 주목해서 분류했음을 강조하고 싶다. 창작하는 기관 안에서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작가들의 〈읽기, 쓰기, 기억하기〉의 반복되는 과정은 모든 작가의 창작 활동속에 고루 연루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속성은 보다 거시적인 창작 활동의 큰 순환 고리로 인식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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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근_Untitled #2 Green Pond_C 프린트_100×125cm_2004


우선 〈읽기. 쓰기. 기억하기〉공간에는 김세진(사진), 김지수 (비디오, 사진), 박준범 (비디오), 박형근 (사진), 유성일 (사진), 이민호(사진), 이상우(사진, 설치), 최중원 (사진)의 작품이 전시된다. 김세진의 작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익명성의 초상사진 밑에 그 주인공의 정체성과 전혀 관계없는 이름을 주기 때문이다. 변태성욕자, 정신병자, 전과자, 게이 같은 타이틀이 사회적 선입견을 갖고 일상의 인물을 장식하고 있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병치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김지수는 디지털 사진이 가진 테크놀로지의 장점과 개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용하고 있는 작가이다. 인물과 사물의 사진 한쪽으로부터 경계선을 따라 이미지가 구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의 색소가 바코드처럼 화면을 점령해가는 형식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물이나 사물이 색소에 의해서 부재되어가는 과정은 실상의 추상적인 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존재와 부재, 구상과 추상이 공존하는 특별한 이미지이다. 박준범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소년이다. 세상을 모형처럼 만들어가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대적해가는 만화속의 주인공이다. 경찰차를 지탱하는 젊은 청년들의 미니어처는 경찰차를 지탱하려는 것인지 전복하려는 것인지 그 시도가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실상과 모형의 경계선에서 거침없는 발상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가이다. 박형근의 풍경은 강하다. 그리고 사색적이다. 몽환적인 그림 속을 걷는 듯 아름답지만 두려운 이미지이다. 작가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감성적 풍경을 따라가노라면 박형근이 찾는 복잡한 미로속의 세상을 살짝 엿볼 수 있다. 유성일의 이미지는 섬뜻하다. 우선 유성일의 작업은 벌레의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벌레 사냥꾼이다. 사진이나 벽면에 유인액을 바르고 야간에 빛을 비추면 주변의 날벌레들이 모여들어 접착되면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빛을 덫으로 이용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유성일의 작품은 생명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민호는 이 시대의 풍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작가이다. 도시 속에 조성된 인공적인 풍경을 ‘휴대용 풍경화’로 만들면서 이미 재단이 되어있는 풍경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점점 개인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맞추어 첨단화 되어가는 휴대용 기기들처럼 ‘휴대용 풍경’에 자위하는 시대를 예견해 보는 작가의 위트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이상우는 마산을 여행하면서 촬영한 마산의 이미지에 주역 64 괘를 첨가한다. 이 작품은 생명· 행복· 평화가 현재의 마산에 존재하기를 갈망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또 관객들은 64 괘가 주는 회화적 형상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여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무시무종의 시간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최중원의 작업은 일상적이고 생생한 삶의 풍경이다. 보다 본질적인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서 작가는 그 곳에 거주한다. 그 풍경 속에 한 인물이 되어 먹고 마시고 잘 뿐 아니라 그곳에 있기 위해서 생활의 터전 또한 마련하고 경제활동도 한다. 그곳에 머무르기 위한 온갖 노력의 결과물로 나온 스쳐가는 풍경은 유년의 향수뿐만 아니라 작가의 실존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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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_Portable Landscape II n.11_디지털 프린트_106×15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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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_틈새빛살-얼굴_디지털 프린트_2006


두 번째로 「쓰기. 기억하기. 읽기」공간에는 난다 (사진), 장 가브리엘 로페즈 (사진), 주도양 (사진)의 작품이 전시된다. 난다는 스스로 증식하는 작가이다. ‘매트릭스’의 스미스처럼 복제된 인물을 한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배치하면서 타인과 구분되지 못하는 획일성을 강조하고 있다. 획일화된 현대인의 초상을 조롱하는 듯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주인공인 작가의 얼굴이 장난 끼로 가득하다. 장 가브리엘 로페즈의 「더블유, W」에 나오는 인물은 동일하게 보이나 두 인물은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600억 개의 세포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된 ‘사진적 찰나’의 인물의 원형은 하나일 뿐이다. 이 작품의 인물은 단지 비슷할 뿐 다른 상황에서 만든 또 다른 인물임을 표현하고 있다. 주도양의 사진은 동화속의 마법 구슬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주문한 풍경이 마법의 힘으로 구슬 속에 맺힌 것처럼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이 마법은 바로 기계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한 장소에서 카메라를 회전시키면서 25~30컷 정도의 사진을 찍은 후 편집프로그램을 통해 한 화면으로 합성한다.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기계이미지이지만 그 속에는 동화속의 마법이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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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_키리코 광장 chirico's square_C 프린트_220×210cm(3장 1set)_2008


세 번째는 〈기억하기. 읽기. 쓰기〉의 공간으로 김세진(비디오), 김종구(비디오, 사진), 김희선(비디오설치), 신미혜 (사진), 우상린(타이완: 비디오), 이소영(사진), 장 가브리엘 로페즈(프랑스: 비디오, 사진오브제), 최예희 (비디오), 하차연 (프랑스: 비디오), 황명주(비디오)의 작품이 전시된다. 김세진의 비디오 작품, 「나잇 워치」는 타이페이 체류 중에 제작된 비디오작업으로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외 현상을 담아낸 기록물이다.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 거리의 장님 악사, 서글픈 네온의 밤 풍경은 현대인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김종구의 작업은 거대한 쇳덩어리를 깎아내는 노동의 결과물이다. 힘든 노동의 과정이 기계매체와 조우하여 동양화의 ‘선’을 연상시키는 예민하고 감각적인 작품으로 생산된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여러 작업 단계가 이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육체와 정신, 물질과 비 물질이 잘 어우러져 명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김희선의 「꿈꾸는 이의 소리」는 주변 사람들이 들려준 꿈 이야기를 영상으로 재구성해낸 인터액티브한 비디오작업이다. 어떤 사건을 퍼즐 게임을 풀 듯 관객들로 하여금 퍼즐을 풀게 하면서 이미지 속으로 몰입시킨다. 그리고 그 퍼즐을 모두 맞추면 작가가 복원해낸 타인의 꿈을 엿볼 수 있는 ‘선물’을 선사한다. 두 번째 작품, 「Time Apparatus」는 구 서울 역사의 시계를 통해서 장소성과 역사성을 드러내고 있다. 구 서울역사의 시계는 6.25 전쟁 때 잠시 멈춘 후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은 우리 근대 역사의 산 증인이자 상징임을 강조한 작품이다. 신미혜의 「블루스: 추상과 구상 사이」는 바다 시리즈다. 바다의 다양한 빛, 색, 그리고 톤을 통해서 재현과 추상 사이의 회화적인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푸른 바다에서 시작한 양극은 모든 색의 부재인 푸른빛을 띤 흰색과 모든 색의 결합체인 푸른빛을 띤 검은 색으로 되는 과정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록하고 있다. 사진의 본질인 ‘재현’을 넘어선 추상적인 풍경 사진이다. 우상린의 「자화상」은 여러 색깔의 물감을 작가의 몸에 차례로 붓는 퍼포먼스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자들이 보는 것은 작가의 몸을 따라 차례로 쌓여가는 색과 페인팅 과정이다. 몸은 캔버스처럼 색을 위한 지지물로 변형하고 작가의 몸은 예술품의 위상을 취득한다. 두 번째 작품, 「워킹」은 퍼포먼스를 통해 화가, 캔버스, 색 그리고 관람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10미터의 캔버스 위를 검정색과 흰색이 담긴 수조 사이에 발을 담그면서 걸어간다. 작가의 발이 붓이 되어 두색이 혼합되어 가는 과정이 동양의 수묵화처럼 보인다. 이소영의 작업은 기존의 건축물을 미니어처로 제작한 후 내부를 촬영하여 다른 공간의 이미지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의미의 건축가다. 그리고 새로운 건축 공간에 키리코의 작품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삽입하면서 현재성과 역사성을 절묘히 혼합하는 몽환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작가는 현재성과 과거성의 이미지를 결합하면서 과거도 현재도 아닌 시간성 자체가 부재된 유영하는 공간을 창출한다. 장 가브리엘 로페즈는 「55번 박스: Sabrina Esmeraldo 1911가지 오브제」을 통해서 Sabrina Esmeraldo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Sabrina Esmeraldo의 1911가지 오브제의 일부를 사진과 비디오로 재구성한 작품으로 한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하나의 완성된 결과물로 표현하기 보다는 한 여자의 기억의 편린을 통한 우리 모두의 초상을 연상시키려는 상호소통이 가능한 작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차연의 「파리 산책」에 나오는 비닐봉지는 특별하다. 우리가 쉽게 슈퍼에서 구할 수 있는 비닐봉지는 작가의 손을 거쳐 현대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오브제로 변한다. 많은 것을 짊어지고 다녀야하는 파리의 노숙자에게 이 비닐봉지는 휴대용 가방이자 거주지의 가구로 변한다. 점점 늘어나는 파리의 노숙자에 관심을 갖는 작가는 ‘파리의 현실적 풍경’을 이 비닐봉지에 담아냈다. 또한 「파리 산책」에 나오는 슈퍼마켓용 손수레는 노숙자들의 모든 생활 도구들이 담겨있는 ‘떠돌이 집’을 의미한다. 황명주가 관심을 갖는 주제는 언제나 우리주변에 있는 자연적 환경이다. 바람결 사이로 버드나무 잎사귀를 닮은 잎사귀들이 하늘거리는 「늦여름의 그림자」는 일상에 억압시켜 놓았던 내면의 상념들을 마주보게 하는 힘이 있다. 작가의 따뜻한 감성이 덧입혀진 익숙한 풍경과 오브제는 ‘쉼표’처럼 편안한 휴식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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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양_Ojuk_디지털 프린트_125×123cm_2006


이번 전시에는 19명의 비디오와 사진작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읽기. 쓰기. 기억하기〉, 〈기억하기. 읽기. 쓰기〉, 〈쓰기. 읽기. 기억하기〉의 세 개의 공간은 작가들의 창작 행위의 큰 틀에서 세상을 읽고, 쓰고, 기억하는 연결음과 단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비디오아트와 사진이 한 공간에서 서로 융합하고 소통하면서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고 있다. 비약과 축약, 합성과 복제가 보편화된 디지털 문화 속에서 다수의 이질적인 관점이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기계를 넘어선’ 지극히 예술적인 현대풍경을 만나 볼 수 있는 자리이다. 향수와 추억이 있으면서, 낯설면서도 이색적인 풍경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 신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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